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인-잇] '간병 청년'에게 엄격했던 법, 모두에게 그럴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최정규 |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S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의 간병을 도맡았던 22세의 청년이 존속살해죄로 처벌받은 사건이 최근 세상에 알려졌다. 공익근무를 위해 휴학했던 청년은 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진 작년 9월 이후 간병을 이어가야 했다. 그러다가 올해 5월 부친이 굶어 죽자 검찰은 아들을 존속살해죄로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징역 4년 형을 선고했다.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한 언론사가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라는 기획기사를 통해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부친 간병살인 22세 청년, 당신은 돌을 던질 수 있습니까?"


대통령 후보까지 앞장서서 재판부에 탄원을 요청하고 국무총리, 보건복지부장관도 국회에 출석해 "국가가 역할을 다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뜻을 밝히는 등 청년의 선처를 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동일하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아버지를 살해하려는 고의가 없었다는 청년의 주장이 항소심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대법원에서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면, 청년은 살인범이라는 멍에를 쓰고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살인의 고의'라는 법의 잣대는 이렇듯 인정사정없이 청년에게 적용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SBS

위 사진은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간병 청년에게 적용된 엄격한 법의 잣대, 항상 똑같이 작동하는 것일까?"


술에 취하면 부하검사를 손바닥으로 때리는 부장검사가 있었다. 상습적인 폭행과 폭언에 못 이겨 부하검사가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감찰조사를 통해 확인된 폭행만 4건이었으나 대검찰청은 부장검사를 '괴롭힘' 가해자로 해임의결 하면서도 폭행죄 형사입건은 하지 않았다. 격려의 의미였을 뿐 폭행의 '고의'는 없었다는 부장검사의 항변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3년이 지난 2019년 12월 대한변호사협회의 고발로 시작된 수사는 부장검사를 소환하는 데에만 몇 개월이 걸리며 지지부진했고, 2020년 9월 기다림에 지친 유족들이 소집을 요청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공소제기 의결을 한 뒤에야 가까스로 공소제기 되었다. 1,875일. 고 김홍영 검사가 세상을 떠난 후 부장검사가 폭행죄로 공소제기되어 징역 1년이라는 1심 판결을 선고받을 때까지 소요된 시간이다. (▶ 관련기사 [인-잇] 1,875일 미뤄진 정의…이 상황이 정의로울까)

"의사들한테 왜 이렇게 법이 관용을 베푸는지 모르겠다"


지난 8월, 의료 범죄 피해자 고 권대희 씨 유족인 이나금 씨가 병원 의료진에 대한 1심 선고를 듣고 법정 밖에서 외친 말이다. 고 권대희 씨는 2016년 9월 성형외과 수술실에서 안면 윤곽 수술을 받던 중 심한 출혈로 중태에 빠진 뒤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회복하지 못하고 끝내 숨졌다.

고 권대희 씨가 수술 과정에서 심한 출혈로 중태에 빠진 사건은 어쩔 수 없었던 일이 아니었다. 검찰도 결심 공판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마치 컨베이어 벨트에서 조립되는 제품'처럼 의료진들이 수익 극대화를 위해 공장식 유령 수술을 감행했고, 환자가 심한 출혈로 중태에 빠져들 때 의료진은 철저히 방치했다.

SBS

환자를 지키고 있던 건 간호조무사 1명, 간호조무사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유족과 시민단체는 정상적인 수술 방식이 아닌 공장식 유령 수술을 감행하다 과다 출혈을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병원 의료진을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는 의료진의 주장을 받아들여 '업무상과실치사죄'로만 기소했다.

과다 출혈 환자를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인식했지만 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 방치한 의료진, 마치 컨베이어 벨트에서 조립되는 제품처럼 환자를 대한 의료진의 행동을 단순히 과실범으로 처벌하는 건 옳을까? 아버지를 살해할 고의는 없었다는 간병 청년의 주장을 묵살했던 엄격한 '법의 잣대', 과연 이 잣대는 의료진에게 동일하게 적용된 것일까?

간병 살인에게 인정사정없이 아주 엄격하게 적용되는 그 법의 잣대가 상습 폭행을 일삼은 가해 부장검사, 환자를 그저 물건처럼 대했던 의료진들에게 왜 이토록 느슨하게 적용되는 것일까? 우리가 간병 살인 청년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사람에 따라 들쭉날쭉 작동하는 법의 '불공정한 잣대' 때문은 아닌지 묻게 된다.


#인-잇 #인잇 #최정규 #상식을위한투쟁

# 본 글과 함께 생각해 볼 '인-잇', 지금 만나보세요.
[인-잇] 또 염전 노예? 수사 믿고 맡길 수 있겠습니까

S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네이버에서 S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가장 확실한 SBS 제보 [클릭!]
* 제보하기: sbs8news@sbs.co.kr / 02-2113-6000 / 카카오톡 @SBS제보

※ ⓒ SBS & SBS Digital News Lab. : 무단복제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