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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뉴노멀-미래] 무엇이 미래를 두려워하게 만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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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핀란드는 2021년 유엔 세계 행복보고서에서 4년 연속 행복지수 1위를 차지했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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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필

콘텐츠기획팀 선임기자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해마다 상위권을 휩쓰는 북유럽 국가들의 높은 행복지수는 세계의 연구 대상이다. 지구를 뒤덮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에서도 이들의 행복지수는 여전했다. 높은 복지 수준, 사회적 신뢰, 개인의 자유, 이런 것들이 공통적으로 꼽히는 요인이다. 특히 사회적 신뢰는 팬데믹 위기에서 효과를 톡톡히 봤다. 행복보고서는 핀란드가 4년 연속 1위를 차지한 비결을 여기에 두었다.

선진국이 북유럽에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유독 이 나라들만 행복 최상위권에서 내려올 줄 모를까? 보고서에서 순위를 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스스로 평가한 삶의 만족도다.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삶과 비교해 지금의 삶을 점수로 매긴다. 이는 객관적으로 비슷한 삶을 영위하더라도 기대치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진다는 걸 뜻한다.

북유럽의 높은 행복지수 비결이 여기에 있다고 보는 이들이 있다. 낮은 기대치가 행복의 안전판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이들은 그 뿌리를 경건한 삶을 강조하는 루터교회 전통에서 찾는다.

그런 행동 윤리를 압축한 것으로 꼽히는 게 ‘얀테의 법칙’이다. 10개 항목으로 이뤄져 있는 이 법칙은 ‘자신을 특별하다고, 똑똑하다고, 남들보다 낫다고, 중요한 사람이라고, 많이 안다고,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하나같이 절제의 미덕을 강조한다.

별다른 물질적 어려움이 없이 생활하면서 욕망까지 절제하는 나라에서 삶의 만족도가 높지 않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핀란드 출신의 미국인 사회학자 유카 사볼라이넨은 “가질 만큼 거의 충분히 가졌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핀란드인들이 작은 아파트에서 많지 않은 수입으로 사는데도, 높은 물가와 세금 때문에 구매력이 떨어지는데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고 말한다. 소박한 안락을 추구하는 덴마크의 ‘휘게’, 많지도 적지도 않은 걸 뜻하는 스웨덴의 ‘라곰’이 세계인들 사이에 바람을 일으킨 건 이런 ‘소확행’에 목말라하는 이들이 많다는 걸 방증한다.

한국인은 삶에서 행복이란 가치를 매우 중시한다. 하지만 소득 수준이 선진국에 진입했음에도 행복 순위는 여전히 뒤처져 있다. 한국인의 행복관엔 특징이 하나 있다. 물질적 가치를 우선한다는 점이다. 퓨리서치센터가 선진 17개국을 대상으로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을 물어본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다. 대부분의 나라가 가족을 첫손에 꼽았지만, 한국인만은 ‘물질적 풍요’를 꼽았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물질 가치의 중요도는 선진국은 물론 저개발국 사람들보다 높다는 갤럽의 130개국 조사 결과도 있다.

핀란드인이 자신의 삶에 준 점수는 10점 만점에 7.8점이다. 한국인이 준 점수는 5.8점이다. 한국인의 욕망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까?

북유럽 행복 뒤의 절제 문화에는 평등이란 주춧돌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지역의 불평등 척도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높은 조세부담률이 떠받치는 탄탄한 사회복지가 지니계수의 상승을 차단한다. 계층 사다리 간격이 좁은 나라에선 굳이 욕망을 꺼내 보일 필요가 없다. 반면 격차가 ‘넘사벽’인 사회에선 욕망의 분출 없인 버텨내기가 어렵다. 이는 사람들을 고단한 각자도생의 경쟁 세계로 내몬다. 작금의 부동산 자산 격차 심화도 이런 식으로 한국인의 행복지수를 떨어뜨렸을 것이다.

물론 평등은 역동성을 약화시키는 약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삶의 불안을 덜어주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장점이 이런 약점을 훨씬 능가한다. 더 나은 공동체를 향한 건강한 도전은 이런 데서 싹트지 않을까? 누가, 무엇이 미래를 두려워하게 만드는가? 이 물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한국인을 행복으로 인도하는 길이다.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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