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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전기차 vs 하이브리드차 친환경 논쟁 "LCA가 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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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희 기자]

왕년에 잘나가던 자동차 산업이 지금은 쇄신과 혁신의 한복판에 서 있다. 친환경이 뉴노멀로 정착하면서다. 그래서인지 전기차는 전기차대로, 하이브리드차는 하이브리드차대로 '내가 친환경'이라면서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다면 친환경차란 타이틀은 두 차종 중 누구에게 부여하는 게 옳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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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이 뉴노멀로 떠오르면서 자동차 업계에도 쇄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사진=ECFR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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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차를 만들기도, 팔기도 참 힘들어요. '탄소중립'이니 '넷제로'니 지켜야 할 건 얼마나 많은지…, 자동차를 만들면서 이렇게 눈칫밥을 많이 먹어보기도 처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연기관차 판매까지 중지한다고요? 솔직히 앞길이 막막합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의 한탄이다. 친환경의 시대에 자동차 산업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물론 이유 없이 미운털이 박힌 건 아니다. 2018년 기준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자동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9% 수준이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에 따르면 일반적인 승용차의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4600㎏에 이른다. 자동차 산업이 환경파괴에 일조하는 비중이 작지 않다는 얘기다. 세계 각국이 자동차 산업에 강도 높은 환경규제를 적용하고 있는 이유다.

주목할 점은 주요 자동차 시장인 유럽 · 미국 · 중국이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의 판매를 금지한다는 거다. 내연기관차의 판매 비중이 높은 자동차 업계로선 어떻게든 친환경차로 체질 개선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자동차 업계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친환경차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완성차 기업들 간 진영이 나뉘고 있어서다. 업계의 주류는 테슬라가 앞서고 폭스바겐 · 제너럴모터스(GM) · 포드가 뒤를 쫓는 순수전기차(BEV) 진영이다.

하지만 도요타가 키를 잡은 하이브리드차(HEV · PHEV) 진영도 눈여겨봐야 한다. 볼보 · BMW · 현대차 등 완성차 기업들이 그들의 미래 계획에 하이브리드차(HEV · PHEV)를 넣으면서 개발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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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차가 더 친환경적이냐를 두고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진영의 논쟁이 치열하다.[사진=bm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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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혹자는 하이브리드차를 조명하는 이유가 궁금할지 모른다. 운행 중 탄소배출량이 제로(0)에 수렴하는 전기차를 두고 굳이 하이브리드차를 고집할 필요가 없어서다. 하지만 하이브리드차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은 전기차야말로 친환경성과 거리가 멀고, 심지어 하이브리드차가 전기차보다 더 친환경적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근거도 있다. 바로 '자동차 전과정평가(LCA · Life Cycle Assesment)'라는 척도다. LCA는 자동차의 제조부터 운행,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이산화탄소 · 메탄 등) 배출량으로 친환경성을 평가한다.

하상용 중부대(자동차시스템공학) 교수는 "자동차의 전생애주기를 살펴보는 LCA 기준에서는 하이브리드차가 전기차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다"면서 "자동차의 운행 시점뿐만 아니라 총체적인 관점에서 따져보면 전기차의 친환경성은 되레 취약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5월 한국자동차공학회가 LCA로 차종별 온실가스 배출량을 평가한 결과 순수전기차인 테슬라의 '모델 X'가 가장 높은 수치(약 270g/㎞)를 기록했다. 이는 현대차의 '2019년형 아이오닉 하이브리드(약 160 g/㎞)'보다 1.7배 높은 수준이다.

LCA에서 전기차가 낮은 평가를 받은 배경에는 배터리 제조 · 폐기 부문의 문제가 가장 크다. 포스코경영연구원에 따르면 전기차 한 대를 만들 때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은 총 11톤(t)에 달한다. 이중에서 절반에 해당하는 5.3t이 바로 배터리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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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배터리를 처리할 때도 환경오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폐배터리는 유해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데다 폭발 위험이 높기 때문에 단순 폐기 처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국 폐배터리를 처리하는 최선의 방법은 재활용인데, 폐배터리가 함유한 금속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인 추출 공정보다 16~20%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전기를 공급하는 방식도 문제다. 전기차를 가동하는 데 필요한 전력의 상당 부분을 석탄화력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석탄화력은 발열량당 탄소 함량이 높아서 다른 발전원보다 탄소배출량이 더 많다.

박정규 한양대(기계공학) 겸임교수는 "전기차가 탄소중립의 궁극적인 대안이 되려면 전력 발전원 중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늘려야 하는데, 재생에너지는 지형 ·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대중화에 한계가 있다"면서 "재생에너지 없이 전기차가 과연 친환경적일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논란의 친환경성, 논쟁의 LCA

그렇다고 LCA가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건 아니다. 전기차 전문가들은 "자동차의 제작 · 폐기 과정을 총체적으로 살펴보는 관점에는 공감하지만 LCA를 객관적인 지표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황성호 성균관대(기계공학) 교수의 주장을 들어보자. "국가 · 지역 · 제조사에 따라 발전원의 비중, 제품 규격, 제조방식이 천차만별이다. LCA는 평가자가 어떤 기준을 설정하고 연구를 진행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완성차 기업 '포드' 역시 지난 5월 발간한 보고서에 "LCA 평가는 환경적 · 기술적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한계점을 명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 미국에서 전기차와 내연기관차를 두고 LCA 평가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같은 차종이어도 지역에 따라 결과가 달랐다. 기후조건, 재생에너지 의존도, 연료를 생산하는 방식 등에서 지역별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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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가 친환경차 시장을 양분할까. 사진은 지난 4월 상하이 모터쇼에서 공개한 도요타의 전기차 bZ4X.[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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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에 활용하는 데이터가 불확실하다는 것도 LCA의 맹점이다. 전기차 전문가들은 "자동차는 수만개의 부품과 수백가지의 재료, 수천개의 공급사슬로 완성하는데 LCA 평가를 위해 방대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일부터 난제"라고 꼬집었다.

전기차 전문가들의 반론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최웅철 국민대(기계공학) 교수는 "설사 전기차가 제조나 폐기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비중이 높다고 해도, 하이브리드차가 도로 · 생활권 내에서 오염물질을 흩뿌리고 다니는 것보다는 낫다"고 주장했다.

전기차는 생산 · 재활용 공장에서 탄소 포집 기술을 이용해 수소를 추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온실가스를 처리할 수 있다는 거다. 최 교수는 "개별 자동차의 운행 중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통합 ·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자동차 미래 '친환경'에 달려

서로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만큼 양측이 제시하는 해답도 달랐다. 전기차 진영은 "하이브리드차는 운행 중 온실가스 배출량이 상당수 국가의 기준치에 도달하지 못해 친환경차 리스트에서 배제되고 있다"면서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전기차뿐"이라고 말했다.

반면 하이브리드차 진영은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과정에서 하이브리드차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하이브리드차의 친환경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흥미로운 점은 정반대의 입장을 고수하는 것과 달리 이들이 향하는 목적지(탄소중립)만은 같다는 사실이다. 자동차의 미래가 '친환경'에 달려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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