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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공대생 채용 우대했다가…성차별 철퇴맞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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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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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5월 19일로 다가온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고용평등법) 개정법 시행을 두고 담당 공무원과 기업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개정된 고용평등법은 채용·해고·임금·교육 등 기업의 고용 정책 전반과 관련한 성차별에 대해 각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서 피해구제와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1일 복수의 고용노동부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 실무자들은 성차별 조사·피해구제 매뉴얼 제작에 나서는 등 본격적인 시행 준비에 착수했다. 중노위 관계자는 "매뉴얼을 만들고 있지만 아직 충분한 사례가 부족해 개정 법 시행 초기에 어느 정도 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정보기술(IT) 기업이 '이공계 전공자 우대'를 조건으로 채용을 진행한 결과 남성이 높은 비율로 채용됐을 경우 채용에서 탈락한 여성 구직자는 성차별을 이유로 피해구제 신청을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여성 합격자 규모가 큰 기업 채용에서 탈락한 남성 지원자도 마찬가지다. 고용평등법상 '간접차별'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접차별은 성별에 중립적인 평가 기준이라고 하더라도 모집·채용·배치·승진 등 결과에서 통계적으로 한쪽 성별에 편중되는 결과가 반복될 경우 이를 성차별로 볼 수 있다는 개념이다.

중노위 관계자는 "간접차별을 인정한 법원 판례는 극히 드물지만 현행법에서 인정하고 있는 개념"이라며 "향후 노동위 판정에서 이를 인정하는 사례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지노위 공무원들 입장에선 전례 없는 업무인 데다 성평등이라는 사회적 파장이 큰 이슈를 다뤄야 한다는 점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또 성차별이 없었음을 설명해야 할 책임을 지게 된 기업 입장에서는 이를 입증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중노위 관계자는 "업종별 특성에 따라 채용 우대 조건을 내걸고, 해당 조건이 성별에 중립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년부터는 사업주가 성차별 시정명령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민형사 소송과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통해 고용상 성차별을 바로잡을 수 있었지만 소송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인권위 권고는 강제력이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에 비해 개정 법률에선 피해구제 신청을 접수한 각 지노위가 성차별 여부를 판단하고 사업주에게 적절한 피해구제 명령까지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채용·임금·승진·해고 등에 있어 성차별을 받은 경우 △성희롱을 당했지만 사업주가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거나 불리한 처우를 한 경우 해당 근로자는 6개월 이내에 피해구제를 신청할 수 있다. 성차별 여부의 입증 책임은 사업주에게 있다. 성차별이 인정돼 시행명령이 확정된 경우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1억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중노위가 제시할 '적절한 피해구제 방안'도 논란의 대상이다. 개정 법률에서는 사업주가 피해자에게 △차별적 행위 중지 △근로조건 개선 △적절한 금전 배상 등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임금·해고 관련 차별은 금전 배상 등 비교적 구제 방법이 간단하지만, 채용·승진 차별은 구제 방안이 새로운 차별 논란을 불러올 수 있어서다.

가령 현재 중노위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채용·승진 과정 성차별에 대한 평가 재실시의 경우 승진자나 채용 합격자에 대한 역차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채용 절차를 다시 진행하는 데 따르는 비용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김용춘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업종 특성에 따라 성차별이라고 보기 애매한 사례가 빈번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피해구제 신청이 자칫 감정적으로 이뤄지게 된다면 기업 생산성만 저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피해자 구제 신청을 하는 것은 쉽지만 이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억울한 기업도 발생할 수 있다"고 염려했다.

개정 법이 시행되면 실제 직장 내에서 성차별이 발생했는지와 별개로 관련 분쟁이 늘며 상당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 1120건이던 직장 내 성희롱·성차별 신고 건수는 지난해 1692건으로 50% 급증했다.

[김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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