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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철 칼럼] 메르켈과 이재명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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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미래를 위해 지금 당장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16년간 독일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온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집권이 막을 내렸다. 메르켈은 갖은 고난과 역경에도 탁월한 리더십으로 독일을 유럽 최강국이자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이끌었다.

메르켈이 재임 중 가장 신경 쓴 것은 '나라 곳간'이었다. 메르켈은 국가부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2009년 헌법을 개정해 '채무 브레이크' 조항을 도입했다. 균형예산 편성을 의무화하고 정부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0.35%로 제한한 것이다. 대중 인기를 노린 포퓰리즘에 선을 그은 그의 소신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유로존 재정위기에서 유럽을 구하는 원동력이 됐다.

메르켈은 그리스 재정적자로 촉발된 남유럽 위기 때 그리스, 스페인 등에 고통스러운 긴축과 구조개혁을 요구했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마저 과감한 구제금융을 요청했지만 메르켈은 'EU 재정준칙'(GDP 대비 적자 3%·부채 60%)을 내세워 꿈쩍하지 않았다. 메르켈은 과도한 연금과 무상교육 등으로 부도 위기에 내몰린 남유럽 국가들이 독일의 건전한 나라 살림을 본받아 허리띠를 졸라매기를 바랐다. 이 같은 메르켈의 뚝심 덕분에 유럽은 대공황 이후 75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경제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티머시 가턴 애시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균형예산을 맞추려는 메르켈의 열정적 헌신이 독일 경제를 가장 건강한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었다"고 했다.

'균형재정'을 철칙처럼 지켜온 메르켈에 견줘보면 여야 대선후보들의 포퓰리즘 행태는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기본 시리즈(소득·주택·대출) 도입을 추진 중이다. 기본소득은 전 국민에게 100만원, 청년에게는 200만원을 주겠다는 것인데 인구수를 감안하면 최소 50조원 넘는 예산이 필요하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또한 '자영업자 피해 보상 50조원 투입'을 공약한 상태다.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에 대한 두꺼운 지원은 필요하지만, 내년 예산안의 8%가 넘는 돈을 쓰겠다면서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지 설명조차 없다. 게다가 이 후보까지 뒤늦게 윤 후보의 '50조원' 공약을 거들고 나섰다. 표가 된다 싶으면 국민과의 약속을 흥정하듯 뒤집는 행태가 놀라울 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작성한 '재정점검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는 올해 말 51.3%에서 2026년 66.7%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35개 선진국 중 상승폭이 가장 크고 증가 속도도 가장 빠르다. 당장 갚아야 할 올해 이자만 18조원이다. 채무비율이 높아도 세수 확충과 경제성장이 뒷받침되면 큰 문제가 없지만, 가상자산 과세 유예에서 보듯 세수마저 포퓰리즘에 막혀 여의치 않다. 심지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1인당 GDP 잠재성장률이 2030~2060년 연간 0.8%로 주저앉을 것이라고 경고까지 한 상태다.

세금 알바 등 현 정권의 헤픈 씀씀이 탓에 나랏빚이 내년에 1000조원에 달할 만큼 재정 악화가 심각한 마당에 나라 곳간을 마구 허물면 그리스·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 꼴이 날 수 있다. 과도한 현금 살포는 하루하루가 힘겨운 청년세대에 빚 폭탄을 떠넘기는 것이나 같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비상시 돈을 찍어 재정을 확충할 수 있는 기축통화국도 아니다.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성장동력마저 떨어지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오미크론 확산과 글로벌 인플레이션, 공급망 차질까지 겹치면 우리 경제가 '퍼펙트 스톰'에 휩싸이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제라도 국가재정을 정상화할 대책이 시급하다. 두 후보가 메르켈처럼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지도자라면, 눈앞의 위험을 회피할 게 아니라 책임과 고통을 분담하면서 가시밭길을 헤쳐나가야 한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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