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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적은 내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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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탄핵 이후 보수야당에서 기억나는 것은 딱 세 장면이다. 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당명 변경,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해 8월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무릎 꿇고 울먹이며 사죄한 일, 36세 이준석 대표가 지난 6월 국민의힘 대표로 선출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건들은 일회성 이벤트로 그쳤다. 국민의힘은 여전히 무능·무사안일하고, 윤석열 후보는 잇단 실언으로 자질 논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수혁신의 열망으로 선출된 이준석 대표는 윤 후보 측 ‘핵심 관계자’들의 패싱 논란에 반발해 당무를 거부한 채 칩거하고 있다. 자식과 마누라 빼고 다 바꾸겠다던 보수야당에서 바뀐 것은 이름뿐이다. 국민의힘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경향신문

이용욱 논설위원


그런데 지난 몇년간 대선과 지방선거, 총선에서 보수야당을 매섭게 심판했던 여론은 바뀌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민 가운데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국정농단 탄핵사태 때와 비교해 15%포인트나 줄어들었다. 대선 100일을 앞두고 이뤄진 조사에서 정권교체론은 정권안정론보다 10%포인트 안팎으로 높게 나타났다. 편차는 있지만 윤 후보도 대다수 조사에서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앞선다. 국민의힘은 그대로이고 윤 후보의 무식은 갈수록 드러나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 국민들이 집단최면에 걸린 것인가. 아니면 언제나 진부한 보수야당 행태를 ‘한결같음’이라는 미덕으로 치부하게 된 것인가.

이런 현상은 여권이 자초했다. 위선, 내로남불, 독선에 대한 반감이 현재 여론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 사례들을 일일이 정리하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말았다. 거의 모든 게 내로남불이었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강 교수 말대로 사례를 따져봤다. 전셋값 올린 김상조, 부동산 투기 김의겸, 입법독주 민주당, (부적격 장관) 임명 강행 청와대, 기득권 된 586, 횡령 의혹 윤미향, 피해호소인 남인순, 60만원 생활비 황희, 입시 의혹 조국…. 셀 수 없을 정도인지 모르겠으나, 줄은 길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 넣으면 1절은 채울 수 있겠다.

몰락의 기저에는 오만이 있다. 위선하고 내로남불해도 군사독재 세력인 저들보다 우월하다는 자신감에 여권은 홀렸다. 잘못을 지적하면 개혁 저항 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실패는 언론·관료·검찰 등 남 탓으로 돌렸다. 반대 세력에 엄했으나, 내부 잘못에는 관대했다. 반성의 언어는 미적지근했다. 대장동 의혹에 대해 “내가 뭘 잘못했느냐”고 항변하고, 국감장에서 ‘흐흐흐’ ‘키키키’ 하고 웃었던 이 후보도 오만 프레임을 공고히 했다.

이번엔 민주당을 찍지 않겠다는 지인의 말이다. “윤석열은 자질이 의심스럽다. 이명박 때 후퇴가 재연될 수 있다는 걱정이 든다. 그러나 건방 떠는 여당은 더 못 봐주겠다.” 그러므로 이재명의 적은 윤석열이 아니라 ‘오만한 여권’ ‘오만한 이재명’이다. 이 때문에 윤석열 때리기에 모든 것을 건 듯한 여권의 선거운동 효과는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이 싫어서 등돌린 사람들에게 ‘윤석열은 더 나쁘다’고 한들, 마음을 돌리겠는가.

아무거나 막 던지는 듯한 메시지도 문제다. ‘두 아이 엄마 김혜경 vs 토리엄마 김건희’ ‘윤 후보 돌상 엔화’ ‘윤석열 지지자 대부분은 저학력 빈곤층과 고령층’ 등의 글을 SNS에 올린 것은 자해행위다. ‘인간 이재명’ 독후감 릴레이라니, 박정희·전두환 위인전을 타의로 읽었던 시절이 떠오른다. 169석 거대 여당 선거운동이 이렇게 유치찬란할 수가 없다. 윤 후보 자질 부족은 따져야 하며, 주변 검증은 필요하다. 그래도 품격은 지키길 바란다. 윤 후보가 부적절한 인사였다면, 그런 사람을 검찰총장에 앉혔던 여권이 인사실패에 대해 먼저 자책하는 것이 일의 순서다.

그래서 여당의 갑작스러운 사과가 미덥지 않다. 이 후보는 울먹이며 “저의 책임 없다고 말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선대위를 재편하며 반성과 쇄신을 외친다. 그러나 사과에도 알리바이가 필요하다. 엊그제까지 뻣뻣하던 여권이 이유 없이 고개를 숙인다면, ‘무슨 꿍꿍이냐’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김봉신 전 리얼미터 수석부장은 “국민이 울 때 같이 울어야 하는데, 혼자 우니까 뜬금없다”고 했다. 지금의 사과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정치공학적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길 바란다. 여권이 먼저 할 일은 그간의 잘못에 대해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것이다. 오만의 유령이 여권 내부를 배회하는 한 국민 마음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이용욱 논설위원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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