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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유전자가위로 장내 미생물 생태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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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 실험서 2주만에 대장균 1%로 급감

부작용 없는 질환 치료 등에 이용 기대


한겨레

장내 미생물 군집 모사도. 샌프란시스코캘리포니아대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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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내 미생물 군집이 인체의 건강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잇따라 밝혀지면서 유산균제제를 건강보조식품으로 섭취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를 통해 유익균을 늘리고 유해균을 줄이는 환경을 만들어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균형을 바로잡으려는 것이다.

머지 않아 이런 간접 방식이 아니라 직접 장내 미생물 군집의 구성을 변경하는 치료 방식이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SCF) 과학자들이 실험용 생쥐의 장내 미생물 군집에 있는 박테리아 게놈의 유전자를 편집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셀’ 11월호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시스템을 탑재한 바이러스가 생쥐의 장내에 들어가 박테리아의 게놈을 교정했다.

이 기술을 발전시키면 유전자편집을 통해 장내 미생물 종의 생태계에 변화를 주는 방식으로 다양한 질환 치료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불균형은 자가면역질환과 당뇨병, 암, 심혈관 질환,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같은 신체 질환은 물론 우울증 같은 정신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장내 미생물 군집의 균형이 깨지는 데는 섭취하는 식품이나 약물 등 여러 요인이 있다. 그러나 균형을 회복시키는 데 쓸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장내 미생물이 일으키는 식중독은 항생제로 치료할 수 있지만 이 방법은 다른 유익균도 죽일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최근엔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채취해 이식하는 기술이 새로운 치료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언제나 성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하면 다른 박테리아에 영향을 주지 않고 미생물을 직접 다룰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유전자 편집이란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제거하고 싶은 표적 유전자의 특정 부위를 잘라내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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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배 확대 촬영한 대장균.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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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개념증명 단계…갈 길 멀어


연구진은 실험 대상으로 대장균을 선택했다. 대장균은 대표적인 장내 미생물 가운데 하나로, 비타민 합성 등 유익한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어떤 균주는 식중독 같은 질환을 야기한다.

연구진은 우선 식중독을 일으키는 대장균을 먹잇감으로 삼는 M13 바이러스에 ‘크리스퍼-카스9’이라는 유전자 편집 도구를 탑재했다. 박테리아의 면역체계에서 힌트를 얻어 개발된 이 유전자 가위는 표적 부위로 안내해주는 ‘크리스퍼’ 분자와 가위 역할을 하는 효소단백질 ‘카스9’으로 구성돼 있다. 이 도구를 탑재한 바이러스가 대장균을 만나면 유전자가위가 작동해 대장균의 게놈 중 표적 부위를 잘라내게 된다.

연구진은 생쥐의 입을 통해 M13을 투여한 뒤 대변을 분석해 장내 미생물 군집의 변화를 추적했다. 그러자 생쥐의 장을 지배했던 표적 균주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해 2주 후에는 전체 장내 미생물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번 연구의 성공 여부는 장내 생존력이 약한 M13 바이러스가 장내에서 사멸되기 전에 재빨리 대장균을 식별해 임무 수행을 할 수 있느냐에 있었다. 연구진은 대장균이 베타락탐 항생제에 민감하다는 점을 이용해, M13 게놈에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접합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항생제 내성 유전자가 대장균을 빠른 속도로 식별하는 표지자 역할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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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장내 미생물 유전자 편집 기술이 언젠가는 장내 유익균의 성장을 촉진하는 데 쓰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예컨대 유익균의 유전자를 편집해 특정 영양소를 먹이로 삼아 번식하도록 바꿔주면, 그 영양소가 많이 든 식품을 섭취함으로써 장내 미생물 분포를 바꿀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우선 도구로 쓸 수 있는 바이러스들을 많이 확보하고, 개체 변경이 전체 장내 미생물 구성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도 실험해 봐야 한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장내 미생물에 크리스퍼 유전자편집도구를 배포하는 것이 가능한지 알아보는 초보적인 개념증명 단계에 불과하다. 장내 미생물 군집의 복잡성을 고려하면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연구를 이끈 피터 턴바우 교수(미생물학 및 면역학)는 “이번 연구는 장내 미생물 군집을 직접 조작하려는 노력의 출발점”이라며 “궁극적인 목표는 이 기술을 이용해 장내 특정 미생물군의 번식을 촉진하거나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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