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사회투자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역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사회적 금융 원금 회수 원칙으로

사회가치 창출이라는 기금 취지 훼손

손실 문제 해결은 정책의 영역

사회혁신 조직에 돈이 흐르도록

정부는 사회투자 촉매자 역할해야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언스플래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빌려준 돈은 반드시 회수해야 한다.”

대금업자 사무실에 걸려있을 법한 이 표어는 정부의 각종 기금에도 적용된다. 정책금융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사회투자 성격의 지원기금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의 사회적 금융 활성화 방안(2018년)에 힘입어 많은 정책금융기관과 여러 지자체에서 사회적 경제를 지원하기 위한 기금을 운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기금들 대부분이 ‘융자성 기금’이다. 무이자나 낮은 금리로 사회적 경제 기업들에 돈을 빌려준다. 지원하는 대상에 따라 보조금이나 투자 등을 섞어 맞춤형으로 설계하는 방식은 쓰지 않는다. 따라서 이 기금에는 필요한 곳에 빌려주되 원금은 반드시 돌려받아야 한다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원금을 회수하지 못하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 업무를 맡은 공무원은 기금 정책이나 관련 규정에 손실을 어떻게 처리한다는 근거가 없으면 단돈 1원이라도 손해가 나지 않도록 행동할 것이다. 다른 여지가 없다. 결과적으로 기금 운용은 화석처럼 딱딱하게 굳어지게 된다. 이는 기금 운용과 관리를 민간에 위탁해도 마찬가지다. 위탁한 기관에 손실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위험이 이전될 뿐이다.

기금도 시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것이므로 기금 운용을 허투루 해서는 안 된다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사회투자 성격의 지원기금이 다른 기금들과 다르게 손실 발생 위험을 태생적으로 안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기금을 융자 목적으로 사용코자 한다면 손실 문제를 해결할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금을 만든 취지와 목적이 훼손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실 문제에 대한 대책을 수립한 곳은 보이지 않는다. 빌려준 돈은 모두 ‘차입’이기 때문에 반드시 갚아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변상 책임을 지라는 으름장만 놓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는 사회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모험 투자는 꿈꿀 수 없다. 결국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잠재력을 지닌 기업과 조직 상당수는 배제될 것이 자명하다.

기금은 조성 목적에 따라 운용하는 방식이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 돈을 갚을 수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 수익 창출 가능성이 큰 사업에만 돈을 빌려주는 건 은행이 하는 일이지 사회변화를 촉진하기 위해 만든 기금의 역할이 아니다. 금전적인 잣대만 가지고 기금을 운용해선 안 된다. 기금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를 해석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이 대목에서 풀어야 할 숙제 두 개가 생긴다. 하나는 ‘왜 이 기금만 손실을 인정해야 하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 손실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이다. 전자는 정책의 영역이다. 시장도 정부도 풀지 못하는 사회문제를 사회적 경제와 사회혁신을 통해 해결하는 과업에 의미를 부여하고 시민적 공감대를 끌어내야 한다. 법률과 조례 제정이 필요하다. 후자는 다양한 접근법이 있다. 정부와 지자체에 손실기금을 만들어도 되고, 공적 보증제도를 활용해도 된다. 핵심은 손실 위험을 이전하는 것이다. ‘손실 측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모든 손실을 다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부분에 대해서만 손실을 인정해 상계(相計)하는 방식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겨레

사회투자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역할 개요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부의 역할은 사회투자의 촉매자가 되는 것이다. 시장금융이 받으려 하지 않는 위험을 인수 또는 이전함으로써 이 영역에 돈이 흐를 수 있도록 촉진하는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 단언컨대 지금의 운영방식으로는 사회투자 영역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붕어빵의 틀이 바뀌지 않으면 붕어빵의 모양은 언제나 같을 수밖에 없다.

현실의 금융 시스템은 비가 오면 우산을 빼앗고 비가 그치면 우산을 주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신용점수가 낮은 사람에게는 인색하고 신용점수가 높은 사람에게는 너그럽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금융 공백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 공백이 방치되면 사람들이 위험에 처하고, 사회를 바꾸려는 시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공백을 메우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문진수 사회적금융연구원장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