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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분노의 포로가 되지 말고 자신을 지켜요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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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저는 소중한 존재지요?

[경향신문]

경향신문

가는 곳마다 폭행을 당했던 한 여성을 만났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았고, 아동학대를 받았고, 장애를 갖고 있다. 도처에 뿌리 내린 약자에 대한 폭력에 정부, 국회, 공공기관은 더욱 촘촘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생명보다 존귀한 건 이 세상에 없다(모래치료를 담당한 박은정 교수에게 감사한다).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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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신청

그 쓰레기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아세요? 저 집 장애인집이라구요. 저 여자는 돈도 없으면서 애를 다섯이나 낳았다고요. 작년에 이것들 때문에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한 달 정도를 누워만 있었어요.

3살 때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엄마는 우리 남매를 두고 집을 나갔어요. 그리고 다른 남자를 만나서 그 남자의 애들을 키웠어요. 몇 년 전 만났는데 미안해하지도 않더라구요. 얼마 전 돌아가셨는데 저도 마음이 아프지 않았어요. 사람은 안변한다는 사실을 엄마를 보고 알았어요.

저는 모두에게 맞았어요. 할머니한테, 오빠한테 매일 맞았고, 삼촌도 저를 심하게 때렸어요. 그때 저는 영양실조로 머리가 발달하지 않아 인지가 느렸어요. 말도 잘 안하던 때라 잘못할 일이 없었어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한 아이에게 책을 빌린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실수로 책을 조금 찢었나 봐요. 그런데 그 애가 제가 일부러 그런 거라고 말해서 그때부터 친구들이 저를 ‘바보’ 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돈을 두 번이나 훔쳤다고 뒤집어쓰기도 했어요. 선생님도 저를 믿어주지 않았어요.

10살부터 16살까지 늘 맞으면서 일을 했어요. 매일 새참을 해서 이고 날랐고, 리어카까지 끌었어요. 힘들 때는 나쁜 생각도 많이 했어요. 한번은 길에서 넘어졌는데 저쪽에서 차가 오고 있었어요. 저는 일부러 안일어났어요. 그런데 친구가 잡아끄는 바람에 살았죠. 전혀 고맙지 않았어요. ‘그냥 두지, 왜 살려서…’ 싶었어요.

17살에 돈을 벌려고 공장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거기 얘들이 저를 왕따 시켰어요. 어느 날은 기숙사에서 6명이 저를 때리겠다고 몰려오는 거예요. 제가 계단에서 유리를 발로 깨 도망쳐서 살았어요. 제 얼굴이 까맣고 말투도 어눌해 사람들이 저보고 베트남인이냐 아프리카인이냐 놀렸는데, 그거도 저는 속상했어요.

다행히 결혼은 나쁘지 않은 사람과 했어요. 남편은 시각장애가 좀 있지만 열심히 일하고 순한 사람이에요. 요즘은 남편이 피곤하다며 자기 엄마한테만 매일 가 있어서 다섯 아이를 다 저 혼자 키워야 해요. 그래서 이제는 그 인간도 별로예요.

애들을 보면서 버티고 살아요. 애들은 예뻐요. 첫째와 막내가 장애가 있어 손이 더 가구요. 둘째, 셋째, 넷째는 정상이에요. 막내가 올해 많이 아파 저랑, 아이랑 몇 달 동안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저희 막내 사진 좀 보세요. 예뻐요? 제 아이들을 잘 키웠나요?

뒤에서 수군거리는 학부모들 말을 들으면 어떠냐고요?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요. 우울해요. 길거리를 울고 다녔어요. 저는 살려고 발버둥친 죄밖에 없어요. 애들 열심히 키운 죄밖에 없어요. 대물림을 안하려고 노력 정말 많이 했어요. 근데 다들 왜 저한테 자꾸 욕하고 손가락질을 하죠? 선생님도 제가 별 볼일 없고 부족해 보이나요? 아니지요? 저는 소중한 존재지요? 괜찮은 사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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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소장(왼쪽)이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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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내용

순임(가명)씨, 정말 수고했어요. 정말 대단해요. 본인도, 남편도 여러 가지로 무척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섯 아이를, 그 가운데 장애가 있는 두 아이를 키워냈잖아요. 순임씨는 이 세상에서 제가 만난 가장 훌륭한 여성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도대체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지금까지 생존해 냈나요? 어떻게 이런 당당하고 강한 모습으로 다섯 아이를 지켜낼 수 있나요?

순임씨는 경우 있고, 사랑스런 분이예요. 순임씨는 늘 제게 물었죠. ‘선생님, 마스크 없으면 좀 보내드릴까요?’, ‘아침 드시고 나왔어요?’, ‘오늘 기분 괜찮으세요?’ 순임씨는 도움을 받고 나면 조금이라도 뭔가를 주고 싶고, 챙기고 싶어 하잖아요. 함께 상담했던 선생님과 저는 순임씨를 ‘L님’으로 부르고 있어요. L은 러블리(lovely, 사랑스런)의 약자랍니다.

순임씨는 유능한 엄마이기도 해요. 순임씨는 약간의 인지 장애를 지니고, 말투도 좀 느리죠. 하지만 엄마 순임씨는 정말 똑소리 나는 분이에요. 다섯 아이 각자에 맞게 이것저것 챙기는 순임씨 능력은 아이큐(IQ) 150이 넘는 사람도 따라하지 못할 거예요. 장애가 있는 큰아들이 기술을 배워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대학을 찾아 합격시켰다고요? 저는 그저 순임씨가 경이로울 따름이에요.

그런데 이제는 순임씨의 ‘분노’를 다소 냉정한 시각으로 좀 보았으면 해요. 순임씨는 화가 엄청 많죠. 상담의 시작부터 끝까지 많은 사람을 욕하셨어요. 순임씨에게 그 사람들은 ‘쓰레기’고, ‘이것들’이고, ‘그 인간’이죠.

순임씨 이야기를 다 들은 저는 그 화가 생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잘 알고 있어요. 아직도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것으로 괴롭히고 있으니 순임씨 마음속에 얼마나 열불이 나겠어요. 여태까지 참은 것이 정말 대단해요.

그렇지만 지금 순임씨의 고민은 행복해지고 싶다는 거지요? 그렇죠? 그렇다면 순임씨 분노의 감정을 이제는 좀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만 해요. ‘분노의 포로’가 되어선 안돼요. 순임씨가 앞으로도 늘 화를 내고 욕을 하면 사람들도 계속 순임씨를 미워하고 왕따시키는 상황이 반복될 거예요. 순임씨가 정말 원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어울리는 거잖아요? 화내지 않고,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그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먼저 순임씨의 분노가 오래된 상처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해요. 그동안 쌓인 원통함이 너무 크기 때문에 과거 인물들에 대한 감정이 현재 인물들에게 그대로 투사(projection)돼서 분노의 감정이 몇 배로 증폭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요. 지금의 사람들이 그 때의 사람들과 똑같은 정도로 순임씨를 괴롭히나요? 이제 순임씨는 혼자가 아니에요. 아이들이 있잖아요. 게다가 자신이 당하는 부당함을 똑똑하게 밝힐 능력도 있어요.

이어서 구체적인 소통의 기술을 익히는 게 유익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순임씨는 순수하고, 뭐든 금방 잘 배운다는 장점을 갖고 있어요. 오늘 제가 추천하고 싶은 기술은 ‘스마일’ 이에요.

안타깝게도 저는 순임씨의 웃는 모습을 아직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너무나 사랑스런 순임씨의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건 비극이에요. 누군가와 대화할 때 약간의 미소만 지어도 얘기가 훨씬 부드럽고 포근해진답니다. 옛말에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처음에는 쉽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한두 번 용기를 내어 웃는 모습으로 주변 사람들과 만난다면 순임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생기기 시작할 거예요.

스마일을 적용해서 성공한다면, 그 다음의 대화 기술로는 경청, 공감, 질문하기 등이 있으니 하나하나 차근차근 익혀 보았으면 해요. 대화하는 것을 기술이라고 연습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인간관계를 위한 기술은 요즘 돈을 주고 배우러 다니는 중요한 공부랍니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지금까지 버텨온 것만으로도 순임씨의 삶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거예요. 저는 순임씨를 존경해요. 진심이에요. 삶이 순임씨를 괴롭히더라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잘 버티세요. 자신을 지키세요. 살아남아 주세요. 그동안 온몸으로 싸워온 순임씨가 진짜 승리자이예요. 지금 고통을 당하는 많은 이들은 순임씨가 버텨온 이야기를 듣고 힘을 낼 수 있을 거예요. 이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엄마의 아이들은 그 어떤 집 아이들보다도 무럭무럭 잘 자랄 거라고 저는 굳게 믿어요.

■후기

가는 곳마다 폭행을 당했던 한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았고, 아동학대를 받았고, 장애를 갖고 있다. 우리 사회가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한다. 약자에 과연 너그러워졌을까. 친부모에, 계부모에 의해 끊임없이 맞다가 사망하는 아이들이 있다. ‘염전 노예’, ‘모텔 노예’ 등 계속 학대당하는 장애인들도 있다. 도처에 뿌리 내린 약자에 대한 폭력에는 심리적 처방도 중요하지만, 정부, 국회, 공공기관이 촘촘한 대책 마련에 힘써야 할 것이다. 생명보다 존귀한 건 이 세상에 없다(상담 과정에서 모래치료를 담당한 박은정교수에게 감사한다).

박상희 소장은

경향신문

이화여대에서 목회상담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이화여대 출신 30여 명의 상담학 석·박사들과 함께 전문적 심리상담과 코칭에 주력하는 샤론정신건강연구소를 창립해 소장을 맡고 있다. 한국열린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위의 사례는 유튜브채널 ‘박상희의 심리스튜디오’에서 진행 중인 무료심리상담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에서 12월6일부터 영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박상희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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