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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한국 바다서 1년에 1000마리씩 사라지는 ‘이 고래’ [라스트 씨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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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씨(Last Sea): 한국 고래의 죽음



# 상괭이

헤럴드경제

▶매년 우리 바다에서 무려 1000마리 이상의 상괭이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상괭이의 멸종은 시간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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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괭이가 사는 곳, 서해와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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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라스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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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물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인간처럼 폐로 숨 쉬는 포유류입니다.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에서 발견되는 해양 최상위 포식자이기도 하고요. 짧고 단단한 주둥이에, 뭉툭한 머리, 그리고 등지느러미가 없는 생명체. 바로 상괭이입니다.

‘미소 천사’라는 별명처럼 항상 웃고 있는 상괭이는 우리나라 토종 돌고래입니다. 오래전에는 상괭이를 우리 바다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상괭이라는 이름도 200년 전 조선시대 정약전이 집필한 어류학서 〈자산어보〉에 쓰인 상광어(尙光魚)에서 유래됐죠.

“서남해에 사는 인어(人魚) 가운데 상광어가 있다. 사람을 닮아 두 개의 젖이 있다.”

상괭이는 떼로 다니는 다른 돌고래와 달리 2~3마리씩 가족 단위로 다닙니다. 먼바다가 아닌 수심이 얕은 연안에 살고요. 새우나 게, 숭어를 잡으려고 민물과 바닷물이 서로 섞이는 구역으로 나와있기도 합니다.

# 상괭이 질식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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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라스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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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들어 숨 쉬지 못해 죽는 상괭이가 급격히 많아졌습니다. 한마디로 질식사하는 겁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7년 만에 개체수가 60% 이상 감소했습니다. 이미 굉장히 위태로운 상황이에요.” 지난 11월 중순에 만난 김병엽 제주대 해양과학대 교수는 냉동고에 보관돼 빳빳하게 굳은 상괭이 사체를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말했습니다. “인간이 다른 한 종을 완전히 없애고 있는 거죠.”

상괭이가 우리 바다에서 영원히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가 커지자 2018년 해양수산부는 상괭이를 해양보호생물로 지정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는 상괭이는 1년에 1000마리가 넘습니다. 도대체 우리나라 바닷속에선 무슨 일이 있어나고 있는 걸까요.

# 안강망, 숨을 조이는 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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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라스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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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괭이는 우리 인간처럼 폐호흡을 합니다. 1~2분마다 한 번씩 숨을 쉬러 물 위로 올라와야 하는 이유죠. 그런 상괭이가 물 밖으로 올라오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한 가지, 인간이 물고기를 잡으려고 바다에 쳐 놓은 그물 때문입니다.

“상괭이가 가장 많이 죽게 되는 종류의 어구는 규모가 굉장히 커요. 그물코가 촘촘하고요. 그물은 바닷속에 잠겨 있죠. 상괭이가 바다에서 유영을 하다가 그물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끝내 찾지 못해요. 숨을 쉬러 물 위로 나올 수 없으니까 물속에서 몸부림치다 죽게 되는 거죠.”

장수진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 연구원이 말한 이 어구는 안강망입니다. 얕은 바다에 설치해서 빠른 조류에 휩쓸리는 물고기를 그대로 잡아들이는 그물입니다. 이 그물에 걸려 죽은 상괭이를 부검하면 공통된 특징이 나타나는데요. 기도와 기관지에서 기포가 확인된다는 점입니다. 김상화 서울대 수의과대 수생물의학실 수의사는 “주둥이에 그물에 긁힌 것으로 보이는 상처가 있는데 다른 장기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폐에서 발견된 기포는 질식사일 가능성을 높이는 증거”라고 설명했습니다.

취재팀은 죽은 상괭이의 마지막 순간이 얼마나 다급했을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해양 환경에 최적화된 이 포유류는, 제가 거의 몰랐던, 또는 영영 알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을 겪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괭이는 영원히 그대로일 것 같았던 바다를 더이상 찾을 수 없게 됐습니다.

“그물에서 탈출하려고 있는 힘을 다해 온몸을 흔드니까 머리에 상처가 굉장히 많죠. 입 주위는 찢어져서 피를 흘리고 있고요.” 상괭이 구조 활동을 하는 박근호 해양환경인명구조단 여수구조대장은 “상괭이 사체를 마주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라며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상괭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면요, 웃고 있어요. 미소를 짓고 있어요. 그래서 가슴이 더 아파요. 상괭이를 죽인 건 곧 사람이잖아요.”

# 해양 먹이 사슬 가장 꼭대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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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라스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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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괭이는 해양 생태계 최상위 동물입니다. 상괭이가 사라지면, 상괭이 먹이인 소형 물고기 수가 급증합니다. 이에 따라 소형 물고기가 먹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크게 줄고요. 이는 다시 소형 물고기 수를 크게 떨어뜨리게 하고, 이어 소형 물고기를 먹는 바다생물의 수를 급감시킵니다. 결국 텅 빈 바다만이 남게 되는 것이죠.

“상괭이라는 단 하나의 종으로만 봤을 때 ‘상괭이 뭐, 그렇게 중요해?’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요. 그런데 바다에서 해조류 없어지는 것 이상으로 상괭이의 죽음이 다른 종류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어요.” 김미연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 연구원이 이른바 ‘상괭이 질식사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드리는 이유입니다.

김병엽 제주대 해양과학대 교수도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어민들을 만나면 ‘고래가 나타나서 고기가 안 잡힌다’ 말씀하셨거든요. 근데 이제는 ‘고래가 안 보이니까 고기도 안 온다’고 말씀하세요. 이제 어민들도 아시는 거죠.”

# 상괭이 탈출 어구, 그리고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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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라스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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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 정부 연구기관은 그물에 갇힌 상괭이가 탈출할 수 있는 어구를 개발했습니다. 상괭이가 그물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그 끝에 구멍을 만든 겁니다.

이건호 국립수산과학원 서해수산연구소 연구사는 “상괭이 탈출 어구 속으로 들어온 상괭이는 유도망을 타고 탈출구로 빠져나가게 되고,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어획물은 유도망을 지나, 그물코를 통과해서 자루그물 끝에 모이게 되는 원리로 만들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장치를 사용하면 상괭이의 90%가 이 장치로 탈출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어획 대상인 어류도 일부 빠져나갈 수 있는데 그 양은 평균 5% 정도에 불과하다고 전합니다. 물론 5%라고 해도 어민들에게는 불필요한 손해로 느껴지기에 어민 대다수는 상괭이 탈출 어구 사용을 여전히 꺼리고 있지만 말이죠.

# “수입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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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라스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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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 가지 염두에 둘 사실은 국제사회가 나서서 제재할 정도로 한국의 상괭이는 아주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의 개정된 해양포유류보호법(MMPA)에 의하면 당장 2022년부터 고래를 과다 혼획(잡고자 하는 종이 아닌 다른 종이 함께 잡히는 것)한 어업에서 생산한 수산물과 가공품이 전면 수입 금지됩니다. 우리로선 수출길이 막히는 겁니다.

# 상괭이에게 바다는 푸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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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진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 연구원은 이 모든 문제의 본질을 짚었습니다. “진짜 핵심은 사람이 얼마나 한 발 물러서서 지금 내 눈앞의 이익을 좇지 않을 것이냐, 그리고 이를 모두가 받아들일 것이냐, 이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동물한테 바뀌라고 할 수 없잖아요. 결국 사람들이 서로 협의를 해나가야 더이상 상괭이가 죽어나가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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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당장 득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금 이 순간에도, 또 한 마리의 상괭이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괭이의 죽음을 외면하는 사이 우리 인간은,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이방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라스트 씨(Last Sea) : 한국 고래의 죽음

본 기획은 헤럴드경제 영상팀 기자, PD, 디자이너의 긴밀한 협업으로 만든 퀄리티 저널리즘 시리즈입니다. 본 시리즈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기획=이정아, 신보경, 유충민, 허연주

연출·편집=신보경

구성·취재=이정아

촬영=신보경, 유충민, 김성우, 이주섭

항공 촬영=이정아

디자인·CG=허연주

제작 책임=이정아

운영 책임=홍승완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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