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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겨울 여행] 익산 미륵사지 vs 아가페 정원…어디부터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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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드론으로 촬영한 익산 미륵사지 전경과 아가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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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에는 따스한 고독함이 있다.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칠 때 속절없는 시간이 야속할 때 익산으로 떠나고픈 이유는 미륵사지와 아가페 정원 때문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보다 땅 아래 묻힌 이야기가 더 무궁무진한 익산에서는 1000년 시간쯤 우습게 넘나들고 한 신부의 고귀한 염원이 비밀의 정원에 남아 길이길이 기억된다.

◆ 1000년의 시간을 깨우는 망치 소리


2019년 4월, 장장 20년에 걸친 미륵사지 석탑 복원 작업이 끝났다. 탑을 지탱하던 흉물스러운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새단장했다. 미륵사지 석탑은 단일 문화재 복원 역사상 가장 오래 걸린 것으로 기록됐다.

미륵사지, 미륵사가 있던 땅이다. 삼국유사에는 선화공주의 남편 무왕이 지은 절이라고 나온다. 절터 뒤로 보이는 산은 미륵산인데, 옛날엔 용화산이라고 불렸다. 무왕과 왕비가 용화산 중턱 사자사라는 암자로 가는 중 연못에서 미륵삼존을 만났고 선화공주는 왕에게 산 아래 절을 지어달라고 요청했다.

미륵사는 약 7세기에 지어져 1587년 이후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두 석탑 사이에 목탑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터만 남았다. 목탑과 동쪽 석탑은 언제 소실됐는지 기록조차 없다. 1915년 일본은 서쪽 탑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콘크리트로 탑을 발라버렸다. 탑을 덮고 있던 콘크리트 양은 185t에 달했다.

동탑은 '미륵사지 9층 석탑'이라고도 불리지만 서쪽 탑은 그저 미륵사지 석탑이다. 최근 작업이 끝난 왼쪽 탑은 6층까지만 복원됐고 그마저도 사방 면이 전부 달라 마치 미완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해서 이름에 몇 층인지를 넣지 않고 석탑이라고만 부른다.

복원 기간이 20년이나 되는 석탑은 왜 끝내 미완으로 남았을까. 1992년 당시 정부는 동쪽 석탑의 복원을 추진했다. 옛 모습을 알 수 있는 문헌이나 그림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고 효율성만 따져 2년 만에 졸속으로 탑을 완성시켰다. 국내 문화재 복원 역사상 최악의 사례로 꼽힌다. 서탑을 복원하면서 '추정에 의한 복원은 하지 않겠다'를 원칙으로 세웠다. 자료를 살피고 또 살폈지만 탑의 층수에 대한 언급은 어떤 문헌에도 없었다.

미륵사지에서는 지금도 발굴이 한창이다. 땅 속에 묻힌 역사를 끄집어내고 숨을 불어 넣는다. 1000년 넘는 세월을 다루는 일은 지나칠 정도로 섬세하다. 커다란 바위를 덮은 흙먼지를 털어내고 솔 모가 닳아 없어질 정도로 정성스레 문질러 닦는다. 돌마다 번호를 붙이고 위치를 확인한다. 가을 오후 햇살에 멀리 미륵산이 멍해지고 섬세한 망치질 소리만 들린다. 1000년의 시간을 깨우는 소리다. 가는 계절, 가는 시간을 귀로 눈으로 지켜본다.

◆ 50년 만에 개방된 공간, 아가페 정원


매일경제

드론으로 촬영한 아가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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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나만의 여행지를 찾고 싶다면 올 9월 개방된 익산 아가페 정원을 추천한다. 아가페 정원은 전북 제4호 민간정원이다. 1970년 서정수 신부가 노인복지시설 아가페정양원을 설립하면서 주변에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것이 지금 모습이 됐다.

요즘 익산에서 가장 핫한 곳이라는 설명만 듣고 따라나섰는데, 입구에서 갸우뚱했다. 정원이라고 했는데 웬 양로원으로 들어간다. 건물을 등지고 산책길을 따라 걷는다. 사람들이 작게 속삭이는 소리와 새 울음소리만 들린다. 철저하게 계산되고 화려하게 멋을 낸 정원보다는 자연스러운 맛이 느껴졌다. 지난 9월 10일에 개방한 아가페정원에는 주중 400~500명, 주말에는 2000명 이상 찾는다.

아가페정양원은 무료 양로원이다. 무위탁 어르신 50명이 이곳에 계신다. 이곳을 세운 서정수 신부는 37년 전에 타계했다. 황등성당을 끝으로 퇴임한 서정수 알렉시오 신부는 박영옥 원장(현재 이사장)이 구매한 용지에 2층짜리 집을 짓고 오갈 곳 없는 노인 30명을 먹이고 재웠다. 우리나라에서 '복지'라는 단어가 나오기도 훨씬 전인 70년대 이미 자선사업을 시작한 거다. 나무를 심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공기가 맑아지니까, 또 하나는 나무를 팔아 양로원 운영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아가페 정원 하이라이트 메타세쿼이아는 담장 역할을 위해 주변 논밭 경계에 심었다.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방문객이 많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진짜 대단한 게 뭔지 아세요. 휴지를 절대 아무 데나 안 버리세요. 저녁에 돌아다니면 쓰레기가 한 주먹 정도밖에 안 나와요.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최명옥 원장의 설명이다.

하늘로 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길도 인상적이었지만 그 앞에 듬성듬성 있는 당단풍에 더 시선이 쏠렸다. 앙상한 가지에 물기가 쭉 빠져버린 꽃이 달렸다. 정원 초입의 어마어마한 밤나무도 신기하다. 옆으로 넓게 퍼진 거대한 밤나무를 보면 이 동네 이름이 왜 '율촌리'인지 금방 이해된다. 최 원장님에게 사연을 듣고 난 후에 정원을 둘러보니 나무 하나 풀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생전 신부님이 '우리가 불교 신자라서 절에 가냐, 풍광이 좋아서 찾아간다. 마음 정화하러 간다'고 말하셨어요. 우리 아가페정원도 모든 사람들의 쉼터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셨대요. 우리 국민 모두가 평화롭게 잘 살아야 한다는 서정수 신부님의 신념을 지키는 것이 저희가 할 일이에요."

▶▶익산 여행 꿀팁=익산은 가까워서 좋다. 용산역에서 KTX 타고 익산역까지 1시간6분이 걸린다. 대중교통으로 익산을 가려거든 'KTX+렌터카 상품'을 추천한다. 왕복 열차비와 렌터카가 포함된 자유여행상품이다. 대략 열차비를 계산했더니 1700원으로 렌트카를 이용하는 셈이다. 운전을 못 하면 익산관광택시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왕복 열차비와 3시간 관광택시가 포함된 자유여행상품은 7만9800원부터다. 내일로 이용자들에겐 숙박과 렌터카 지원금이 각각 2만원씩 지급되고 익산시티투어버스도 1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홍지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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