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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김용균 죽음’ 재판에 선 원청 “위험하게 일하라 한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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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3주기] 한겨레, 업무상과실치사 공판 취재

3주기 되도록 진행 중인 재판

“머리 넣고 점검하는 줄 몰랐다”, “작업 환경은 안전했다”

CCTV·목격자 없다고…‘사망 원인 모르니 책임 없다’ 회피

그들은 ‘죽음의 책임’을 김용균에게 떠넘기고 있었다


한겨레

이미지 일러스트 작가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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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균이 먹고 싶은 데 가자.”

3년 전, 2018년 12월10일 밤 10시33분. 한국서부발전 태안석탄화력발전소의 석탄 상하탄 설비 운전·점검 업무를 위탁받은 한국발전기술 태안사업소 연료운영팀 ‘무적1과’ 카카오톡 단체방에 송년회 장소 문의 글이 올라왔다. <한겨레>가 최근 확인한 단톡방 대화 내용을 보면, 김용균씨(이하 김용균)가 원하는 곳에서 회식을 하자는 동료의 답이 뒤따랐다.

김용균은 이 메시지를 읽었을까? 입사한 지 석달 된 그는 설비점검 방법을 배우기 위해 밤 10시40분 선배와 만나기로 했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김용균이 ‘실종’되자 동료들은 석탄 운송용 컨베이어벨트가 내뿜는 굉음과 칠흑 같은 어둠 속 탄가루가 떠다니는 발전소 안을 샅샅이 뒤졌다. 5시간 만인 이튿날 새벽 3시22분, 그는 점검을 맡았던 컨베이어벨트 점검구 안쪽에서 발견됐다. 그의 주검 옆에는 플래시가 켜진 스마트폰이 놓여 있었다.

석탄화력발전소 하청 청년노동자 김용균이 목숨을 잃은 지 3년이 지났다. 정부는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개선 대책을 내놨다. 김용균의 목숨을 앗아간 위험한 일터는 차츰 개선됐다. 그의 이름을 단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과 그 어머니의 단식에 빚을 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정작 김용균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재판은 아직 1심도 끝나지 않았다.

<한겨레>는 대전지법 서산지원 형사2단독 박상권 판사의 심리로 진행중인 원청 한국서부발전과 하청 한국발전기술 관계자들의 공판 진술을 취재했다. 재판 과정에서 원청 서부발전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김용균 사망 원인이 특정되지 않았다” “김용균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했다” “작업공정은 안전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사이, 서부발전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죽음의 책임을 김용균에게 떠넘기고 있었다.



원청만 모르는 ‘사고 원인’


검찰은 지난해 8월 사고 당시 한국서부발전 김병숙 대표이사, 김경재 기술본부장(이하 당시 직책)을 포함한 관계자 9명, 하청인 한국발전기술 백남호 대표이사와 이근천 태안사업소장을 포함한 관계자 6명을 기소했다. 공소장에 나온 원청의 혐의를 요약하면, 설비의 운전·정비·보수·개선 권한을 갖고 있는 원청이 업무를 구체적·개별적으로 관리감독하면서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할 업무상 주의 의무를 위반해 김용균을 숨지게 했다는 것이다.

한국서부발전은 태안석탄화력발전소 9·10호 발전기와 석탄가스화 복합발전기(IGCC)에 필요한 석탄을 옮기는 상하탄 설비 운전·점검 업무를 한국발전기술에 맡겼다. 해당 상하탄 설비는 저탄장에서 발전기까지 7㎞에 이르는 컨베이어벨트로 이뤄져 있다. 발전소를 돌며 컨베이어벨트 작동 현황을 살피고 기계에 떨어진 낙탄을 치우거나, 잘게 빻아져 컨베이어벨트에 들러붙은 고착탄 등을 제거하는 일이 김용균 등 한국발전기술 노동자들의 일이었다. 이 컨베이어벨트는 철제 ‘외함’으로 덮여 있는데, 컨베이어벨트 점검이나 낙탄 제거는 외함에 뚫려 있는 ‘점검구’를 통해 이뤄진다. 김용균은 컨베이어벨트에 낀 낙탄 제거를 위해 점검구 안으로 몸을 숙여 작업하다 안쪽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원청 변호인은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을 처음 밝히면서 김용균의 주검이 훼손된 채 점검구에서 발견됐고, 사고 현장을 비추는 보안카메라나 목격자가 없다는 점을 들어 “이번 사고의 원인 내지 경위는 매우 이해하기 어렵다”며 “업무상 과실을 이유로 형사처벌을 하기 위해서는 사고가 발생한 구체적 원인 내지 경위가 밝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용균이 어떤 경위로 숨진 것인지 알 수 없는 이상 원청은 법적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이 전략에 따라 재판 과정에서 원청 관계자들은 김용균이 “왜 죽었는지 알 수 없다” “위험하게 일하는지도 몰랐고, 그러라고 시킨 적도 없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사망의 원인을 알 수 없으므로 책임이 없다’ ‘위험하게 일을 시킨 적이 없으니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는 논리를 구성하기 위해서다.

석탄취급설비 유지·정비 업무를 맡았던 김아무개 석탄설비부 차장은 “사고자(김용균)가 열심히 하려고 그(점검구) 안에 들어간 건지는 모르지만 얻을 수 있는 성과는 없다”며 사고 책임을 김용균에게 떠넘겼다. 한국발전기술 관리자들과 함께 있는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수시로 “낙탄을 치워달라” “청소해달라”고 지시 또는 요청한 조아무개 연소기술부 차장도 ‘컨베이어벨트 내부로 몸을 집어넣어 일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법정에서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용균의 사망 원인은 고용노동부·검찰 수사, 특조위 조사까지 일관되게 “김용균이 점검구 안에 몸을 집어넣어 장비를 점검하다 협착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김용균의 주검이 점검구 안에서 발견될 당시 휴대전화 플래시가 켜져 있어, 그 불빛으로 장비를 점검하려 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김용균의 동료들도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점검 대상인 아이들러(운반용 벨트 컨베이어를 받치고 있는 롤러) 의 위치와 점검구의 위치가 맞지 않아 점검구에 신체 일부를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장비가 가동 중일 때도 낙탄·간섭탄·고착탄 제거 작업을 해왔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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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일러스트 작가 ‘마법사’


“위험하다고 말 안 해줘 몰랐다”


박아무개 서부발전 기술지원처장은 “운전원 일부가 벨트 내부에 머리를 집어넣으며 점검했던 사실을 몰랐다” “하부 점검부는 외부에서 내부를 충분히 살펴볼 수 있고 굳이 신체 일부를 집어넣을 필요가 없었다”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한국발전기술에서 방식을 바꿔야지 서부발전이 조처를 취할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어진 검사의 신문에서는 “사고가 발생했던 컨베이어벨트에 가본 적이 없다” “점검구가 열려 있는지 몰랐다”고 답했다. 박 처장의 진술대로라면,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점검에 문제가 없다”고 답한 셈이다.

만약 김용균이 한국발전기술이 작성하고 원청이 승인한 ‘석탄취급설비 순회점검 지침서’에 따라 ‘2인1조’로 근무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현재는 2인1조로 근무한다. 하지만 박 처장은 “지침서에 2인1조로 돼 있는데 단독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서도 “왜 이를 문제 삼지 않았냐”는 검사의 질문에는 “문제가 안 생겼으니까”라고 답했다.

직책상 ‘하청 노동자 안전보건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권아무개 태안발전본부장도 한달에 한번 협력업체들과 산업안전에 관한 회의를 진행하고 합동 안전 순시를 했다. 하지만 김용균이 사고를 당한 컨베이어벨트에 대해선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 점검하지 않았다”고 했다.

서부발전 관계자들의 발뺌에도 불구하고, 재판 과정에서 하청 노동자의 증언과 특조위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발전기술이 ‘낙탄 처리 설비 등을 개선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원청이 개선해주지 않은 사실은 여러번 확인됐다. 원청 관계자들의 이러한 태도에 검사는 “낙탄 처리 지시는 구체적으로 하고, 발전량을 채울 수 있도록 그렇게 관여를 하면서도 설비의 안전 개선은 말하지 않으면 놔뒀단 말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안전했지만 노동부가 시켜 설비 개선했다”


원청 관계자들은 작업환경이 “안전했다”고 주장했다. 석탄취급설비 유지·정비 업무를 맡았던 김아무개 석탄설비부 부장은 판사가 “이 사고와 관련해서 본인이나 소속된 회사에서 부족한 점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게 있나요”라고 묻자 김 부장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검찰이 작업자들의 컨베이어벨트 접근을 막을 방호장치가 설치되지 않았다는 내용을 문제 삼자 원청 변호인은 “공항에 가면 수하물 나오는 것도 벨트인데 방호장치가 돼 있는 것을 보았냐”고 되묻기도 했다. 해당 컨베이어벨트는 분당 260m씩 이동할 만큼 고속 이동해 위험한데도, 공항 수하물 컨베이어벨트와 비교한 것이다.

하지만 ‘안전했다’고 주장했던 작업환경은 현재 많은 부분이 바뀐 상태다. 서부발전은 사고 이후 재판의 공소 사실에도 포함되는 작업장 밝기 개선을 위해 엘이디(LED) 조명을 설치했다. 개방 상태로 운영되던 점검구 입구를 막았으며, 아이들러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아크릴판을 달았다. 컨베이어벨트 밑에 쌓인 낙탄을 물로 치우는 ‘워터워싱’ 설비와 공기 중 석탄 분진을 흡입하는 집진설비도 설치했다. 재판에서 한 주장대로 ‘안전’했다면 굳이 이러한 개선을 할 필요도 없다. 재판에서 검사가 이를 지적하자 김 부장은 “고용노동부에서 너희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의지를 표현하라고 해서 한 것”이라고 했다. 변호인은 이에 더해 “고용노동부가 작업중지를 해서 설비를 전혀 쓰지 못하게 하고, 작업중지를 해지하기 위해서는 할 수 없는 것까지를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데, 이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김 부장은 “그래서 티에프(TF)도 구성해서 그렇게(작업환경을 개선) 했다”고 말했다. 김용균의 죽음 이후 이뤄진 안전 개선은 노동부의 작업중지 조처를 해제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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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 때와 돌변한 법정 태도


원청 관계자들이 재판에서 정면으로 책임을 부정하는 것과 달리, 수사 과정에서는 일부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김 석탄설비부 부장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설비의 안전을 책임지는 석탄설비부장으로서 작업환경을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들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진술했고, 조 연소기술부 차장은 “충분한 방호조처가 돼 있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권 태안발전본부장도 검찰 조사에서 “법적으로 어떤 책임이 있는지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지만 본부장으로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권 본부장은 법정에서 “나의 책임은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하겠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라고 답했다.

사실 서부발전은 사고 발생 한달 뒤인 2019년 1월16일 보도자료에서 공개 반성문을 쓴 적이 있다. 이를 보면 “노동부의 특별감독에서 지적된 모든 위반사항(총 1029건, 과태료 6억7천여만원)을 겸허히 수용”하고, “사업장 전 영역을 철저히 개선하겠다”고 돼 있다. 당시 김병숙 서부발전 대표이사는 “지금까지 석탄설비 작업환경에 대해 꼼꼼히 챙기지 못한 것이 사실이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통렬한 자기반성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오는 21일 열리는 결심공판에서 피고인 신문을 받는 김 전 대표이사가 법정에서도 2년 전 반성을 되새길지는 미지수다. 검찰의 구형 의견, 피고인의 최후진술, 피해자(유족) 진술도 이날 이뤄진다. 공판 내내 책임 회피로 일관한 원청의 태도가 형사책임을 모면할 수 있는 전략이 될지, 반성의 기회를 놓친 중형 선고의 이유가 될지는 내년 초로 예정된 선고 공판에서 확인될 것이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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