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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코앞에 닥친 친환경차 시대…1만 부품업체 ‘대량 실업’ 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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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일자리 위기와 해법 - ① 전환기 산업 재편과 일자리

“내연기관차 부품개발 끊겨” 호소…전기·수소차로 전환 안하면 ‘고사’

다수 부품사는 방향 못잡고 헤매…“전환 실패시 3만~4만 감원”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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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각국이 온실가스 규제를 잇달아 강화하면서 전기차, 수소차,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 등 친환경차의 판매가 급속히 늘고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수출용 전기차인 ‘코나 일렉트릭’을 생산하는 모습. 현대기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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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 발전과 탈탄소 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전통 제조업은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내연기관에서 친환경 전기동력차 중심의 사업 재편을 서두르는 자동차 산업을 비롯해 철강, 석탄발전 산업 등이 겪고 있는 일련의 변화는 권역별로 고용 충격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지역 일자리 위기이기도 하다. 어려운 고용 상황을 타개하고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 기반을 마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와 공동으로 지역 일자리 위기와 해법을 짚어보기 위해 네 차례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정부의 핵심 일자리 정책의 하나인 지역 일자리 정책을 중심으로 전환기 산업 재편과 일자리 문제, 상생형 지역 일자리 사업의 확산과 전망 등을 살펴본다.


삼보모터스는 자동차용 튜브 등을 국내외 완성차업체에 공급하는 부품업체다. 지난 11월 중순 방문한 삼보의 대구 세천공장은 내연기관차 부품이 90% 이상인 사업구조를 전기차·수소차 등 친환경차 중심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이미 전기차용 감속기 개발에 성공했다. 수소차용 연료전지 금속분리판, 수소저장탱크, 전기차 배터리 모듈 개발도 성과가 있다. 완성차업체와 부품 공급을 위한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김영철 상무는 “올해 3월 산업부로부터 친환경차 사업재편 승인을 받아 자금·세제 등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며 “사업전환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라고 말했다.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디와이오토는 자동차용 모터 생산업체다. 모터는 차 유리창을 닦는 와이퍼, 차문 유리가 자동으로 오르내리는 파워 윈도 등에 폭넓게 쓰인다. 디와이는 국내시장의 40%를 차지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지난해와 올해 전기차업체인 테슬라·리비안·카누에 와이퍼와 전동식 파워 스티어링에 쓰이는 모터를 공급하는 계약을 잇달아 따냈다. 카누에는 전기·자율주행차에 처음 적용되는 순수 전기신호식 조향장치에 들어갈 모터도 납품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이 2023년 8월 양산할 택시용 자율주행차 엔이(NE)로보택시에 들어갈 센서 클리닝 시스템도 공급한다.

삼보와 디와이 매출에서 친환경차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5% 이하다. 하지만 앞으로 관련 매출이 급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삼보는 연간 매출이 4천억원 정도인데, 2025년에는 친환경 매출만 4천억원을 달성해, 글로벌 넘버원 친환경차 부품업체로 탈바꿈하는 비전을 갖고 있다. 디와이오토도 올해 약 4천억원대인 매출을 2030년까지 1조원으로 늘린다는 목표다.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온실가스 규제 강화로 휘발유 등을 사용하는 내연기관차가 전기·수소·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내연기관 엔진과 충전이 가능한 배터리 동력을 함께 사용하는 차) 등 친환경차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정부의 제4차 친환경차 기본계획(2021~2025년)에 따르면, 친환경차(하이브리드차까지 포함)의 전세계 판매량은 올해 1043만대로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11.1%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30년에는 5768만대(점유율 47.1%)로 절반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1886년 카를 벤츠가 인류 최초의 가솔린차인 ‘페이턴트 모터바겐’을 발명한 이후 130여년간 자동차산업을 지배해온 내연기관차의 종말도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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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개에 육박하는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들도 내연기관차에서 친환경차 부품으로의 사업전환이 ‘발등의 불’이 됐다. “10년 전부터 전기·수소차 시대 얘기가 나왔지만 모두 긴가민가했는데, 드디어 눈앞의 현실이 됐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친환경차 전환의) 태풍권에 진입했다.” 부품업체들은 올해가 친환경차로의 대전환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에 쓰이는 엔진·변속기 등이 필요 없다. 또 내연기관차에서 3만개에 달했던 부품 수가 전기차에서는 절반으로 줄어든다. 부품업체들은 친환경차 부품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고사할 수밖에 없다. 우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났다. 부품업계는 “올해 들어 내연기관차 부품 개발이 전혀 없다”고 털어놓는다.

삼보는 내연기관차 일감이 사라지자 시작실 소속 직원 6명을 2명으로 줄이고, 4 명은 친환경 사업에 전환배치했다 . 앞으로도 인위적 감원은 없도록 할 계획이다. 디와이도 사업전환으로 줄어든 일자리는 없다. 그러나 모든 노동자가 삼보나 디와이처럼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 내연기관차용 에어클리너를 생산하는 리한은 올해 초 경영난으로 수원공장의 문을 닫으면서 직원의 80~90%가 회사를 떠났다 .

부품업체의 친환경 전환이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050 탄소중립’에 차질은 물론 부품업체 연쇄 도산과 대규모 감원 사태로 경제·사회적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많다. 정부가 지난 6월 작성한 ‘자동차 부품기업 전환 지원 전략’에서도 전기·수소차 비중이 현재의 2~3% 수준에서 2030년 33%로 높아지면 내연기관차에 전속되어 있는 900개 부품업체가 문을 닫고, 3만5천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예상됐다. 경제적 비중이 높은 부품업계에 ‘고용 참사’의 비상등이 켜진 셈이다.

위기 극복의 열쇠인 사업전환의 성공 비결로는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와 전문인력 확보가 꼽힌다. 삼보와 디와이는 모두 친환경차 전환이라는 큰 흐름을 미리 읽고 연구개발에 매달렸다. 두 회사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은 지난해 기준 3.7~3.8%에 달한다. 국내 매출 기준 상위 100대 기업의 2.2%보다 높다. 또 연구개발 인력이 전체의 10~20%를 차지한다. 삼보는 “2008년 친환경연구소를 설립했는데, 매출이 발생하지도 않는데도 미래차 연구개발을 10년 이상 지속하는 기업은 흔치 않다”며 “최고경영자(이재하 회장)의 의지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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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모터스 대구 세천공장 현관 모습, 10여년 전부터 선제적인 친환경차 연구개발을 통해 사업전환에 대비한 기업답게 사명 옆에 ‘톱 아르앤디 시스템’ 구호를 붙였다. 삼보모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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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삼보와 디와이처럼 발 빠른 사업재편으로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는 곳은 소수다. 이는 정부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부품업체 중에서 일부라도 친환경·자율주행차 부품을 만드는 곳은 4%에 불과하다. 정부는 2025년까지 500개(5%), 2030년까지 1천개(10%)의 부품업체를 친환경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부품업계의 현장 분위기와는 온도 차가 크다. 많은 부품업체들이 사업전환이나 신규 사업 투자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부품업계는 2016년 이후 중국의 사드 보복, 코로나 위기, 자동차용 반도체 품귀 사태로 인해 경영난과 고용 축소의 내홍이 극심했던 터라 기초체력이 매우 약해진 상태다. 부품업체의 한 임원은 “전환 대처 능력을 상-중-하로 구분한다면 대부분 중-하에 몰려 있다”며 “2·3차 협력사 중에는 친환경 흐름조차 제대로 모르는 업체도 많다”고 털어놨다.

부품업체의 전환은 개별 기업의 생존 차원을 넘어 미래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현대기아가 수년 전부터 부품업체 설명회, 연구개발 지원, 공정거래 문화 확산 등 다양한 상생 노력을 펴온 이유다. 현대기아는 “완성차기업뿐만 아니라 부품기업들이 동반성장을 할 때 미래차 시대에도 모빌리티 강국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완성차업체가 더 적극적으로 부품업체를 지원해야 한다는 요청도 적지 않다. 부품업체의 한 임원은 “부품업체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더 적극적으로 끌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완성차업체의 연구개발 역량을 부품업체와 공유하는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에 대한 요청이 많다.

부품업체가 혁신에 성공해도 정당한 이윤을 얻지 못해 연구개발 역량을 갖추기 힘들다는 하소연도 여전하다. 이항구 호서대 기계자동차공학부 교수는 “외부감사를 받는 490개 자동차 부품업체의 분석 결과 최근 4년간 연평균 이익률이 3%대에 불과했고, 완성차업체 계열의 부품업체를 제외하면 2%선으로 더 낮아진다”며 “한국 부품업계는 완성차업체가 주는 먹이로 연명하는 ‘가두리 양식장’과 같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이런 터에 부품업체에 사업전환의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정부는 친환경 사업전환을 지원하는 동시에 전환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는 노동자를 보호하는 ‘공정한 노동전환’이라는 투 트랙 정책을 추진 중이다. 대구경북·충청 등 자동차산업의 비중이 높은 지방자치단체들도 지원을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아직 정책 시행 초기인 탓인지 부품업계의 피부에 와닿는 게 부족하다는 반응이다. 부품업계의 한 임원은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지원금을 뿌리는 것은 산소호흡기를 달아 억지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과 같다”며 “연구개발 능력이 있는 기업을 집중 지원하면서, 지원 조건으로 2~3차 협력업체와의 상생을 요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건의했다.

고용 충격에 대한 우려와 정반대로 친환경차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는 호소도 많다. 미국의 자동차 생산 물량이 한국의 2.7배인 데 반해 친환경차 인력은 2019년 기준 25만명으로 6배를 넘는다는 분석도 있다. 부품업체들이 자력으로 전환배치 교육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정부·지자체·완성차업체가 공동으로 부품업체의 전문인력 확보와 전환배치 교육을 지원하는 방안이 시급하다.

성공적인 사업전환과 공정한 고용전환을 위해서는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가 필수적이라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기업 단위에서도 노사협력이 중요하다. 삼보는 전환배치 과정에서 노조와 긴밀히 협의했다. 전환배치 교육도 순조롭게 이뤄졌다. 외환위기 때 노사협력으로 5년 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한 경험이 큰 힘이 됐다. 노조가 없는 디와이는 공정하게 성과를 나누는 ‘이익공유제’가 노사협력의 초석이 됐다. 회사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생존이익률’ 3%를 넘는 이익은 사원과 주주에게 배분한다. 그 바탕에는 조병호 디와이그룹 회장의 경영철학이 있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생산뿐만 아니라 도심항공모빌리티, 로보틱스를 포함한 미래 모빌리티 선도기업으로 변신한다는 비전을 내놓았다. 부품업체들도 친환경 시대에는 자동차 부품을 뛰어넘어 ‘탈자동차’와 ‘사업 다각화’가 핵심 과제로 꼽힌다. 삼보는 “개발 중인 수소 연료전지는 앞으로 자동차뿐만 아니라 기차, 선박, 비행기, 가정용 전자제품 등 다방면에 사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품업계에서는 전기차로의 전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탄소중립을 거스를 수 없는 상황에서 전환이 늦어지면, 해외시장 의존도가 80%를 차지하는 자동차산업의 존립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하지만 미리부터 비관만 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도 많다. 기존 부품업체 중 일부가 탈락해 고용이 줄더라도, 친환경 전환기업이나 신규 기업에서 고용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삼보와 디와이도 미래차 시대에는 전체 고용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미래차에서 한층 비중이 높아질 전장부문의 고용 창출 잠재력도 경쟁국보다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항구 교수는 “미래차 전환에 성공하면 새로운 일자리가 8만개 창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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