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아이들에게 삶의 빛과 그림자 알려주는 아름다운 노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침이슬 50주년 콘서트’ 앞두고 본 김민기 동요들

백구·작은연못·상록수 등

한편의 동화 같은 서사 담아

이달 중 김민기 동요음반 출간

오는 12일 롯데홀서 헌정 공연


한겨레

9월22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아침이슬 50주년 기념 헌정 콘서트 ‘김민기 트리뷰트’에서 가수 장필순이 어린이들과 함께 ‘철망 앞에서’를 부르고 있다. 조혁준(에이치케이엔터프로)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로 30년 넘게 재직하다 은퇴한 임경희씨는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백구’ ‘작은 연못’ 등의 김민기 노래를 많이 가르쳤다. ‘백구’는 키우던 강아지가 교통사고로 죽어서 묻어주는 내용이고, ‘작은 연못’은 깊은 산속 작은 연못에서 붕어들이 싸우다가 죽어서 연못이 썩어들어갔다는 내용이다. 임씨는 이 노래들을 음악 시간에는 노래로 다루고, 국어 시간에는 시적으로 접근해서 다루었다. 아이들에게 가사를 나눠주고 음미하게 한 뒤 노래도 부르고 그림도 그려보게 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노래가 담고 있는 슬픔과 놀람 등의 정서를 풍부하게 느끼고 표현했다.

임씨는 “아이들이 반려동물을 많이 키우기 때문에 ‘백구’ 노래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상실’에 대해 다루고 이야기할 수 있었고, ‘작은 연못’은 남북문제나 사회적 갈등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노래여서 아이들과 사회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좋은 노래였다”며 “보통 동시는 어린이의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하는데 동심은 없고 어른의 관점만 있는 경우가 많았다. 김민기의 노래는 깊이가 있으면서도 따뜻하고 큰 세상을 이야기해보기에 좋은 노래여서 아이들과 종종 나누었다”고 말했다.

유신체제와 독재정권에서 ‘김민기’라는 이름 자체가 ‘금기어’였던 시대에서 지금은 ‘백구’ ‘작은 연못’ ‘상록수’ 등은 초·중·고 교과서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올해 ‘아침이슬 50주년’을 맞아 트리뷰트 앨범과 공연, 전시 등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김민기의 노래 중 동요로 불릴 수 있는 노래들을 모은 동요 음반도 제작·발매될 예정이다. 4050세대에게 김민기는 ‘시대의 아픔’을 노래한 참여 가수이자 저항 가수이지만, 지금의 어린 세대에게는 아름다운 동요 작가로도 기억될 수 있다. 최경식 음악평론가는 음악 에세이 <영혼을 어루만지는 음악 이야기>에서 “김민기의 노래는 가두시위 때 불리면 운동가가 되고, 운동경기장에서 불리면 응원가가 되며, 장례식 때 불리면 장송곡이 될 뿐만 아니라, 예배당에서 불리면 찬송가가 돼”버린다고 지적했는데, 여기에 더해 학교에서 부르면 동요가 되기도 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동요사적 관점에서 본 김민기의 노래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음악평론가 출신 강헌 경기문화재단 대표는 “김민기는 해방 후 일본어 교육을 받지 않은 첫 세대로서, 당시엔 식민지의 극복, 특히 언어 영역에서의 식민지 유산을 청산하고 아름다운 한국어의 울림이나 의미를 미학적으로 형성하는 게 작가와 시인의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며 “김민기 동요들은 어린 세대들에게 아름답고 건강한 한국어를 익숙하게 만들게 하는 노력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작은 연못’이나 ‘백구’ 등의 노래는 기존의 동요들이 가지고 있는 추상성과 관념성을 탈피하면서도 많은 근원적인 의미를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멜로디라인과 음악적 표현력이 풍부하다”며 “아이들의 감성에 수용되면서도 음악의 격조를 전혀 잃지 않는 게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김창남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김민기의 많은 작품이 겉으로 보이는 노랫말의 의미 이면에 굉장히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의미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게 특징”이라며 “특히 ‘작은 연못’의 경우, 아름다운 한편의 동화를 보는 느낌이지만 그 뒤에는 분단문제에서 환경문제까지 해석될 수 있는 깊이 있는 텍스트이고, ‘인형’의 경우는 언뜻 보면 꼬마 아이가 인형을 가지고 노는 귀여운 모습을 담은 노래이지만, 앞뒤 안 맞는 한국 사회의 모순적인 모습을 풍자하는 걸로 해석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9월22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김민기 트리뷰트’에서 가수 알리가 어린이와 함께 ‘백구’를 부르고 있다. 조혁준(에이치케이엔터프로)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존의 동요와 달리 비극적인 내용을 정면으로 다루는 것 또한 김민기 노랫말의 특징이다.

시인이자 <동시마중> 편집위원인 이안씨는 “아이들이라고 좋고 반짝이고 기쁘고 즐거운 것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슬픔이나 비극에 대한 공감력도 어른들보다 뛰어날 수 있다”며 “세계가 빛과 그림자로 이뤄져 있는데 세계의 절반인 그림자를 가리고 마치 세계에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보여주려고 하는 어른들을 아이들은 오히려 믿지 않고, 세계의 진실과 가려진 부분을 눈을 뜨고 보자고 하는 어른들을 더 신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기 헌정사업 추진위원회가 준비 중인 김민기 동요 음반에는 ‘작은 연못’ ‘백구’ ‘인형’ ‘고무줄놀이’ 등과 ‘개똥이’ ‘연이의 일기’ 등 김민기의 많은 어린이 창작뮤지컬에 수록된 곡들이 들어간다. 총 15곡이 선정됐으며, ‘노래를찾는사람들’의 초기 멤버인 조경옥이 부르고, 작곡가 백창우가 음악감독을 맡아 작업 중이다. 이달 안으로 음원과 북시디로 발매될 예정이다.

12일에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아침이슬 50주년 콘서트 김민기 트리뷰트 위드(with) 오케스트라’에서도 김민기의 아름다운 동요들을 만나볼 수 있다. 가수 박학기가 총감독을 맡은 이번 공연에서 장필순이 ‘작은 연못’을 부르고, 이적이 ‘백구’를, 알리가 ‘상록수’를 부른다. 그 외에 작곡가 김형석, 권진원, 노찾사, 유리상자, 이은미, 한영애 등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는 이번 공연은 인터파크(tickets.interpark.com), 롯데콘서트홀(lotteconcerthall.com) 등에서 예매 가능하다. 공연은 12일 하루 오후 2시, 오후 7시 2회만 한다. (문의 02-6292-9368, 9370, 9373).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한겨레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