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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현실 세계의 혐오·폭력·광기… ‘지옥’이 얘기하는 것과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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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지옥’ 흥행 이끈 유아인

‘정진수’의 강렬한 잔상 쉽게 안 가셔

최소한의 등장으로 최대치 긴장감

관객들 기대치 너무 높아 부담감도

빈틈 허용 않는 칼날 같은 시선 느껴

동시대적이고 묵직한 메시지 전달

세계인들의 피드백 얻게 돼 긍정적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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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상으로 만난 배우 유아인(사진)은 기자의 질문이 이어질 때마다 숨을 깊이 골랐다. 이따금 머리를 쥐어뜯었고, 가다가는 고개를 푹 숙이기도 했다. 1∼2초의 쉼 끝에 내뱉은 대답들은 신중하면서도 거침없었다. 망설이던 모습은 어디 가고 안광을 번뜩이며 이야기를 잔뜩 풀어내고는 다시 천진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날 만난 유아인은 ‘베테랑’, ‘밀회’, ‘사도’, ‘소리도 없이’ 그리고 최근 ‘지옥’에 이르기까지 다변하고 선 굵은 그의 필모그래피를 꼭 닮은 모습이었다. ‘반올림’의 아인오빠, ‘성균관스캔들’ 걸오앓이 등 떠오르는 청춘스타였던 유아인은 차곡차곡 그의 길을 걸어 하나의 예술관을 만들었다.

전체를 꿰뚫는 주인공이 없는 ‘지옥’. 사이비 종교단체 새진리회의 초대 수장 정진수 역을 맡은 유아인 역시 ‘주연’보다는 ‘주역’에 가깝다. 4화부터는 아예 출연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진수의 강렬한 잔상은 최종화(6화)가 끝날 때까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최소한의 등장만으로 최대치의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인물.” 유아인이 설명하는 정진수다.

그의 연기는 굵지만 섬세하다. 원작 웹툰 속 정진수 혹은 실제 교주들의 모습들은 도리어 멀리 했고, 대신 유아인의 정진수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마치 조금의 빛도 반사하지 않을 것 같은 정진수의 텅 빈 눈동자, 나지막한 목소리로 블랙홀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는 에너지가 그 산물이다. 유아인은 “충격적인 전사(前事)를 가진 미스터리한 인물이라는 정보를 갖고 연상호 감독과 캐릭터를 계속 구체화해나갔다”며 “출연 분량에 비해 굉장히 핵심적으로 극의 에너지, 긴장감을 만들어 내야 했다. 상당히 즐기면서도 해내지 못하면 어쩌지 싶었다. 많은 장면에 등장해서 자연스럽게 빌드업되고, 몰입감을 만들어내기가 어려운 인물이었다”고 털어놨다.

“연기는 점점 더 어려워져요. 많은 분들이 잘한다고 박수를 많이 쳐주셔서 나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다는 부담감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실질적으로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관객들의 칼날 같은 시선도 느껴집니다. 내가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위험하겠다 싶어요. 늘 그랬던 것처럼 이미 만들어진 캐릭터가 있고 나는 그저 그것을 소화하는 사람이니까, 잘 표현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지옥’은 평범한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존재로부터 지옥행 고지를 받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담으면서 종교와 집단광기, 심판 등의 소재들을 함께 풀어낸다.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오히려 숨 쉴 틈 없이 몰입하게 만든다. ‘지옥’은 유아인이 말하는 ‘연니버스’(연상호 감독의 세계관)의 특징이 잘 녹아있는 작품이다. 유아인은 “새로운 세계를 펼쳐보이지만 한 발은 현실 세계에 있다. 현실 세계와 본인이 창조한 세계를 끊임없이 조율하면서 독특하고 황당해도 공감할 만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매력이자 힘”이라고 설명했다.

“비현실적이고, 폭력적이고, 웹툰에서나 볼 법한 모습들이지만 이 작품 속 혐오, 폭력, 집단의 광기를 현실세계로 끌고 와 보면 비슷한 현상들이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맹신하고, 그걸 무기 삼아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현상들 역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죠. 우리의 ‘믿음’ 같은 것들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 것까지가 ‘지옥’이 이야기하는 것이라 봅니다. 상당히 동시대적이고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아인은 “작품이 공개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6회를 다 본 척하는 리뷰나 어디선가 읽은 한 줄, 유튜브에서 5분가량 본 정보를 맹신하며 주변에 떠드는 일들이 생각났다”며 웃어보이기도 했다.

‘지옥’은 지난달 공개된 지 하루 만에 넷플릭스 인기 순위 1위에 올라 장기간 자리를 지켰다. “지옥이 ‘제2의 오징어 게임’ 정도로 치부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며 오히려 ‘오징어 게임’보다 좋다”(영국 가디언지)고 평하는 등 외신들의 극찬도 이어졌다. 유아인은 “세계 1등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느껴 보고 있는 중”이라며 “플랫폼을 통해 우리가 만들어낸 작품이 세계로 공개될 수 있다는 지점이 가장 반갑다. 작품 해석, 평가가 점점 치열해지는 과정 속에서 좀 더 폭넓은 반응들, 세계 관객들의 피드백을 얻을 수 있다는 부분이 배우로서 긍정적이고 고무적이다”라고 들뜬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너무 크게 의식하지 않고 하던 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창작자 분들이 만들고자 했던 핵심을 놓치지 말고, 작품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고 만든다면 많은 분들이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내 스스로도 선을 두지 않고, 연기 핵심을 지키면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내비쳤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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