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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脫서울·向수도권 동시 흡수 ‘인구 블랙홀’ 경기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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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6년 서울인구 340만명 경기 전입

지역총생산도 477조, 서울 435조 앞서

서울 지원거점→자립생활 독립공간 진화

경기도 팽창론 속 ‘분도의제’ 도 이슈로

헤럴드경제

전영수 교수한양대 국제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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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제주로, 사람은 한양으로 보내랬다. 언제부터인지 통용된지 몰라도 꽤 영험한 예언인 듯하다. 작금의 한국현실을 일찌감치 꿰뚫어본 선구안에 가깝다. 서울일 때 비교우위의 교육·취업·자산기반을 움켜쥘 수 있다. 기회를 원하면 서울일 수밖에 없는 카드는 갈수록 공고해진다. 고공행진하는 집값의 향배는 상징적인 현실근거다. 광란 수준으로 단기 급등한 가격은 비정상일지언정 일상사로 흡수된 듯하다. 반면 비서울은 양극화의 패배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다. 버틸수록 뼈아픈 박탈감이 가중된다. 부모가 어디 사느냐로 혼삿길이 정해진다는 웃픈 말까지 있다. 곧이곧대로 들을 건 아니나, 서울의 독점력은 그만큼 강력해졌다.




비서울의 한계는 점점 더 뚜렷해진다. 서울 집중과 지방 과소는 동행한다. 전체적으로 인구는 늘지 않는데 한쪽으로 쏠리면 한쪽은 빌 수밖에 없다. 급격해진 인구변화는 가속적인 도농 격차의 또다른 이름이다. 생산·소비·투자가 없는 3무(無)공간에 인적이 뜸해지는 건 자연스럽다.

도시집중은 한국만의 특이점은 아니다. 산업·현대화를 겪은 선행국가도 도시화를 체화했다. 실제 세계 인류 대부분은 도시민이다(2020년 도시화율 56%)다. 한국은 92%로 너무 높고 빠른 게 문제다. 도시화의 물결이 엄청난 속도로 범위를 확산했다는 얘기다.

또 다른 관전지점은 서울의 분해 여부다. 도시승자는 정확히 수도권이다. ‘도시화=수도권’으로 서울은 내용상 좀 구분된다. 분해하면 서울파워 중 일부는 약화된다. 인구감소가 그렇다. 천만인구의 하향돌파는 서울의 지속가능한 성장궤도를 위협한다. 근접불능의 빗장도시가 건강하게 발전하는 건 어렵다. 그럼에도 도농격차를 염려하는 건 수도권 자원독점의 평균치를 계속해 끌어올린 새로운 대체 공간 때문이다. 경기공화국의 출현이다.

서울을 떠받치던 종속적 하위공간이 시나브로 서울 대체의 위협적 대안카드로 자리매김했다. 신도시 등 서울에의 노동공급지가 자생적인 직주생태계로 전환하며 경기공화국의 생활환경은 업그레이드됐다. 실제 경기는 인구뿐 아니라 경제·문화 등 생활기반을 강화하며 급성장했다. 아직은 일부지만, ‘베트타운→자족도시’의 실험·성과는 하나둘 확장된다.

▶경기공화국의 성장경로 ‘왜 경기인가?’=경기도는 그저그런 광역지자체가 아니다. 수도서울을 능가할 현실성과 잠재력의 경쟁우위를 갖췄다. 부동산 등 십자포화의 서울 논란에서 비켜선 채 조금씩 세를 확장했다. 성과지표는 놀랍다. GRDP(지역총생산)는 477조원으로 435조원의 서울을 앞섰다(2019년). 광역지자체 중 1위다. 1985년 서울(23조원)이 경기(13조원)를 월등히 앞섰으나(전국·92조원) 최근 역전됐다. 2014년부터 서울(341조원)은 경기(352조원)에 1위를 내줬다. 이때부터 뒤바뀐 격차는 더 벌어진다. 속도도 빨라 2019년 증가세(실질성장률)는 경기(6.4%)가 서울(2.6%)의 3배에 달한다. 결국 경기·서울을 합하면(912억원) 한국 전체(1,927조원)의 47% 수준이다.

인구증가는 더 놀랍다. 2021년 10월 1360만명으로 1995년(764만명)의 2배까지 늘었다. 반대로 서울은 950만명대까지 축소됐다. 천만도시 수도서울은 2003년 경기에 인구역전을 허용했다. 이후 서울인구의 경기전입은 가속화된다. 최근 6년간 340만명이 빠져나갔다. 연평균 50~60만명 규모로 대개는 2030세대다.

경기인구는 두 갈래로 커진다. ‘탈(脫)서울’과 ‘향(向)수도권’의 경로로 서울·지방인구를 동시다발로 흡수한다. 인구야말로 역동적 발전의 원동력이다.

신블랙홀로 떠오른 ‘경기파워’의 배경은 복합·구조적이다. 입지가 갖는 지경학적 특장점에서 비롯된다. ‘서울↔지방’의 버퍼존 답게 도농격차의 안전지대 역할을 한다. 지방은 싫고 서울은 힘든 사람들의 욕구를 맞춰주는 타협적인 공간이 됐다는 얘기다. 교육·취업의 청년욕구와 의료·편의의 노년 지향이 두루 해소된다.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고물가) 등 서울독점의 부작용도 경기라면 일정부분 해결된다. 경기파워의 완성은 ‘일자리’로 요약된다. 고밀도 공간답게 서울의 고용창출력은 굳건하다. 즉 일자리는 서울에서 유의미하다. 그렇다고 서울의 값비싼 주거비용을 감내하기란 어렵다. 절충안이 서울·경기의 직주분리 라이프모델이다. 주거수요를 반영해 신도시조차 압축·고밀도형 컴팩트시티로 조성되는 이유다. 1기(분당·일산 등), 2기(광교·동탄 등), 3기(남양주·하남 등) 모두 비슷하다.

뒤이은 교통확충은 자연스럽다. ‘건설→교통’은 신도시의 보편적인 개발양태다. 시차가 있을뿐 좋아질 확률이 높다. 실제 경기권의 철도·도로망은 확충세로 서울접근성은 향상된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강북보다 강남접근은 더 좋다는 평가도 있다. 사실상 서울생활권이다.

▶경기의 미래조감 ‘서울의존형→직주자립형?’= ‘경기의 힘’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거세질지 약해질지 관심은 뜨겁다. 지분·영향력을 볼 때 수많은 이들의 삶과 직결된 물음이다. 쉽잖은 화두지만, 흩어진 퍼즐을 엮으면 대략의 스케치는 유추된다. 일단 서울의 보완재를 넘어 대체재로 변신할 수 있다. 이미 수도권 일극 집중의 최종적인 실현공간으로 경기의 비교우위는 커졌다. 수도서울의 지원거점에서 자립생활의 독립공간으로 진화한다는 얘기다. ‘서울의존→직주자립’이다.

몇몇 도시는 직주락(職住樂)의 ‘도시형 로컬리즘’까지 실험된다. 선행이론과도 맥이 닿는다. 발전수준별 공간지배(존 프리더먼)는 ‘자족형 분산도시→단일형 집중도시→주변형 경쟁도시→기능형 협력도시’의 4단계를 따른다. 이 기준으로 서울·경기는 3단계(주변형 경쟁도시)에 진입한 듯하다. 고성장기 서울독점의 2단계(단일형 집중도시)에서 벗어난 것이다.

지역개발론에 따르면 한국전체의 도농격차는 불균형을 내포해도 서울·경기는 자본·노동·기술의 상호교류로 균형·순환구조로 수렴되고 있다. ‘서울→경기’로의 자유로운 요소이동이 가격·소득의 균형을 달성하면 충분히 바람직한 현상일 수 있다. 인구미래로 분석하면 경기파워는 여타지역을 압도한다. 감사원이 인구추계의 빈틈인 사회이동까지 넣어 미래인구를 돌려봤더니, 향후 경기만 인구감소·소멸위기를 버텨냈다. 17개 광역지자체 중 유일무이한 하방경직성(감소저지세)을 갖췄다.

100년 후(2117년) 한국인구는 1510만명까지 줄어들며 229개 기초지자체 모두 소멸위험을 겪을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데 100년 후 경기인구(441만명)는 전체의 29%로 17%의 서울(262만명)을 압도한다. 와중에 경기멤버인 하남·김포·광주·화성·양평의 5개는 2067년까지 되레 인구증가의 이변 도시로 예측됐다. 다른 경기 멤버도 전국 평균보다는 감소폭이 덜하다. 백만도시를 검증받은 수원·고양·용인 등이 대표적이다. 그나마 광명·안산·과천 등은 위험하다. 공통점은 뚜렷하다. 신도시·일자리 등 직주자립의 기반강화로 요약된다.

가령 신도시 하남은 최근 6년간 90%의 인구증가율을 보였다. 화성은 2010~19년 인구순유입(29만9000명)이 전국 1위다. 이대로면 백만도시 전환은 시간문제다(2021년 9월말 88만명). 생산가능인구 72%로 젊은 도시답게 삼성·현대·LG 등 1만여개 기업이 소재했다. 기업도 서울근접·인재확보의 장점을 클러스트로 최대화해 정주매력에 동참한 결과다.

경기의 직주자립은 강화된다. 수도권 규제완화까지 심화되면 신블랙홀의 면모는 완성된다. 판교사례가 상징적이다. 그저그런 신도시의 한계를 딛고 판교는 테크노밸리를 위시해 강력한 자립기반을 갖춰간다. 연구개발·혁신인재의 플랫폼이 되면서 ‘규제완화→기업집중→인구유입→고용창출→소비증대·직주강화’의 흐름에 올라탔다. 2020년 SK하이닉스의 용인공장 건설도 규제완화발 직주강화가 예상된다. 이로써 수도권은 충청권까지 확장된다는 말까지 들린다. 경기팽창이란 의미다.

분도(分道)의제도 이슈다. 실효성을 위해 경기북도·경기남도로 나누자는 얘기다. 경기남도가 서울보다, 경기북도가 부산보다 인구가 많으니 찬반양론은 뜨겁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은퇴 후 희망지역에도 경기는 1순위에 꼽힌다.

경기(35%)가 지방(32%), 서울(17%)보다 선호된다. 친환경에 생활유지·편의시설이 적절히 구비된 결과다. 필요시설로 손꼽힌 의료(33%)만 봐도 경기선호는 자연스럽다(2021·직방). 즉 경기는 저출산·고령화의 우호적인 생활환경을 두루 갖췄다. 집값이 변수지만, 인구변화에 발맞춘 욕구 실현적인 공간선호는 대세다.

정년퇴직·수명연장·소득단절에 휩싸인 베이비부머의 대량은퇴와 맞물린 경기매력의 부각도 기대된다. 신도시·일자리에서 비롯되는 세수·복지우위와 직주락의 실현공간에 눈길이 가는 건 당연지사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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