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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정현권의 뒤땅 담화] 30년간 늘지 않는 골프 스트레스 받느니 접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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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두 번 필드에 나가는데도 실력은 오히려 주는 것 같아.”

얼마 전 골프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진한 아쉬움을 토로하자 보험사 임원으로 퇴직한 친구가 위로하며 들려준 말이다. 본인도 2년 전에 비해 평균 3타 정도 실력이 줄어든 것 같다며 나를 달랬다.

간혹 골프가 잘 풀려 예전보다 좋은 성적을 내기도 하지만 극히 드물다. 심한 편차에다 날이 갈수록 기량이 부친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몇 달 전에는 일주일 만에 20타 차이라는 극단적인 스코어를 받기도 했다. 홍천의 한 골프장에서 기준 타수보다 한 자릿수를 넘긴 생애 최고의 성적을 냈다. 일주일 뒤엔 여주에서 90대 중반의 성적표를 받아 경악했다. 아무리 골프장의 난이도를 감안해도 허탈감을 삭이는 데에 꽤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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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좋은 타수를 기록하면 먼저 캐디에게 스마트 스코어를 신청한다. 귀가해서 휴대폰을 열어 또 확인하며 꿈같은 여운을 즐긴다. 며칠간의 진한 여운은 다음 골프에서 막을 내린다.

터무니없는 타수를 기록해 지난주 스코어를 자랑했던 동반자들에게 얼굴을 못 들고 자학한다. 몇 번 이런 경험이 쌓이면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나 싶은 생각에 젖는다.

에너지가 넘치고 마치 골프를 위해 태어났다는 분위기를 풍기는 선배 골퍼가 있다. 어느 날 팔꿈치에 엘보가 왔다며 보호대를 차고 골프장에 등장했다.

60대 중반임에도 젊은 층에 밀리지 않는 비거리를 줄곧 유지해 왔다. 작년에는 1박2일 남도 골프투어에서 직장 때보다 더 펄펄 넘치는 플레이를 펼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젠 힘도 좀 부치고 샷 정확도도 예전 같지 않다고 토로했다. 지난해까지 연속 사흘, 혹은 나흘간 강행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무리가 간다는 것. 엘보도 예전 비거리와 기량을 유지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옛날을 생각하며 축구공을 차고 싶지만 원하는 대로 몸이 따라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틀 연속 골프를 하면 보통 뒷날의 스코어가 덜 나온다고 한다. 딱 필자와 유사하다.

문제는 공기 좋고 아름다운 자연에서 스트레스를 푸는 게 목적인데 왜 거꾸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느냐다. 미스터리다.

“30년간 골프를 쳤는데 요 모양 요 꼴이니 관둬야 하나 어쩌나.” 언젠가 골프를 하며 직장 선배 한 분이 푸념하며 내뱉은 말이다.

그러면서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골프 초대에 응하고 만남 자체를 피하지 않는다. 성적만 생각하면 열불이 나지만 친한 사람과의 모임에 골프만 한 수단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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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는 개인 종목인 동시에 단체 종목이다. 개인 성적도 중요하지만 팀워크도 이에 못지않다. 단순히 개인 실력을 드러내기 위해 골프장에 온 것만은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느끼는 점은 60대를 넘긴 동반자들의 타수가 평균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나도 포함된다.

간혹 세월의 흐름에 역행하는 고수도 있지만 극히 일부다. 얼핏 보기엔 변함없는 실력으로 비치는데 정작 본인은 어떻게 느끼는지 알 길이 없다.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골프 기량의 감소 원인을 애먼 나이 탓으로 돌리며 서로 위로한다. 급기야 기량 유지는 아주 예외적이며 못 치는 게 정상적이자 상식이라고 입을 맞춘다.

“골프 스트레스는 다른 스트레스와는 다르죠. 중독성이 있다고나 할까요. 탈출하지 않고 다시 골프로 풀려고 하니까요. 해장술을 마시는 것과 비슷하죠.”

김태영 한국대중골프장협회 부회장의 말이다. 골프 스트레스가 중독을 유발하는 호르몬 작용인지도 모르겠다.

‘명랑 20%, 긴장 80%.’ 한 고수 친구가 골프를 이렇게 정의했다. 집중하면서 골프를 즐기되 동반자와의 분위기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골프를 하면서 왜 쓸데없는 말이 필요한가 생각한 적도 있다. 골프장에 왔으면 딴 생각 말고 골프만 잘 치면 된다는 생각이다.

사실 골프를 하면서 잡담하고 먹고 마시면 집중에 방해요소로 작용한다. 언젠가 골프 모임에 초청을 받았는데 18홀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은 사람을 본 적 있었다.

골프가 끝난 뒤 원래 과묵한 스타일인지 물어봤는데 그냥 골프에만 몰입해 좋은 성적을 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성적이 저조해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에 입에 자물쇠를 채웠다는 것.

골프를 노년의 꿈으로 삼는 직장인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골프로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아니러니다.

필자의 골프도 조금씩 변하는 것 같다. 몰입하는 자신을 즐기면서도 골프 외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것 같다.

러프 너머에 핀 야생화가 보이고 먼 산 구름도 눈에 들어온다. 성적에만 올인할 게 아니라 골프 전체를 즐기고 싶다.

골프 스트레스를 승화시키는 나만의 관점이 필요한 것 같다. 법륜 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즐거움과 괴로움은 한 뿌리다. 같은 것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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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수 유지하는 시니어 비결

프로선수, 전문 교습가 등의 조언을 종합하면 연습이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리 골프 천재라도 실력은 준다. 특히 골프를 위한 근육의 움직임은 원래 인체에 부자연스러워 클럽을 조금만 손에서 놓아버려도 곧바로 둔해진다고 한다.

축구 당구 탁구 같은 종목보다 훨씬 민감한 멘털 게임이기도 하다. 올해 초 자동차 사고로 부상한 타이거 우즈가 지금 필드에 나가면 80대를 제대로 칠 수 있을까.

9개월 넘게 클럽을 잡지 않으면 예민한 감각이 아예 도태됐을지도 모른다. 원래 기량을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할지, 재기가 가능할지도 알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일단 60살을 넘긴 나이에도 타수를 유지하려면 정기적으로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날마다 하는 연습이 아니라도 꾸준한 연습이 따라주어야 한다는 것.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라도 실내나 실외 연습장에서 연습을 습관화할 필요가 있다. 연습 없이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며 스트레스를 받는 건 도둑 심보나 마찬가지라고 전문가들은 일침을 놓는다.

연습과 함께 한두 달에 한 번씩 샷과 스윙을 점검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잘 아는 교습가나 고수들에게 점검을 받으면 된다. 그들은 자신의 스윙 패턴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미세한 변화마저 감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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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 경험도 중요하다. 일주일에 한 번, 적어도 한 달에 두 번 정도 필드에 나가 실전을 익혀야 한다. 골프비용이 너무 올라 부담스럽기에 예전처럼 자주 나가지는 못해도 실전 횟수가 줄면 아무리 연습해도 타수를 유지하기 힘들다.

자기관리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가장 큰 요건일지 모른다. 건강을 관리하지 못하면서 예전 골프실력을 유지하려는 마음은 집착일 뿐이다.

평소 꾸준한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몸을 관리하면 건강에 좋을 뿐만 아니라 골프 인생을 늘리는 길이기도 하다. 시니어 골프 영웅 베른하르트 랑거(64)는 72㎏ 몸무게를 10년 이상 유지하는 것을 비결로 소개했다.

틈날 때마다 골프를 위한 기초운동을 전문가들은 주문한다. 하루에 20번 이상 빈 스윙을 한다든지 집이나 사무실에 매트를 깔아놓고 수시로 퍼트 연습을 하는 식이다.

견고한 싱글 핸디캐퍼인 한 친구는 샤프트 길이의 막대를 목 뒤 양 어깨에 올려놓고 기상과 함께 50번씩 좌우 돌리기를 한다. 그는 별도 연습 없이도 싱글 타수를 지켜나가고 있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 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5호 (2021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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