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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동력 떨어지는 종전선언...베이징 보이콧 이어 美 의회까지 반대 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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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화당 연방하원 의원들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서한을 백악관과 국무부에 보냈다. 최근 미국의 베이징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선수단은 참가하되 정부 대표단은 보내지 않음)으로 이를 종전선언의 기회로 삼아보려던 정부의 구상이 좌초 위기를 맞은 가운데 미 의회의 반대 목소리가 또 다른 걸림돌이 될 수 있단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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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남북미중 종전선언을 제안하는 문재인 대통령.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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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공화당 의원들 "종전선언, 한반도 안보만 위협"



미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35명은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의 진전이나 북한 주민에 대한 기본적인 인권 보장 없이 일방적으로 종전 선언과 평화 협정을 추진하는 건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내용의 서한을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성 김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에게 보냈다고 8일(현지시간) 밝혔다.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남·북·미·중 종전선언을 제안한 뒤 미 의회에서 집단적인 반대 움직임이 나온 건 처음이다. 종전선언이 아무리 정치적 선언이라고 해도 의회의 반대에 부딪히면 미 행정부 차원의 추진 동력도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의원들은 서한에서 "종전선언으로 평화가 오는 대신 한반도 안보가 심각하게 불안정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평화를 담보하려면 양측이 이를 지키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며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은 핵 개발과 미사일 시험을 계속하면서, 평화와 관련한 회담 전 대북 제재부터 1순위로 풀어야 한다고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김 위원장은 지난 9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종전을 선언하기에 앞서 이중적인 태도, 적대시 관점과 정책부터 먼저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전선언을 하려면 제재를 포함한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고, 북한의 무력 증강만 '도발'로 문제 삼는 이중 기준을 적용하지 말란 요구다. 지난달 국정원 보고에 따르면 북한은 이에 더해 종전선언 논의를 위한 '만남'의 조건으로 민생 관련 제재 해제, 한ㆍ미 연합훈련 중단 등을 추가로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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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화당 의원 35명이 백악관과 국무부에 보낸 종전선언 반대 서한 캡쳐. 영 김 하원의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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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행위 종식, 북핵ㆍ인권 문제 해결된 뒤 논의해야"



의원들은 이날 서한에서 "종전선언을 할 경우 주한미군에 위협이 된다"며 "설익은 평화협정을 근거로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와 한ㆍ미 연합훈련 영구 중단을 요구할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이어 북한이 과거 한국, 미국, 유엔과 맺은 합의를 계속 어긴 사실을 언급하며 "북한 정권이 평화 협정(peace agreement)의 조항을 지킬 것으로 볼만한 역사적 선례가 없다"고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적대행위를 끝내자는 선언은 북한이 핵 무기를 없애고 인권 문제에 있어 입증 가능한 개선을 이룬 후에 북한과 장기간의 포괄적인 협상을 마치면서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종전선언은 결과로서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로, 종전선언을 촉매제로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자는 한국 정부의 '종전선언 입구론'을 반박한 셈이다.

서한 작성을 주도한 한국계 영 김 공화당 하원의원은 이날 기자들에게 배포한 입장문을 통해 "김정은을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은 김정은 스스로가 거듭 증명했다"며 "우리는 믿을 수 없는 정권과 거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밝혔다.



美,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에 내부 신중론까지



현재 한ㆍ미는 종전선언과 관련한 막바지 문안 협의 단계로 실제 문안이 완성될 경우 이를 북한에 어떤 형식과 급에서 전달할지도 고심하고 있다. 다만 미국 측은 최근 들어 한국 정부가 사용하는 종전 '선언'(declaration)이라는 명칭 대신 종전 '성명'(statement)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종전선언을 하더라도 현 정전체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신중함을 이어가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다만 북한은 지난 9월 이태성 북한 외무성 부상의 조선중앙통신 담화를 통해 "종이 장에 불과한 종전선언"과 "아무런 법적 구속력도 없는 종전선언문을 들고 사진이나 찍으면서 의례행사를 벌려놓는 것"을 비판하며 법적 효력과 실질적 위상이 없는 종전선언에 대해 회의적 입장을 보였다.

이처럼 미국과 북한이 각각 원하는 종전선언 사이에 본질적인 간극이 좀처럼 메워지지 않고 미국 내 종전선언 반대 목소리도 함께 높아지는 가운데,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지난 6일(현지시간) 내년 2월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와 관련, 내심 베이징 올림픽을 남·북·미·중 종전선언 선포의 이상적 무대로 여겼던 정부의 구상에 악재가 잇따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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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뒤 합의서를 들어보이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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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이례적 브리핑 자처..."오해 말아달라"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같은 날 "미 공화당 의원들의 서한과 관련해 다소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며 브리핑을 자처했다. 미 의회가 미 행정부 앞으로 보낸 서한에 대해 한국 외교부가 직접 나서서 국내 언론을 상대로 추가 설명을 하는 건 이례적이다.

이 당국자는 "정부가 특정 국가의 특정 움직임에 대해 공식적으로 말하는 건 외교 관례에 맞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비공식적으로는 우리 입장을 설명하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며 운을 뗐다. 그러면서 "서한에 (종전선언이) 역내 안정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한다거나 주한미군 관련 내용이 있지만,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초기 단계에서 추진하는 법적 구속력 없는 조치로 현 정전체제에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종전선언은 대화 재개와 비핵화 협상의 마중물로 활용하는 전술적 영역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당국자는 미 의회에는 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종전선언을 지지하는 법안도 발의돼 있다고도 강조했다. 미 의회 내에 종전선언 찬반 목소리가 공존한다는 설명이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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