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대전 후 폐허된 그 옛날엔 지역 주민 일터…지금은 역사·전통 지키는 대표 자산
스위스 까이에 초콜릿 공장. © 신정숙 통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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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뤼에르=뉴스1) 신정숙 통신원 = 몇 해 전 스위스 취리히 응용과학대에서 여수엑스포 내 스위스관을 방문한 한국 대학생을 상대로 실시한 스위스 이미지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Δ알프스 눈 Δ빙하 Δ호수 Δ소 등 자연이 주로 연상됐고, 그 다음으론 Δ시계 Δ초콜릿 Δ치즈 Δ칼과 같은 스위스 제품이었다고 한다. 최신 기술 혹은 혁신으로 생산된 게 아닌, 자연과 더불어 그곳에서 오랜 전통을 이어 생산되는 수공업제품들이다.
스위스내 슈퍼나 편의점, 또는 관광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초콜릿 브랜드 가운데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밀크 초콜릿을 처음 만든 까이에(Cailler)가 있다. 이 초콜릿 공장은 치즈로 유명한 그뤼에르 지역에 있는데, 두 제품을 맛보기 위해 한 해 이 지역을 방문하는 관광객 수는 평균 100만명 정도라고 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까이에 초콜릿은 해외로 수출되지 않는다. ‘스위스’ 라는 나라를 생각해 보면 다소 놀라운 사실이기도 한데, 수출을 위한 설비 확대와 투자보다는 오래된 역사를 가진 브랜드의 역사, 전통, 그리고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이 아닌가 싶다.
까이에 초콜릿은 지난 2019년 창립 200주년을 맞았다. 1819년 프랑스와 루이 까이에 (François-Louis Cailler)는 브베(Vevey)에 자신의 초콜릿 공장을 설립했다. 회사는 더 큰 규모로 성장하면서 파산을 하기도 했지만, 아내 루이즈 알베르틴 까이에(Louise-Albertine Cailler)가 적극적으로 사업에 참여하면서 오히려 더 성장을 이루게 된다.
창립자가 사망한 후 아들들과 함께 운영되던 회사에 사위 다니엘 피터( Daniel Peter)가 합류, 1875년에 처음으로 밀크초콜릿을 만들어 생산하게 되었다. 그는 마케팅을 위해 초원, 산, 젖소가 있는 스위스 엽서 이미지를 적극 활용해서 관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지금은 그 이미지를 이용한 안티크 초콜릿 상자를 판매하고 있다.
안티크 상자로 더 잘 팔리는 까이에 초콜릿 상자들. © 신정숙 통신원 |
1898년 창립자의 손자인 알렉상드르 루이 까이에(Alexandre-Louis Cailler)는 지금의 공장이 있는 그뤼에르 지역 브혹(Broc)에 새 공장을 설립했다. 1905년 회사는 네슬레(Nestlé)사를 위해 밀크 초콜릿을 생산했고, 1차 대전 중 액체 형태의 연유를 사용한 새로운 밀크초콜릿을 개발했다. 덕분에 오늘날 까이에는 초콜릿에 강렬하고 우유 같은 맛과 크림 같이 녹는 질감을 주는 이 조리법을 사용하는 스위스 유일한 회사가 되었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1929년 까이에사는 네슬레사에 합병되었다.
스위스 밀크 초콜릿이 사랑받는 이유는 풍부한 초원의 풀을 먹고 자란 젖소와 그들이 생산한 우유를 농축해 내는 로스팅 기술에 있다. 그뤼에르라는 지리적인 특수성을 이용해 만들어지는 밀크초콜릿 한 조각은 식당, 커피숍, 일반 가게 등에서도 쉽게 맛을 볼 수 있다. 마치 한국의 식당에서 박하사탕을 식사 후에 먹을 수 있는 것처럼.
두 번의 세계 대전이 끝나고 유럽은 폐허가 되었다. 스위스는 중립국이라는 이유로 전쟁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농촌지역 사람들의 생활은 궁핍했고 이 시기 많은 사람들이 브라질, 캐나다 등으로 이민을 갔다. 이때 그뤼에르 지역에 세워진 까이에 공장은 지역 주민들에게 한줄기 희망이었을 것이다. 대중교통도 없던 그 시절 사람들은 걸어서 1시간이 넘는 공장에 와서 일을 했다.
그뤼에르 뷸에 사는 에르네스트 그레모(Ernest Gremaud, 84)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그땐 먹고 사는 것만도 힘들었지. 아버지는 겨우 소 몇 마리로 농사를 짓고 있었고, 우리 형제들도 아버지를 돕거나 다른 집 일손을 도와야 먹고 살 수 있었어. 그때 까이에 공장이 생겨서 어머니가 일을 할 수 있었고 집안 살림에도 도움이 됐지. 차가 없었던 때라 어머니는 매일 아침 한 시간을 넘게 걸어서 공장을 갔다가 다시 걸어와야 했어. 힘든 때였지. 그래도 그 공장 덕분에 일을 할 수 있었으니 고마웠지. ”
초콜릿 상자를 나르는 공장의 노동자. © 신정숙 통신원 |
그 옛날엔 지역 주민들의 생계 유지를 위해, 지금은 역사와 전통을 지키는 초콜릿으로 그뤼에르를 비롯한 스위스를 대표하는 하나의 자산이 된 까이에 초콜릿. 대규모로 생산해서 전세계적으로 판매되면 더 유명해질 수도 있겠지만 정통성을 지키는 것만큼 더 큰 유산이 있을까 싶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가까워 오면 스위스 사람들은 분주하다.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인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바쁘고 무엇보다도 선물을 고르고 사느라 힘들어하기도 한다. 고민고민하다가 고르는 선물, 또는 언제 주고 받아도 기분 좋은 선물,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이는 선물이 초콜릿이 아닐까 싶다.
겨울이 되면 생각나는 영화 <찰리와 초콜릿공장>의 마지막은 억압적인 아버지를 피해 어린 시절 집을 나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성장한 초콜릿 공장 주인 윙카가 황금티켓 최종 우승자가 된 찰리와 함께 아버지를 찾는 장면이 나온다. 억압적이기만 한줄 알았던 아버지는 윙카가 집을 떠난 이후 신문이나 잡지에 나온 아들에 대한 기사를 모두 스크랩해 두었다. 아들을 너무 사랑하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몰라 무뚝뚝하기만 했던 아버지는 아들이 잘 되기만을 바랬던 것이다. 그가 아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사랑을 표현하는게 이렇게 어렵다면, 아직도 어려워하는 이들이 있다면 달콤하고 부드러운 밀크초콜릿 한 조각을 건네보는 걸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코로나로 지친 우리 모두에게도.
크리스마스 트리와 선물들. © 신정숙 통신원 |
sagadawa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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