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방공호 숨어 훈련한 세르비아의 아들…'안티백서' 테니스 지존 왜 [후후월드]

댓글 3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남자 테니스 세계 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35·세르비아)가 호주 정부의 비자 취소를 둘러싼 열흘 간의 법정 공방 끝에 16일(현지시간) 호주를 떠났다. 호주오픈 4연패는커녕 출전도 못하게 됐을 뿐 아니라 앞으로 3년간 호주에 발을 들일 수 없을지 모른다. 호주 입국 전 코로나19 백신을 안 맞은 게 그의 ‘죄라면 죄’다. 방역을 위해 백신 접종을 독려하는 각국 정부와 ‘안 맞을 권리’를 내세우는 백신 반대론자들의 갈등이 극심한 상황에서 그의 법정 싸움은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그러면서 의문도 불러일으켰다. 조코비치는 왜 그렇게 코로나19 백신에 저항하는 걸까.

중앙일보

노박 조코비치. [AF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코비치 "변이 계속, 백신으로 어떻게 해결하나"



조코비치는 모든 종류의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건 아니다. 코로나19 백신에 대해서만 '안티 백서(Anti-vaxxer·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다. 조코비치는 지난 2020년 8월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감염의 확산을 막는 부작용이 거의 없는 백신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는 계속 변이가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했다. 코로나19 백신의 안정성을 못 믿는단 얘기다.

조코비치는 자신의 몸에 관련된 것에 굉장히 민감하다. 어릴 적부터 테니스 유망주였지만, 체력이 허약했다. 자서전 『이기는 식단』에 따르면 프로 데뷔 후에도 경기 시간이 길어지면 숨이 가빠지고, 위 경련이 생겼다고 한다. 알레르기 혹은 천식 가능성이나 선천적으로 약한 체력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그는 트레이너, 코치진 등을 교체해봤고, 호흡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코 수술도 받았다. 그런데도 나아지지 않았다.

중앙일보

글루텐이 없는 빵을 먹고 있는 조코비치. [사진 노박 조코비치 SN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코비치는 2010년 세르비아 영양학자 이로그 체토예비치 박사의 도움으로 '글루텐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밀가루를 섭취하면 소화가 안 돼 복부 통증, 피로감 등에 시달린 것이다. 이후 글루텐이 없는 빵을 주로 먹는 '글루텐 프리 다이어트'를 했다. 소화가 잘되지 않고 지방이 많은 피자, 파스타, 유제품, 설탕 등을 끊었다. 그 결과 허약한 체력을 극복하고 2011년 3개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차지했다. 조코비치가 묵는 호텔은 항상 글루텐 프리 음식을 준비한다. 이번에 비자가 취소돼 구금되어 있던 호주 호텔에서도 글루텐 프리 음식을 받았다.



NYT "조코비치, 건강에 대해 비과학적 견해 지지"



그때부터 조코비치는 식이요법과 명상을 하면서 자연 치유를 선호하게 된다. 건강에 대해 독특한 견해도 생겼다. NYT는 "코로나19 백신을 거부한 조코비치는 오랫동안 건강에 대해 비정통적이고 비과학적인 견해를 지지해 왔다"고 꼬집었다. 일례로 BBC는 조코비치가 자서전에 쓴 '운동역학적 팔 테스트'를 소개한다. 이 테스트에선 조코비치가 복부에 빵을 대고 다른 한쪽 팔은 체토예비치 박사가 누르는 압력을 버티는데, 기운이 현저하게 빠져버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조코비치는 이를 통해 빵에 든 밀가루가 자기 몸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지난 2020년 5월 소셜미디어(SNS) 라이브에서는 "긍정적인 생각이 오염된 물을 정화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물속의 분자가 우리의 감정에 반응한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주장도 했다.

NYT는 조코비치를 '뉴에이지 신앙자'라고 묘사한다. 조코비치가 그렇게 된 데에는 영적 전문가 페페 이마즈(스페인) 코치의 역할이 있었다. 조코비치는 클레이 코트인 프랑스오픈에서만 우승을 못 했는데, 2016년 6월 마침내 프랑스오픈마저 정복한다. 직후 번아웃 증후군(업무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스트레스로 무기력해지는 현상)에 시달리며 부진에 빠졌다. 그때 사랑과 평화를 강조하면서 명상과 포옹을 가르치는 이마즈 코치의 도움을 받아 멘털을 관리했다. NYT는 "이마즈 코치의 홈페이지에는 '인간은 무한한 능력이 있는데, 마음이 제한한다. 텔레파시, 염력 등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적혀있다. 조코비치가 그에게 지배당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전했다. 공교롭게도 조코비치는 이후 슬럼프를 극복하고 2018년 7월 윔블던에서 우승하면서 부활했다.



'민족주의자' 조코비치 아버지, 세르비아 차별론 주장



중앙일보

16일 호주 멜버른 변호사 사무실 앞에서 세르비아 국기를 들고 조코비치를 응원하는 사람들. [EPA=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코비치가 지난 6일 처음 구금되자 아버지 스르잔은 "아들이 박해를 받고 있다. 노박은 곧 세르비아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그와 같은 사람들이 세르비아를 무릎 꿇게 하였다"고 분개했다. 조코비치에 대한 비자 취소가 세르비아에 대한 모멸이라는 주장이다. 아들의 위상을 부풀렸다기보다 그만큼 이들이 국가주의에 투철하단 뜻으로 풀이된다.

스르잔은 종종 "아들과 나는 민족주의자"라고 강조했다. 그 배경에는 1990년대 벌어졌던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있다. 조코비치가 네 살 때 전쟁이 시작됐다. 그는 공습경보 사이렌을 들으면서 자랐다. 조코비치가 여덟살 때 나토군이 베오그라드를 폭격했다. 자서전에는 따르면 조코비치는 고모 집에 있는 방공호에서 78일 동안 숨어 지내면서 테니스 훈련을 했다.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고 최고 테니스 선수이자 세르비아 최고의 보물이 됐다. 그러나 '황제' 로저 페더러(41·스위스)와 '흙신' 라파엘 나달(36·스페인)이 인기를 양분한 테니스계에서 가난한 동유럽 국가 출신 조코비치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별로 없었다. 그럴수록 세르비아 사람들의 조코비치에 대한 자부심은 커졌다. 그런 조코비치를 호주가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의 논란의 인물로 만들었으니, 세르비아의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16일 호주 법원 판결을 "정치적 마녀사냥"이라고 맹비난하면서 조코비치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와 포용을 밝혔다.

일각에선 조코비치 논란이 확대된 게 호주 정부의 오락가락 대처와 ‘방역 실패 책임 떠넘기기’에 있단 지적도 나온다. 오는 5월 연방 총선을 앞두고 지지율에서 밀리고 있는 모리슨 총리가 의도적으로 백신 반대론자에게 강경한 자세를 과시했다는 분석이다. 조코비치의 ‘수모’를 계기로 백신 반대론자들의 원성도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중앙일보

16일(현지시간)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테니스 스타 노박 조코비치가 그려진 벽화 앞을 현지인이 지나가고 있다. 조코비치는 호주 정부와 비자 취소 법정 공방을 벌이다 이날 패소하고 호주를 떠났다. [AF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3년 입국 금지, 호주오픈 우승 멀어졌다



조코비치는 지난해 윔블던을 제패하면서 페더러, 나달과 함께 최다(20회) 메이저 대회 우승자가 됐다. 잦은 부상에 시달리는 페더러나 나달과 달리 조코비치는 30대 중반에도 몸 관리를 잘해 최다 우승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인 듯했다. 그러나 비자 취소에 이어 향후 3년 동안 호주 입국 금지가 현실화되면 그의 목표 달성은 어려워진다. 아울러 백신 논란으로 미운털도 박혔다. 평소 조코비치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던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여자 테니스 전설'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66)도 등을 돌렸다. 그는 "나는 노박을 지지했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다. 노박,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후후월드]를 중앙일보 홈페이지(joongang.co.kr)에서 구독하세요. 세계를 움직이는 이슈 속에 주목해야 할 인물을 입체적으로 파헤쳐 드립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