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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중대재해법 D-10] 노동계 "빈틈 많아…5인 미만에도 적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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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보호 못할 정도로 영세하면 정부가 지원해야…법 유예 안돼"

플랫폼노동자 '사각지대' 방치 우려…폭좁은 직업성 질병 범위도 비판

연합뉴스

지난해 8월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민주노총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공동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시행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노동계는 빈틈이 많다고 우려하고 있다.

기대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하는 노동자'가 안전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커지는 상황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기업 경영자들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안전에 더 신경을 쓰고 투자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다.

김광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17일 "경영책임자가 안전과 보건에 더 관심을 두도록 만든 것은 분명 좋아진 점"이라면서 "다만 기업들이 재해예방이 아니라 처벌을 피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점은 우려스럽다"라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 노동계는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에 법이 적용되지 않고 50인 미만 사업장과 공사금액 50억 미만 공사장엔 2024년 이후에나 적용되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노동계는 규모가 작은 사업·공사장일수록 작업환경이 열악한데 이곳들에 법 적용을 미룬 것은 '안전을 유예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작년 상반기 건설업 산업재해 사망자의 67%가 공사금액 50억 미만 공사장에서 나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의 박세중 노동안전국장은 "노동자의 목숨은 모두 똑같이 소중한데 큰 사업장 노동자는 보호받고 작은 사업장 노동자는 보호받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라면서 "노동자를 보호 못 할 정도로 사업장이 어렵다면 정부가 지원해서 노동자를 살리고 볼 일이지 법 적용을 미뤄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하청업체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원청업체 경영진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했는데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때문에 꼼수를 부릴 여지가 생겼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하청·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 모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라고 하지만 원청업체 상시노동자가 5명이 안 되면 법 적용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수백 명의 배달노동자에게 일을 시키는 배달대행업체더라도 상시근로자가 4명에 그치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실장은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 이러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업 등에서 발주자는 기본적으론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사고의 책임을 지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고용노동부는 건설공사 발주자에 대해 '공사 기간 해당 공사나 시설·장비·장소 등을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했다고 볼만한 사정이 없다'면 법상 도급인으로서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해석하고 있다.

박세중 국장은 "발주자가 곧 건물주로, 공사 기간과 비용 관련해 절대적인 권한을 갖는다"라면서 "공사와 관련된 모든 주체에게 안전에 대한 책임이 부과되도록 건설안전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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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청년연대와 청년정의당 등 청년단체 회원들이 작년 7월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온전하게 마련하라' 청년학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과로질환' 빠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은 '면죄부'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노동계에선 국회에서 '반쪽짜리'로 만들어진 중대재해처벌법을 정부가 시행령으로 한 번 더 후퇴시켰다고 비판한다.

대표적으로 '직업성 질병'에 근골격계 질환과 과로사의 주원인인 뇌·심혈관계 질환을 포함하지 않은 점을 문제로 삼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은 ▲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 같은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 ▲ 같은 유해 요인의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 등의 요건 가운데 하나 이상 해당하는 산업재해를 중대산업재해로 규정하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가 시행령을 만들 때 이 3가지 요건 중 마지막의 '직업성 질병'을 정하면서 산재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 질병 가운데 급성 중독 위주의 일부만 포함했다고 비판한다.

이에 따라 노동자가 뇌·심혈관계 질환 등으로 목숨을 잃으면 첫번째 요건(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에 해당돼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지만, 평생 치료받으며 살아가는 경우엔 법이 적용되지 않는 구멍이 생겼다는 것이다.

김광일 본부장은 "과로로 생긴 질환이나 사고성 요통 등은 직업성 질병에 포함해야 한다"라면서 "일주일에 60시간 이상 작업을 시켜 (과로로) 질병이 발생했다면 사업주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지키지 못했다고 볼 수 있고 이런 경우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명선 실장은 "한 사업장에서 직업성 질병자가 1년에 3명 이상 나왔다면 노동자가 아닌 사업장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서 "노동자가 사망하지 않았다고 방치하면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노동계에서는 인과관계추정 조항이 포함되지 않은 점도 우려한다.

기업들이 안전에 투자해 중대재해를 막으려고 하기보다 사고와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서 인과관계 증명을 어렵게 만들어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과관계를 다투는 소송으로 법무법인들 배만 불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가 명확히 누구인지 조속히 규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법에는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만 규정돼있어 기업들이 편법으로 법망을 피하려 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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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물류센터 화재 현장에 놓인 국화꽃
(이천=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3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의 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 1일 오후 한 시민단체가 기자회견 후 놓아둔 국화꽃이 놓여 있다. 2020.5.1 xanadu@yna.co.kr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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