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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공학도 손에 '데이터' 차곡차곡…세상에 없던 농업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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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신년기획 데이터 농업 혁명 ① ◆

매일경제

우리나라에서 트릿지와 그린랩스, 푸드팡 같은 빅데이터 기반의 농업 스타트업이 등장한 배경 중 하나는 공과대학 출신들이 농업계로 뛰어든 영향이 크다. 공대 출신 인재들이 창업한 농업 스타트업들은 농업계의 오랜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새로운 시도에 나서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트릿지는 세계 농산물 데이터를 한곳에서 수집하는 게 불가능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다. 그린랩스는 농민이 디지털 플랫폼에 익숙해지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관을 보기 좋게 깨부쉈다. 푸드팡은 1985년 가락도매시장이 개장한 이래 처음으로 중도매인의 식자재 거래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 빅데이터 기반 농업 선택한 트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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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신호식 트릿지 대표(45)는 2012년 TP파트너스라는 투자회사를 창업했다. 도이치뱅크와 한국투자공사(KIC) 등에서 경험한 원자재 거래와 투자가 핵심 비즈니스였다. 신 대표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원자재 시장에서 수급 불안정과 정보 비대칭을 해결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면 승산이 있겠다고 생각해 2015년 1월 트릿지를 창업했다.

트릿지의 시작은 원래 농업 쪽이 아니었던 셈이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원자재와 같은 상품 무역 플랫폼을 설계했다. 각국 상품 전문가들이 트릿지 플랫폼에 자신의 딜 제안을 올리면 이를 필요로 하는 수요업체와 연결해 거래를 성사시키는 방식이었다. 이때 자신의 제안을 올리는 전문가에게 '파인더(finder)'라는 이름을 붙였다. 플랫폼 서비스를 개시한 지 몇 개월 만에 전 세계에서 파인더 4만명이 모집됐다.

그런데 재밌는 현상이 발견됐다. 4만명에 달하는 파인더가 올리는 제안과 수요업체가 필요로 하는 딜에 대해 빅데이터 분석을 한 결과, 전체 거래 중 70~80%가 농업 분야인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신 대표는 "이후 농업 분야에서의 정보 비대칭을 해결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트릿지는 전 세계 농산물 생산·작황·가격 등 데이터 수집과 분석, 매핑(mapping·데이터 간 거래가 가능하도록 표준화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공대 출신인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 중심으로 30여 명의 데이터팀을 꾸려 전 세계 농산물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지금 트릿지는 전 세계 1100만곳의 소스에서 발생하는 농산물 데이터를 매일 5만개씩 업데이트하고 있다. 트릿지에서가 아니면 구할 수 없는 농업 데이터 덕분에 전 세계 유통·식품업체들이 트릿지를 애용하고 있다. 데이터만 공급할 것이 아니라 농산물 조달 및 공급까지 맡아주면 어떻겠냐는 요구가 회원사들로부터 빗발쳤다. 트릿지가 2020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농산물 교역 비즈니스에 나선 배경이다.

◆ IT 창업 성공이 밑바탕 된 그린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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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전기공학부를 졸업한 신상훈 그린랩스 대표(42)는 2006년부터 5년간 BoA메릴린치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한 뒤 본업인 정보기술(IT) 분야로 돌아왔다. 첫 업무는 전자책 서비스 업체인 리디북스에 투자자 겸 경영자로 3년간 참여한 일이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2013년 처음으로 창업한 곳이 남녀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앱) '아만다'였다. 앱 다운로드 300만건을 기록한 뒤 회사 매각을 결정한 신 대표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 농업이 들어왔다. 신 대표는 "이미 잘나가는 분야보다는 상대적으로 변화가 늦어 혁신 성과가 크게 나타날 분야가 어디일까를 많이 생각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2017년 5월 동료 둘과 함께 그린랩스를 창업했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초기부터 농업에 IT와 플랫폼을 접목해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첫 사업 모델은 농민들에게 스마트팜 솔루션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스마트팜에서 나오는 각종 재배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모아 빅데이터로 가공하는 일도 함께 시작했다. 그렇게 확보한 고객 농가가 1000곳에 가까워질 때쯤 그린랩스는 새로운 사업 모델에 착수했다. 애초에 생각했던 농업 디지털 플랫폼이 그것이다.

그렇게 해서 출범한 디지털 농업 플랫폼이 바로 '팜모닝'이었다. 여기서도 핵심은 데이터다. 농민이 자신의 재배 작물이나 관심 작물을 등록해 놓으면 그에 필요한 모든 정보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형으로 제공된다. 여기에는 해당 작물의 현재 시세와 병해충, 농자재, 판로, 정부 보조금 등 모든 정보가 포함된다.

◆ 삼성 SW 멤버십 출신의 푸드팡


동의대 메카트로닉스공학과를 졸업한 공경율 푸드팡 대표(32)는 대학생 시절 삼성 소프트웨어(SW) 멤버십 가입에 모든 것을 걸었다. 해당 지역 대학생 중 SW 프로그래밍 실력 상위 1%만 들어갈 수 있다는 멤버십 프로그램에 합격하기 위해 그는 지도교수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하며 노력했다.

결국 3학년 때 멤버십에 합격해 SW 개발자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그러나 노력하면 할수록 대기업 직원보다는 창업에 마음이 쏠렸다. 이 멤버십 출신들은 삼성전자 합격이 보장됐지만 그는 대학도 졸업하기 전인 2014년 7월 창업을 선택했다.

첫 창업은 배달형 밀키트(간편조리식) 업체인 '요리사요'였다. 요리 레시피 동영상을 보고 주문이 들어오면 2인분 단위로 소포장해서 보내는 방식이었다. 오프라인 매장까지 열었지만 생각만큼 매출이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1인 가구 시대를 맞이해 아주 작은 단위로 채소와 과일을 살 수 있는 '야채사요'로 전환했다. 매장을 3곳으로 늘릴 정도로 영업이 괜찮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야채사요'에 대한 소문을 들은 근처 식당에서 식자재 납품 요청이 들어왔다. 이후 주변 식당에서도 주문이 늘었다. 아침에 소형 트럭에 야채를 싣고 식당들을 한 바퀴 돌면 가게 한 곳의 하루 매출이 나올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공 대표는 "식당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기업 간 거래(B2B)를 앱으로 디지털화하면 승산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공 대표는 부산 반여도매시장에서 푸드팡 앱 서비스에 성공한 뒤 서울 가락도매시장으로 진출했다. 푸드팡 앱은 도매시장의 중도매인과 식당 간 거래를 디지털화함으로써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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