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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오디션 출신 K돌, 롱런을 꿈꾼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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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

케플러(웨이크원, 스윙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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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넷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걸스플래닛 999: 소녀대전’을 통해 결성된 걸그룹 케플러가 데뷔 타이틀곡 ‘Wa Da Da’로 14일 KBS2 ‘뮤직뱅크’에서 1위를 차지했다. 케플러로서 첫 지상파 음악방송 1위이자, 있지(ITZY)와 함께 걸그룹 최단기 지상파 음악방송 1위 타이기록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음날 MBC ‘쇼! 음악중심’에서 케플러는 같은 곡으로 8위 랭크됐고, 16일 SBS ‘인기가요’에서도 4위에 머물렀다. 순위 차이가 크다. 순위산출 기준에서 ‘뮤직뱅크’는 음반판매 비중이 높은 반면 다른 음악방송들은 디지털음원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바로 이 같은 상황이 이번 케플러 데뷔성과를 단박에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음반판매량은 상당했다. 데뷔음반 ‘First Impact’는 발매 첫 주 20만6500여장을 판매하며 역대 걸그룹 데뷔음반 초동기록을 경신했다. 그러나 음원성적은 상당히 저조하다.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에서, 순위가 조금씩 올라가곤 있어도, 17일까지 일간차트 최고 순위는 134위에 머문다. 톱100차트나 실시간차트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이에 K팝 팬들 사이에선 ‘여자판 엔하이픈’이란 평가까지 이뤄지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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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하이픈(빌리프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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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렇다. 엔하이픈과 케플러 사이 공통점은 엠넷 서바이벌 오디션 출신이란 점, CJ ENM 자회사 소속이란 점만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위 음반강세-음원약세 차원에서 보다 극적으로 닮았다. ‘I-LAND’를 통해 결성된 엔하이픈 역시 데뷔음반으로 28만800여장 초동을 기록해 역대 보이그룹 데뷔음반 초동 3위에 올랐고, 거기서부터 지난 10월 정규1집 ‘Dimension: Dilemma’ 초동 81만8700여장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음원성적은 그나마 여돌이어서 최소한의 대중성이라도 방어한 케플러보다 심각하다. 멜론 일간차트에서 데뷔곡 509위, 이어 577위, 402위, 542위 순으로 극히 저조하다.

이유는 간명하다. 케플러와 엔하이픈 팬은 국내보다 해외에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엔하이픈은 미니2집 ‘Border: Carnival’의 미국 빌보드 핫200 차트 18위, 정규1집 ‘Dimension: Dilemma’ 11위로 거대한 해외 팬덤 존재를 입증했고, 케플러 역시 여러 정황상 해외 팬덤 규모가 압도적임을 가늠해볼 수 있다.

엔하이픈을 배출한 ‘I-LAND’(평균시청률 0.75%(AGB 닐슨)), 케플러를 배출한 ‘걸스플래닛 999’(평균시청률 0.73%) 모두 국내 시청률 차원에선 ‘망한 오디션’이었지만, 넷 기반으로 영상이 퍼져나간 해외에선 K팝 팬들 사이 그보다 훨씬 큰 관심을 모으며 선전한 덕택이다. 둘 다 해외 투표를 반영한 글로벌 투표 콘셉트였던 탓이 크다. 그러니 해외 팬덤이 접근하기 힘든 국내 음원차트에선 여느 중소기획사 데뷔 팀 성적 정도로 나오지만, 해외 비중이 점차 커져가는 음반판매 부문에선 대형기획사 중견 팀들 이상으로 치솟게 된다.

물론 큰 차원에선 이 같은 양상도 K팝 4세대 팀들의 전반적 특성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 모양새다. 4세대 자체가 대중형에서 팬덤형으로 급격히 이동 중인데다 음반판매 측면에서도 해외 비중이 급격히 높아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표면적으론 서로 다를 게 없는 행보로 보이지만, 일반 팀과 오디션 배출 팀은 결국 서로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일반 팀들은 어찌됐건 그들 콘셉트와 음악적 방향성, 퍼포먼스 등으로 주목받아 그를 통해 멤버들 개성을 알린 경우다. 그러나 오디션 배출 팀은 다르다. 방송프로그램 덕택에 먼저 멤버들 개성을 알려 그 애착 기반으로 성립된 팀이다. 그러니 그들이 데뷔했을 때 콘셉트나 음악적 방향성 등은 ‘일단’ 부차적인 것이 된다. 어떤 식으로 등장해도 ‘처음엔’ 팔린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치열한 K팝 신에선 지금 같은 음반강세-음원약세 구도라도 안전하게 끌고 가는 게 쉽지 않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팬덤형이어도 마찬가지다. 팬덤이란 달리는 자전거와 같다. 페달을 밟지 않으면 그 자리에 멈춰 서는 게 아니라 쓰러지고 마는 자전거처럼, 팬덤도 계속 확장일로를 걷지 않으면 그대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 위축된다.

그런데 오디션 배출 팀 중에서도 특히 케플러 같은 기한한정 프로젝트팀은 애초 팬덤 확장에 장벽이 높다. 2년 반 정도가 한계인 활동기간 탓에 기존 K팝 팬들은 이른 해체의 아쉬움을 겪지 않으려 관심이 가더라도 접근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더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어찌됐건 계속 등장한다. 당장 지금도 같은 걸그룹 오디션으로 MBC ‘방과후 설렘’이 방영 중이고, 엠넷에서도 케플러 활동기간 중 다른 걸그룹 오디션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음악적 노선과 콘셉트에 대한 호감과 신뢰가 아니라 ‘사람’을 홍보하는 ‘드라마’로서 애착을 만들어 팬덤을 구성한 팀이라면 ‘또 다른 드라마’가 시작됐을 때 국내든 해외든 그리로 팬덤이 이동하게 될 가능성도 높다.

그러니 가장 극단적인 팬덤형으로 시작해 팬덤을 키우며 성장해야 할 기한한정 프로젝트팀일수록 기존 트렌드의 벤치마킹이나 계절송 등 단타성 전략을 취하는 건 오히려 악수(惡手)가 된다는 것이다. 팬덤은 그런 트렌디 방향으로 유지되고 키워지는 게 아니다. 보다 콘셉추얼해질 필요가 있고, 일정부분 안티트렌드로 갈 필요도 있다. 그래야 기존 팬덤도 관심을 잃지 않고, 기한한정 한계에도 콘셉트 흥미를 끌어 신규 팬덤 유입이 가능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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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원(오프더레코드, 스윙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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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그런 성공사례를 CJ ENM에선 이미 보여준 적이 있다. 플레디스에서 위탁 관리하던 시절의 아이즈원이다. 데뷔부터 EDM 특유의 드롭으로 후렴을 대체한, 사실상 안티트렌드에 가까운 ‘라비앙로즈’로 일반 리스너들 관심을 모으고 사전 형성된 팬덤에 음악적 자부심(?)을 안겨주는 전략을 취했다. 그렇게 ‘라비앙로즈’는 당시 걸그룹 데뷔음반 초동기록 경신은 물론, 음악적 신선함으로 음원도 선전해 멜론 일간차트 18위까지 오르고 주간차트에서도 무려 28주 동안 100위 내 랭크인하는 기염을 토했다. 향후 역대 K팝 걸그룹 사상 가장 거대한 국내 팬덤을 지니게 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한 건 물론이다.

케플러에도 바로 이 같은 전략이 요구된다. 이번 케플러 데뷔 타이틀곡도 무난하게 트렌디한 ‘Wa Da Da’가 아니라 보다 개성 있고 안티트렌트적인 수록곡 ‘MVSK’로 밀고 갔어야 했단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이미 스스로 만들어낸 성공사례가 존재하는데 왜 그 노선을 따르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진행해야 팀 해산 후 멤버들 향후도 밝아진다. 팀 색채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이 강하게 성립돼야 그로 비롯되는 애착도 강렬해지고, 그래야 해산 후에도 팬심이 유지돼 아이브 등처럼 제2의 커리어도 탄력을 받게 된다.

아무리 대대적인 ‘팬덤형 아이돌’ 국면이라도 ‘팬덤형’ 개념 하나로 모든 게 요술방망이처럼 해결되는 건 아니다. 그 팬덤을 유지하고 확장시키기 위해선 음악적 방향성 포함 팀의 전반적 콘셉트에 일정수준 이상 대중적 호응과 존중이 따라줘야 한다. 그리고 이미 팬덤형으로 자리 잡은 팀에 대한 대중의 호응과 존중은 상당부분 안티트렌드적 고집과 뚝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때론 대범함이 오히려 안전한 전략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딱 ‘예상대로만 나온’ 케플러의 데뷔 이후 선택들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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