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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화재 신고도 대피도 알아서? 엉터리 화재대응 서울대생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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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7일 서울시 관악구 서울대학교 관악학생생활관 919동 방재실 내부 모습. 이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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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불 났어요! 다들 빨리 나가요!”



서울대 학생 정모(24)씨가 관악학생생활관 919동 1층 복도를 채운 검은 연기를 본 건 지난 16일 오후 3시쯤이었다. 1층 체력단련실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는 정씨는 체단실 개장 후 화장실에 갔다가 건물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연기를 봤다고 했다. 매캐한 냄새도 났다. 정씨는 복도에 있던 다른 학생 한 명과 함께 건물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정씨는 학교 측에, 다른 학생은 119에 화재 사실을 알렸다. 오후 3시 8분 무렵이었다.

같은 층에 위치한 편의점에서 근무하는 50대 직원 A씨는 정씨의 “불이 났다”는 외침을 듣고서야 화재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A씨는 생활관 식당 취사실에 붙어 있는 휴게실에 조리사와 영양사 등 직원이 남아 있다는 걸 떠올렸다. 식당 안은 연기가 자욱해 들어갈 수 없었다. A씨는 전화로 이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시커먼 검댕을 뒤집어쓴 채로 직원들이 나왔다.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건물을 빠져나온 정씨는 919동 앞 광장을 돌며 “불이 났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소리를 들은 학생들이 하나둘씩 건물 밖으로 나왔다. 정씨를 비롯한 학생들은 화재 사실을 모르고 생활관 1층으로 들어오려는 학생들을 막고, 현장에 도착한 소방관들을 화재 추정 장소로 인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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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화재가 났던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 앞에 검댕이 묻은 마스크가 떨어져 있다. 이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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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 당국에 따르면 소방관들은 오후 3시 14분 현장에 도착했다. 오후 3시 30분 큰 불길이 잡혔고, 오후 3시 45분 불이 모두 꺼졌다. 학생 등 128명이 자력으로 대피했고, 연기에 갇혀 있던 학생 9명이 방에서 구조됐다. 연기를 들이마신 학생 16명은 병원으로 이송됐다. 소방 당국과 경찰은 화재가 1층 방재실 창고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학생들 “대피 방송 안 들렸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화재는 학생들에게 의심과 분노를 남겼다. 일부 학생들은 당시 화재 경보나 대피 안내 방송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대피를 했던 학생 B씨(23)는 “화재 경보는 들리지 않았고 안내 방송도 없었다”며 “방에 있다가 거실에 있던 룸메이트가 ‘냄새가 난다’고 해서 거실에 나왔더니 탄 냄새가 많이 났다. 현관문을 열었더니 연기가 많이 들어와서 ‘나가야겠다’ 싶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정씨는 “오후 3시쯤 희미한 알림 같은 소리가 1분쯤 이어지다가 그쳤다”며 “워낙 작은 소리고 금방 그쳐서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대피 학생 C씨(20)는 “거실에 있었던 사람 말로는 ‘화재 경보가 잠깐 나오다가 그쳤다’고 하는데, 방에 있어서 그런지 못 들었다. 대피 방송은 없었다”고 했다.

생활관 측은 18일 “화재 경보가 세 차례 울린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경보기가 작동되는 방재실에 불이 번지면서 경보 시스템이 손상됐고 이로 인해 경보가 울리다가 꺼진 것으로 학교 측은 추정하고 있다. 학교 측은 또 대피 안내 방송 역시 화재 경보에 뒤따라 나오게 되어 있는데, 경보가 꺼지며 방송이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생활관 측은 화재 초진이 끝난 시각인 오후 3시 40분쯤 문자 메시지로 화재 관련 최초 공지를 했지만, 학생들은 그 내용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발화 장소를 ‘취사실’이라고 잘못 적었고, ‘연기가 유입되면 건물 밖으로 대피하라’는 대피 요령 역시 일반적인 화재 대피 요령과 다르다면서다. 서울종합방재센터는 화재 시 대피 요령으로 “연기가 창문이나 문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면 담요나 시트, 양말 등을 물에 적셔 틈을 막아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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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이후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 측이 학생들에 보낸 문자. 이병준 기자


학생 D씨(24)는 “지난해 한 번 전자레인지에서 누가 뭘 태워서 경보가 울린 적이 있었다”며 “그때도 별다른 대응이나 안내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 학생은 “4년간 기숙사에 거주하면서 화재 교육을 한 번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생활관 추가 안전 점검”



화재 생활관에 거주하던 학생들은 현재 다른 동 호실을 배정받은 상태다. 학교 관계자는 “방재실 화재로 학생들 안전에 문제가 있는 상황이라 선제적으로 17일 저녁 해당 생활관 거주 학생들에게 다른 방을 배정했다”고 했다. 화재 추정 장소와 같은 층에 있는 생활관 식당과 체단실 등은 일시적으로 운영이 중단됐다. 서울대는 이번 화재를 계기로 생활관 안전 점검을 추가로 시행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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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관악학생생활관 1층 식당 모습. 이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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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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