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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호의 한반도평화워치] 남북한, 서로 ‘국가’ 인정하고 ‘기본조약’부터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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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시급한 남북 관계 패러다임



중앙일보

박영호 한반도포럼 위원장·전 강원대 초빙교수


국제사회가 인정하지는 않지만, 북한은 핵보유국이다. 그런데 그 핵무기로 무장한 강력한 국방력으로 한반도 평화를 지키고, 미국을 몰아내며 조국 통일을 앞당기겠다고 한다. 지난해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개정된 당규약에 담긴 내용이다. 이 목표를 향해 전술·전략핵무기의 지속적 개발과 핵 선제·보복 타격 능력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5일과 11일의 극초음속미사일 시험 발사는 이의 일환이다.

북한의 관점에서 핵무기는 전략적으로 매우 유용하다. 남북 관계 차원에서, 엄청난 국력 격차와 재래식 군비 경쟁에서의 불균형을 일거에 만회할 수 있는 수단이다. 대남 정책 차원에서, 자기식의 남북 관계를 강제할 수 있는 무기다. 통일 정책 차원에서, 북한 체제 유지를 위한 사실상 ‘두 개의 조선’ 정책의 도구다. 국제관계 차원에서, 미국에 대응하고 중국의 후원을 받으면서도 독자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편이다. 무엇보다도 체제·국가·정권 유지의 보루다.



대립과 갈등의 남북 관계가 바뀌지 않는 근본 원인은

상대방을 국가로 인정 않거나 상호주의적이지 않았기 때문

민족주의 아닌 국가 발전전략 차원에서 남북관계 접근하고

인적·물적 교류·협력은 원칙적으로 국제 규범에 근거해야

따라서 김정은 정권은 핵이 없어도 체제·국가·정권이 존속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거나 핵이 오히려 그에 부담된다고 판단하지 않는 한, 자발적인 핵 폐기의 과정으로 이행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독재자가 선한 의도를 갖고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한 사례는 없다. 결국 북한 비핵화를 위한 압박과 외교 협상을 꾸준히 추진하되 남북 관계의 본질을 바꿈으로써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하는 전략적 결단을 하도록 해야 한다.

북한의 일방주의 수용한 남북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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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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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관계의 본질을 어떻게 바꾸나. 이를 위해선 그동안의 남북 관계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먼저다. 1970년대 초 이후 지금까지 정상회담을 비롯해 667회의 회담을 하고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 등 167건의 합의서가 만들어졌다. 사실 30년 전 발효됐던 남북기본합의서의 내용이 올바로 이행·실천됐더라면 오늘의 남북 관계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두 국가, 대한민국(남한)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간 첨예한 갈등과 대립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정상적인 남북 관계를 구축하지 못한 탓이다.

남북 대화는 정치적 목적이나 북한 의도에 따라서 열리거나 중단하기를 반복했다. 인적 교류와 물적 교류·협력은 북한의 일방주의적 행태를 수용하는 양태로 굳어졌다. 금강산 관광 길이 열리고 개성공단이 가동됐으나 남북한 주민 간 상호 이해를 증진하지도, 경제의 상호 의존성을 증대하지도 못했다. 차관 형식의 대북 식량·비료 지원은 북한의 농업 개혁을 유발하지도, 통상적인 상거래 행위를 구축하지도 못했다. 어려운 북한 동포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중단하라는 것이 아니다. 남북 간 인적 교류나 경제 협력은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경제적 상호 의존성을 증대함으로써 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또 상호 신뢰 구축과 긴장 완화로 화해·협력의 관계를 쌓는 데 목적이 있다.

북한 체제가 변해야 평화·공존 가능

그러나 인적 교류와 경제 협력 어느 것도 이러한 정책 목표에 이바지하지 못했다. 많은 합의서는 사문화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남북 관계가 상호주의적이지도 정상적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남북 관계의 정상화는 중단된 남북 대화가 재개되거나 북한의 선호에 따라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남북한이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고 그런 관행을 쌓음으로써 양자 간 거래 양식이 상호주의적이고 쌍방 지향적으로 정착하는 것을 말한다. 비정상적인 남북 관계 양태는 북한의 일방주의적 행태도 원인이었으나 남북 대화하고 일방적인 방식이라도 교류·협력이 이루어지면 남북 관계의 개선으로 본 남한 정부의 정책에도 책임이 있다.

갈등과 대립의 남북 관계가 바뀌지 않는 근본 원인은 남북한이 국가 행위자이면서도 상호관계를 국가 간 관계로 보지 않는 데 있다. 남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쌍방 간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합의했다. 그 이유는 남북이 자기식의 통일을 전제하고 국내 정치적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념과 체제의 성격이 극명하게 다른 남한과 북한이 각기 자국의 입장에서 통일을 바라보며 이를 토대로 남북 관계를 구상하고 정책을 펴는 한, 대결 상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다. 남한의 헌법이나 북한의 헌법과 노동당 규약 모두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북한은 국제사회에서 각기 별도의 독립·주권국가다. 남한은 191개국과 북한은 160개국과 수교 관계에 있다.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요청된다.

한국의 통일 정책 기조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전제로 한다. 또 남북 관계 개선이 북한에 그러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가정한다. 그러나 남북 관계 개선이란 북한의 일방주의적 행동을 수용하면서 교류·협력하는 것이 아니다. 남북 관계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도록 북한의 행태가 변하고 북한 내부도 변해야 한다. 북한에서 체제 변화 욕구가 억제된 상태에서는 남북 관계의 본질을 바꾸기가 어렵다. 북한 체제의 변화와 남북 관계가 정상화될 때 평화·공존이 가능하며, 평화공존 체제를 거쳐야 평화적 통일의 길이 열린다.

남과 북이 보는 ‘민족’ 의미 달라

요컨대 남북 관계의 패러다임 전환은 남북한 국가의 존재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에 토대하여 좁은 민족주의 시각이 아니라 장기 국가 발전 전략 차원에서 남북 관계에 접근하는 것이다. 분단의 장기화, 과학기술 문명의 진화, 인구 구조 변화와 사회질서의 급변, 국제 환경의 변화 등으로 민족주의는 갈등과 분열의 기제로서 변질하고 있다. 남북 관계는 민족 내부의 특성이 있으나 점차 국가 간 관계의 성격으로 변하고 있다. 국제적 차원에서도 한반도 통일 문제를 민족 중심의 문제로만 다룬다면 주변 이해 관련국의 강한 경계를 초래할 것이다.

그런데 남한과 북한이 보는 민족의 의미는 다르다. 남한에서 민족의 의미는 역사와 전통·언어·문화·관습을 공유하는 ‘한민족’인 반면 북한에서는 때로 전통적 의미로 활용되기도 하나 본질에서는 ‘김일성-김정일주의’의 김일성 민족, 즉 사회주의 민족이다. 6·15공동선언 이래 남북 합의에 담긴 ‘우리 민족끼리’의 ‘민족’은 이러한 북한의 이중적 의도의 산물이다. 정서적 민족에 대한 집착은 정상 국가 간의 행위 규범을 벗어나게 만들 위험이 있다. 더욱이 21세기 남한 사회의 구성원은 전통적 민족의 개념으로만 정의할 수 없다.

필자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입각한 정상적인 남북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다음의 정책 지침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 북한의 체제 방어 정책과 핵보유국 현실을 반영하는 남북 쌍방 지향의 대북·통일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대북·통일 정책을 둘러싼 남·남 갈등의 완화와 국민적 컨센서스 구축을 위한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셋째, 국가 발전 전략 차원에서 지속 가능한 정책 프레임을 세울 필요가 있다. 넷째, 체제와 이념이 다른 남북한, 두 국가가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길을 찾는 게 우선이다. 다섯째, 북한의 체제 전환이 있어야 자유민주적 질서로의 통일이 가능하다는 명제를 숨기지 말아야 한다.

분단현실 인정해야 주변국도 균형정책 가능

이러한 토대 위에 남북한은 상대방의 국가적 실체를 인정하고 통일을 이룰 때까지 쌍방 관계를 ‘국가 대 국가 간 특수관계’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계를 국제법상의 조약인 ‘남북 기본조약’을 맺어 규정하자. 남한과 북한이 상대방을 국가로 인정하지만, 대외적으로 어느 일방이 상대방을 대표하지 않으며, 또 각각의 헌법에 따른 주권을 자국의 영토에 국한하도록 규정한다. 당연히 남북한 모두 국내적으로 관련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남북 기본조약에 따라 남북한은 정상적인 국가 간 선린 관계를 발전시키며, 인적·물적 교류·협력 등 상호 작용은 원칙적으로 국제법, 국제규범, 통상적인 국제 거래 등에 준거한다.

남북한이 상대방을 국제법상의 국가로 인정한다고 하여 통일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시 서독은 별도의 공한을 통해 이 조약이 독일 민족의 자유로운 의사로 통일을 달성하려는 서독의 목표에 모순되지 않음을 동독에 통보했다. 우리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헌법에 규정된 통일의 목표를 유지할 수 있다. 남북 기본조약은 통일 시까지 남북 관계를 규율하는 기본 규범이다.

남북 기본조약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남북한의 주도권이 확보될 수 있다. 한반도 분단 현실이 정상적으로 인정됨으로써 미·중·일·러 주변국도 균형적인 정책을 펼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동북아 6국 체제는 북한의 핵 의존성을 감소시켜 핵 없는 한반도 평화공존 체제의 형성을 촉진할 수 있다.

박영호 한반도포럼 위원장·전 강원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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