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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현장실습 폐지로 학생들 죽음 막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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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7년 11월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폐지 촉구 기자회견' 모습.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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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강석경 | 김동준의 엄마·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저는 2014년 씨제이(CJ)제일제당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중 괴롭힘과 폭행, 협박으로 하늘로 간 김동준의 엄마입니다. 아들의 죽음이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사망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은 저와 가족들의 몫이었습니다. 다행히 괴롭힘이 밝혀졌고 산업재해 인정도 받았습니다. 마이스터고에 다니는 학생들이므로 당연히 교육이 있어야 하는 현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생들이 파견된 현장에 교육은 없었고 물량을 맞추기 위한 연장근무와 서툰 일을 지적하며 아이를 구타하는 선임들과 그런 일을 모른 척하는 관리자들이 있었을 뿐입니다. 이것이 대학에 진학하기보다 조금이라도 일찍 일을 시작하겠다며 직업계고에 들어간 학생들의 결정에 대한 대가입니까.

1월20일이면 동준이가 세상을 뜬 지 8년이 됩니다. 아직까지도 현장실습을 하다 죽는 학생이 많습니다. 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찾아간 현장에는 ‘실습생’을 위한 어떠한 관리도 교육도 없었습니다. 그저 나이 어리고 다루기 쉬우니 직장 내 제일 약자로 취급될 뿐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생겨서 괜찮다고 하실 겁니까? 수직적인 상하관계 속에서 나이 어린 학생들이 무엇을 얼마나 말할 수 있겠습니까? 기업에 맡겨두는 게 말이 되나요? 제 아들도 그렇게 처참하게 지내다가 세상을 등졌습니다.

얼마 전 전남 여수의 한 요트업체에서 현장실습(잠수 작업)을 하다가 숨진 홍정운 학생 사건의 재판이 있었습니다. 업체 대표에게 징역 7년이 구형됐으나 그것으로 얼마나 달라질까요? 비슷한 죽음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사업주 처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정부는 두달 반 만에 현장실습 개선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2019년 기업의 현장실습 참여 조건을 완화해 안전관리도 하기 어려운 업체까지 폭넓게 실습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에 대한 반성은 없었습니다. 교육부는 ‘학습중심 현장실습’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현재 70%인 기업의 인건비(훈련수당) 부담 비율을 40%로 줄이기로 했습니다. 줄어든 30%는 교육청이 부담하겠다고 합니다. 이 방안을 보면 정부는 이미 기업이 값싼 노동력 공급 수단으로 현장실습 제도를 이용해왔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도대체 왜 학생들을 산업현장에 밀어넣지 못해 안달입니까? 공식적으론 술 담배도 마트에서 사지 못하는 학생입니다. 적어도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는 굳이 기업에 가서 현장실습을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학생들을 기업에 소개하는 것이 학교의 임무는 아니지 않습니까. 마이스터고라면, 직업계고라면, 특성화고등학교라면 아이들에게 해당 업무를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교육이 없는 현재의 현장실습 제도는 폐지되어야 합니다. 2017년 현장실습 제도 폐지가 공론화된 적이 있지만, 최근에는 폐지되면 큰일이 날 것처럼 후퇴한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학생들을 정말 ‘실습교육’ 시키는 곳이 있습니까. 없지 않습니까. 직업계고는 취업률 높이기에 급급한 직업소개소로 전락한 지 오래입니다. 기업에서 원하는 것이 값싸고 말 잘 듣는 노동력 제공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현장실습생’ 제도를 사용하는 것 아닙니까. 더 이상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의 학습권과 노동권을 빼앗지 마십시오. 더 젊은 노동력이 필요하다면 졸업생을 대상으로 제대로 된 처우를 강제하는 제도를 만들면 될 일입니다. 고등학생을 기업에 싼값에 노동자로 팔아먹는 일을 실습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것을 이제는 막아야 합니다. 그래야 현장실습이란 이름으로 쉽게 죽어 나가는 아이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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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씨제이(CJ)제일제당에서 현장실습을 하다가 숨진 김동준군(오른쪽)과 어머니 강석경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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