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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추윤 갈등 재연될라" 한발 물러선 박범계…검사장 외부 공모 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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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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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계 법무부 장관(왼쪽)과 김오수 검찰총장.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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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중대재해 전문가를 일선 검사장으로 임용하겠다는 법무부 방침이 검찰 내부 반발에 밀려 철회됐다. 대선을 목전에 둔 민감한 시점에 법무부·검찰 간 갈등이 재연될까 우려해 법무부가 물러선 것으로 보인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수사부서의 특수성과 검찰 내부 여론을 면밀히 살피지 않은 채 인사를 밀어부치다 혼란만 불렀다는 비판이 나온다. ‘검사 순혈주의’만을 고집하는 검찰의 폐쇄적 조직문화를 바꾸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법무부는 21일 “법무부 장관이 20일 검찰총장과의 긴급 만찬 회동을 통해 중대재해 전문 검사장의 외부 공모 절차를 중단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17일 외부 중대재해 전문가를 대검찰청 검사급(검사장) 검사로 신규 임용하겠다며 모집 공고를 냈다.

박 장관이 외부 중대재해 전문가의 검사장 임용 방침을 철회한 것은 검찰 내부 반발이 컸기 때문이다.

박 장관은 지난해 말 법조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현재 광주고검과 대전고검 차장에 검사장급 직위 두 자리가 비어 있다”며 “전진(승진) 인사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최종 인사권자인 대통령께 여쭤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대재해 관련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승진 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27일)을 앞두고 검찰의 중대재해 대응 역량을 강화한다는 명분을 들었다. 이를 두고 박 장관이 ‘검사장 축소’라는 정부 기조와 어긋나는 인사를 단행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권 말 ‘알박기 인사’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에 박 장관은 ‘내부 승진’ 대신 ‘외부 임용’ 카드를 꺼내들었다. “검사장 인사는 외부 공모로, 한자리만 진행한다”고 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김오수 검찰총장도 19일 대검 부장회의를 거쳐 법무부에 검사장 외부 공모 방침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검찰청법 등 인사 관련 법령에 저촉될 소지가 있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으며 검찰 내부 구성원들의 사기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대검 관계자는 “중대재해 수사 전문가가 어떻게 검찰 외부에 있겠나. 이번을 계기로 외부 인사가 검사장이 돼 수사지휘하는 사례가 생기게 되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흔들릴 소지가 커졌을 수 있다”고 했다.

결국 박 장관은 ‘외부 임용’ 방침도 백지화했다. 검사장 인사를 두고 박 장관의 입장이 한 달도 안되는 기간에 ‘내부 승진→외부 임용→검사장 인사 백지화’로 바뀐 것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대선도 있고, 과거의 트라우마도 영향을 준 것 같다”고 했다. 대선을 앞두고 과거 추미애 법무부 장관 재임 때처럼 법무부와 검찰 간 갈등이 재연될까 우려한 결과라는 것이다.

검찰의 폐쇄적 조직문화를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그동안 검찰의 공공형사부(공안부)는 노동자의 생명이나 안전을 보호하겠다는 방향으로 일해오지 않았다”며 “노동자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온 외부 인사를 찾아 검찰의 방향타 역할을 맡기려 했다. 검찰이 폐쇄성을 고수해 외부 수혈을 받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법무부는 중대재해 전문 검사장의 임용 방침을 철회하면서 외부 인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중대재해 관련 자문기구를 대검에 설치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자문기구는 중대재해 초동수사 방안과 양형인자 발굴, 새로운 위험에 대한 법리 연구 개발 등을 맡는다. 자문기구가 권고하면 검찰총장은 권고를 이행하게 된다. 법무부는 “향후 중대재해와 노동인권 분야의 검찰 역량 강화를 위해 노동인권의 전문성과 감수성이 높은 검사를 양성하겠다”고 했다.

대검도 입장을 내고 “법무부 장관이 강조한 중대재해에 대한 근본적 인식 변화, 전문성 강화, 엄정대응 필요성에 대해 깊이 공감한다”며 “검찰 업무에서 실질적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대검은 이날 고용노동부, 경찰청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대비한 회의를 열었다. 대검은 안전한 작업환경 구축을 위해 단속·수사 활동을 강화하고 위험 요인을 방치한 경영 책임자에 대해 엄정 대응하겠다고 했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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