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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뉴스쉽] 허리띠 졸라매는 달러…당신의 계좌도 위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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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미국발 악재로 국내 주가가 하락하는 날이 슬금슬금 늘고 있다. 증시 하락은 주식 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의 경제 사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궁금해서 미국 금융 사정에 대한 기사를 좀 읽어보려 해도 어려운 말이 많이 나온다. 언제는 '테이퍼링' 때문에 금융시장이 출렁인다더니 이제는 양적 '긴축'이라는 것 때문에 또 주가가 떨어진단다. 양적 '완화'도 알기 귀찮았는데 양적 '긴축'은 또 뭐람. 하지만 올 한 해 우리 경제는 그런 어려운 단어들의 영향을 크게 받을 가능성이 높다. 평소 달러 한 푼 쓰는 일 없고 외국인 한 명 만날 일이 없어도, 내가 오늘 먹은 음식, 입고 있는 옷, 타고 다닌 교통수단, 내가 지금 있는 건물… 어느 것 하나 국제적인 달러의 흐름과 무관한 것이 없다. 오늘날의 세계는 너무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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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와 <오징어게임>과 손흥민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돈의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 경제는 달러의 바다에 뜬 작은 배나 다름없다. 달러의 바다가 험해지면 한국호에 탑승한 우리의 삶도 고달파진다. 그래서, 오늘 <뉴스쉽>에서는 '달러의 바다'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개념의 이해를 도와드리고자 한다. 미리 말하자면, 올해 달러는 방만한 운용을 끝내고 '허리띠 조이기' 모드에 들어간다. 우리 경제에는 별로 좋지 않은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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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미국은 그동안 달러를 너무 많이 풀었다고 보고, 달러의 공급을 줄이려는 중이다. 벨트 조이는 달러지폐는 미국 매체들도 종종 사용하는 비유다. SBS 뉴미디어 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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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줄 말라죽을 뻔했던 세계 경제, 이젠 돈 홍수 피해 걱정



지난 15년 사이 세계 경제는 2007-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2011년 유로존 국가 채무 위기, 최근 2년간의 코로나19 사태 등 여러 차례의 위기를 넘겼다. 그때마다 돈의 흐름이 막혀 위기가 찾아왔고, 주요 국가들은 막힌 곳을 뚫기 위해 천문학적인 규모의 돈을 퍼부었다. 빚을 내 뿌리기도 하고, 없던 돈을 찍어내 뿌리기도 했다. 그 방법이 양적 완화(돈의 양을 느슨하게 풀어놓음)였다. 2008년부터 최근까지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이 푼 돈은 늘고 늘어 8조 달러가 넘는다(아래 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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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맘때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아래와 같은 삽화를 실었다. 사람들은 부풀어 오른 달러 거인이 뿌리는 돈에 환호하지만, 누가 봐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달러 거인은 한계까지 부풀어 올라 뻥 터지든지, 피시식 바람이 빠져 주저앉든지 둘 중 하나의 결말을 맞게 될 것임을 이 삽화는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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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021년 2월28일자 월스트리트저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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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각국이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찍어 뿌린 건, 중병에 걸린 사람을 일단 살리기 위해 독한 약을 왕창 쓴 것과 비슷하다. 위기를 넘겼으면 약을 줄이고, 약 없이도 생활할 수 있게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 약 기운 돌 때는 살 만하다고 환자가 계속 약에 의존한 채 조심성 없이 생활하면 결국 그 환자는 탈이 난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돈 풀기'라는 약의 가장 큰 부작용은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 상대적으로 집, 주식 등 자산 가격에 거품이 생기고 물가가 뛴다. 결국은 돈을 거둬들여야 잡힐 문제다. '양적 긴축'이라는 말은 미국이 이제 돈의 양을 줄이겠다는 뜻인데, 이건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찍어낸 달러가 전 세계로 흘러나가 각국의 시장을 떠받쳐왔기 때문이다. 위에 소개한 WSJ의 삽화에는 뉴욕시가 그려져 있지만, 녹색 괴물이 흘리는 달러에 환호했던 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제 파티는 끝나가고 있다.

농사에 비유하자면…양적 완화, 테이퍼링, 양적 긴축



'위기→돈 풀기→극복→돈 거둬들이기'의 사이클은 농사에 비유할 수도 있다. 가뭄으로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면 벼가 자라지 못한다. 어떻게든 물을 끌어다 논에 채워야 한다. 벼가 한창 자랄 때에도 물이 너무 많으면 곤란하다. 농부들은 물을 줄였다 다시 댔다 해가며 수위 조절을 한다. 이삭이 영글 때쯤 되면 논에서 물을 빼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뿌리가 썩는다.

돈을 풀어 경제 위기를 넘기는 일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돈을 쏟아붓는 단계는 양적 완화다. 경제가 위기를 넘겼다고 판단되면 차차 돈의 추가 공급을 줄인다. 이것이 '테이퍼링(Tapering)'이다. 영어 사전에서 '테이퍼링'의 뜻을 찾아보면 '폭이 점점 좁아짐, 가늘어짐'이라고 나온다. 이때까지는 양이 전보다 줄었을 뿐, 물을 계속 넣고 있는 것이다. 논에서 물을 빼는 단계가 양적 긴축(tightening)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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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 완화를 실시했던 중앙은행이 테이퍼링과 양적 긴축까지 나아간다는 건 경제가 상당히 좋아졌다는 걸 전제로 한다. 벼이삭이 패지도 않았는데 논에서 물을 빼지 않고, 병세가 호전되지 않았는데 약을 끊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런데 국제 금융시장에선 테이퍼링이나 양적 긴축 얘기가 나오면 주가가 요동을 친다. 지금까지 주가가 오른 건 실물경제의 진짜 성적 이상으로 부풀려진 것이고, 그건 연준이 풀었던 과잉 달러 덕분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경제 지표가 좋게 나왔는데 주가가 빠지고, 경제지표가 안 좋은데 주가가 오르는 현상도 잦았다. 이것 역시 경제 지표가 좋아지면 연준이 돈을 거둬들일까 봐 투자가들이 겁을 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국제 금융의 포커판에서 가장 큰손인 미국의 중앙은행 연준은 달러를 거둬들이는 과정에서 시장이 지나친 충격을 받는 건 원치 않는다. 그래서 연준은 말로 시장과 끊임없는 '밀당'을 한다. 테이퍼링을 금방 할 것처럼 얘기했다가 늦춘다고 말을 바꾸기도 하고, 내친김에 테이퍼링을 넘어 양적 긴축까지 가겠다고 했다가 당장 하는 건 아니라고 하는 식이다. 이는 다른 투자자들이 최대한 판에 오래 머물게 함으로써 '풀었던 달러 거둬들이기'가 세계에 미칠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다. 당신이 연준 어쩌고 하는 기사를 보고 '대체 어쩌겠다는 거야. 도무지 모르겠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연준의 의도 때문이다. 그런데, 연준은 어떻게 돈을 거둬들인다는 것일까? 이 설명을 하려면 먼저 어떻게 돈을 풀었던 건지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애초에 왜 돈을 풀었나] 20년 전 미국의 '영끌'…그러다 터진 거품



90년대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미국에선 내 집 마련 열풍이 불었다. 사람들은 갚을 능력 이상으로 돈을 빌렸다. 은행들은 이를 조장해서 대출 장사를 했다. 그리고는 돈 받을 권리(채권)를 이리저리 조합해서 증권으로 만들어 팔았다. 금융 좀 안다는 투자가들이 이걸 사기도 하고, 심지어 이런 증권들을 다시 짜깁기해서 또 다른 파생상품을 만들어 되팔았다. 집값이 오를 때는 속칭 '에브리바디 해피'였다.

그렇지만 부풀려진 가격은 무한정 유지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대출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고, 집값이 빠지기 시작했다. 집을 팔아도 빚을 갚을 수 없는 '깡통주택'이 급증했다. 그런 빚에 기반한 증권과 파생상품들이 펑크 나기 시작했다. 이게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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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파산한 리먼브러더스 뉴욕본사에서 짐을 싸서 나오는 직원. 2008년 9월.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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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스턴스, 리만브라더스 등 월가의 터줏대감 격이던 유명 은행들이 이때 여럿 날아갔다. 미국 제조업을 상징하는 자동차 회사들마저도 파산 위기에 몰렸다. 은행이 시중에 돈을 빌려줘야 경제가 돌아가는데, 살아남은 은행들은 '누구에게 떼일지 알 수 없다'며 두려움에 떨었다.

은행들의 은행, 은행들에 돈을 공급해 주는 중앙은행인 연준(Fed)이 나섰다. 저금리로 은행들이 돈을 갖다 쓸 수 있도록 했다. 그래도 은행들은 대출에 나서지 않았다. 이자는 낮지만 부도나지 않을 국채만 사들여 움켜쥐고 있었다. 미국 행정부가 직접 나서서 재정을 푸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경제가 엉망이니 세금이 덜 걷혔고, 빚은 이미 낼만큼 냈고, '방만하게 굴다 돈 못 갚은 회사는 망해야 자본주의가 제대로 돌아간다. 정부가 도와주면 안 된다'는 정치적 반대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연준으로서는 경제 위기를 넘길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다.

[양적 완화] 중앙은행, 시중에서 채권을 빨아들이고 돈을 집어넣다



연준은 시중은행 설득에 나섰다. 이런 대화가 오갔을 것이다(움직이는 그림이다. 채권과 돈주머니가 맞교환될 때까지 지켜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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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입장에선 들고 있는 채권(경제 사정이 나아지지 않으면 채무자가 부도나서 휴지조각이 될 가능성도 있는)을 중앙은행이 사 주면 부담도 덜고 (easing), 수중에 현금의 양(quantity)도 늘어난다. 미국의 은행들은 2010년대 들어 차차 적극적인 대출에 나서기 시작했고, 미국 경제는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이때 연준은 금고에 이미 있던 돈을 채권값으로 내준 게 아니라, 없던 돈을 만들어내서 은행들에게 줬다. 조폐국 윤전기를 더 돌려 실물 지폐를 나눠준 게 아니고 연준에 개설된 민간 은행의 계좌에 전산상으로 잔고를 늘려줬을 뿐이지만,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당시 미국 당국도 언론도 '돈을 찍어낸다(printing money)'는 비유적 표현을 많이 썼다. '헬기로 공중에서 돈을 뿌린다'는 등의 비유도 자주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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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010년대 양적완화를 설명하기 위해 미국 언론이 많이 사용했던 이미지. 헬기로 돈을 뿌리면 대량살포가 가능하지만 꼭 필요한 곳에 타겟팅해서 돈을 공급하기는 어려운데, 실제로 양적완화에는 이런 문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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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공개시장에서 유통되던 미국 정부 발행 우량 채권을 사들였다. 은행 등 기관 투자가들이 '이자는 얼마 안 돼도 정부 채권이 주식이나 뭐 다른 위험 자산보단 안전하지' 하면서 채권을 살 때의 기대 수익률을 떨어뜨림으로써, 그들이 보다 고위험 고수익 분야에 투자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런 활동들을 통칭해서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 줄여서 QE)라 한다.

[좀 더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 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이면 왜 시중에 돈이 풀리나



중앙은행이 정부가 발행한 국채 등 채권을 사들이면 왜 시중에 돈이 풀릴까? 가장 간단한 이해 방법은, 채권 대신 단팥빵 같은 상품으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단팥빵 10억 원어치를 사면? 시중에는 10억 원이 돈다. 그 돈이 원래 중앙은행 금고에 있던 돈이 아니고 단팥빵을 사기 위해 새로 찍어낸 돈이라면? 시중에는 그만큼 새로운 자금이 공급된다. 쉽지 않은가? 자, 이제 단팥빵 자리에 채권을 넣고 생각해볼 차례다.

'채권'은 A가 B에게 돈을 빌리면서 언제까지 얼마의 이자와 원금을 갚겠다고 써주는 증서다. A가 회사면 회사채, 정부면 국채라고 부른다. 큰돈 굴리는 기관들은 주식도 사지만 큰 덩어리의 돈은 채권으로 운용한다.

액면가 100만 달러인 미국 국채가 10년 만기, 이자율은 연 2%짜리로 발행돼 나왔다고 해 보자. 그러면 이 채권을 산 투자자는 연 2만 달러씩 10년이면 20만 달러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이 채권을 사서 10년 꽉 채워 들고 있으면 20%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단순 계산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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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떤 이유로 국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면(보통은 민간 경제가 불안하다고 생각될 때 투자가들의 돈이 안전을 위해 국채로 몰린다. 정부는 민간 기업보다 부도 가능성이 낮으니까)? 수요가 늘면 가격이 오르는 건 단팥빵이나 채권이나 같다. 시장에선 아래 그림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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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경쟁에서 이겨서 이 국채를 최초 발행 액면가보다 오른 120만 달러에 사들인다고 가정해보자. 연 2% 이자, 10년 만기라는 조건은 채권에 처음부터 찍혀있는 것이니 바뀌지 않는다. 그러면 당신이 만기까지 이 채권을 보유함으로써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은 어떻게 될까? 일단 채권 사는데 쓴 돈(분모) 대비 이자(분자)의 비율은 16.66%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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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10년 만기를 다 채울경우의 수익률은 0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면, 만기에 채권소유자로서 돌려받는 원금은 당신이 채권 사는데 쓴 돈 120만 달러가 아니고 채권의 액면금액인 100만 달러이기 때문이다. (120 주고 산 투자자산이 10년뒤 원금 100+ 이자20=120 그대로)

그러면 다른 투자자들은 고민을 하게 된다. 채권값이 올라서 수익률이 낮아졌지만 그래도 안전하니까 국채를 살 것인가, 아니면 위험도가 국채보다 높지만 수익도 더 많이 나는 주식이나 비즈니스에 투자할 것인가. 연준은 채권 투자해서 돈 더 벌자는 게 목적이 아니고 채권 값을 밀어 올리는 데에 목적이 있으므로, 수익률이 떨어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채권을 계속 사들인다. 이 상황이 계속되면 당신은 연 2%짜리 국채보다는 연간 5%, 10% 이상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주식이나 사업에 투자할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이 시중에서 국채를 사들인 건 바로 이런 효과를 노린 것이다.

연준의 양적 완화는 미국 정부가 돈을 더 많이 쓸 수 있게 하는 효과도 냈다. 앞서 가정했던 케이스로 돌아가 보자. 미국 정부는 다음 번 채권을 발행할 때는 100만 달러를 빌리기 위해 10년간 20%의 이자를 약속할 필요가 없다. 시장에서 통용되는 수익률이 떨어졌으니, 그만큼 이자를 덜 주겠다고 하면 된다. 이제 정부는 전보다 적은 비용으로 민간에서 돈을 빌려 재정을 집행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면,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을 중앙은행이 돈을 새로 찍어 사주는 단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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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시장에 채권을 발행한다는 건, 시장의 여유 자금을 정부가 빌려오는 개념이다. 적당히 하면 정부는 민간에서 노는 돈을 끌어다 국가 경제 활성화에 꼭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다. 하지만 국채를 너무 많이 발행하면 민간에서 돌아야 할 돈이 정부 주머니에 너무 많이 들어오는 부작용이 날 수 있다. 그러면 민간에선 돈이 귀해지니 돈의 값(=이자율)이 오른다. 민간에서 돈을 구해 투자나 사업을 하려던 사람들에게 피해가 간다.

그렇다면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민간이 아닌 중앙은행이, 새 돈을 창출해서 사주는 방법이 있다. 요새는 수고롭게 펄프와 잉크를 쓸 필요도 없이 그냥 컴퓨터 클릭만 하면 돈이 생겨난 것으로 치는 세상이니 번거로울 일도 없다. 그렇게 조달된 돈으로 정부가 민간 기업의 서비스와 상품을 사고 복지수당을 나눠주면, 민간 경제에 돈 공급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다시 말하지만, 부작용이 따른다).

[이런 말도 나오던데] '연준의 대차대조표 축소'는 무슨 소리?



이런 중앙은행의 역할과 돈의 흐름을 다룬 기사들을 보면 최근에는 '연준이 대차대조표 축소에 나서려고 한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대차대조표상의 '자산'을 축소하려고 한다는 말을 줄인 것이다.

양적 완화의 다양한 수법을 동원하여 돈을 풀면, 연준의 주머니에는 채권이 잔뜩 쌓일 것이다. 채권이 뭔가. 돈 받을 권리를 증서로 만든 것이다. 내가 받을 돈은 회계장부(대차대조표, balance sheet)에 '자산'으로 기록된다. 즉, 연준이 대차대조표상의 자산을 줄이겠다는 말은, 그동안 사들여 쌓아놓은 채권을 줄이겠다는 뜻이다. 연준이 채권을 왜 샀다고? 민간에 돈을 풀기 위해서 샀다. 즉, 채권값만큼의 돈이 민간 경제에 나가있는 것이다. 연준이 '대차대조표(상의 자산)를 축소'한다는 건 그래서, 돈을 다시 빨아들인다는 뜻이다. 중요한 그래프니까 다시 보자.


이 그래프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지금까지 연준의 대차대조표상에서 자산(받을 돈, 채권)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2012년경에 한 번, 2018년 지나면서 한 번, 조금 줄어들락 말락 하다가 2020년부터 수직으로 치솟는 것을 볼 수 있다. 코로나19 봉쇄로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망하고 사람들이 집을 잃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채권을 사들이고 돈을 푼(양적 완화) 흔적이다.

채권값으로 내보냈던 돈을 연준의 주머니로 불러들이는 작업이 양적 긴축(Quantitative Tightening)이다. 제일 살살하는 방법은, 만기가 돌아온 채권에 대해 만기 연장 재투자를 하지 않고 이제 그만 돈을 돌려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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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적극적인 방법은 만기가 남아있는 채권도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다. 그러면 채권값만큼 돈이 흡수돼 연준의 주머니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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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채권의 공급이 늘어나면 채권 가격이 떨어지고, 앞서 그림으로 설명했던 것과 반대의 작용이 생겨나므로 다음부터 채권을 발행해 돈을 빌리려는 자는 더 높은 이자를 약속해야 한다. 돈 빌려쓰기가 부담스러워지고 자산 거품이 유지되기 어려워질 것이다. 연준이 의도하는 '달러 허리띠 조이기' 효과다. 그러나 연준 같은 큰손이 채권 물량을 왕창 쏟아내면 시장에서 채권 가격의 폭락과 금리 급등을 유발해 큰 충격을 줄 수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상황을 봐가며 써야 한다. 모든 건 정도의 문제다.

이제는 달러 공급의 벨트를 조이는 시간



현재 미국 연준은 양적 긴축의 여러 방법, 그리고 전반적인 금리의 인상에 이르기까지, 돈을 거둬들일 다양한 카드를 저울질하며 호시탐탐 시기를 노리고 있다. 이미 모두가 경험하고 있듯이, 너무 많이 풀려나간 돈으로 인한 부작용-자산시장 과열, 양극화 등-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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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또 어떤 메가톤급 경제 위기가 닥칠지 모르는데 그때 또 위기를 넘기려면 미국 중앙은행으로서는 그나마 상황이 호전된 지금 돈을 좀 거둬들여놔야 할 필요도 있다.

문제는 값싼 달러의 덕을 보던 다른 나라들이다. 2008년 이후 풀려나온 8조 달러 이상의 돈은 전 세계 곳곳에 흘러들어가 각국 경제의 자양강장제 역할을 해왔다. 그 '각국'에는 우리나라도 포함된다. 이제 연준이 정책 방향을 바꿨으므로 달러는 점차 미국으로 돌아가거나 금리가 비싼 곳을 찾아서 움직일 것이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귀해지는 달러, 가치가 떨어지는 자국 화폐 때문에 골치를 앓는 한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우리나라가 미국, 일본과 맺었던 통화스와프도 종료된 상태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어촌마을에 가 보면, 밀물이 들어왔을 때 고기 잡던 배는 썰물이 되면 갯벌에 갇혀 꼼짝 못 한다. 썰물 때를 알고 그에 맞춰 쉬려 했다면 상관없지만, 모르고 당한다면 낭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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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의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한국호는 물이 들고 나는 것을 정확히 읽고 있나. 어떤 대처를 해야 할까. 여러분의 계좌와도 무관하지 않은 질문이다.

(구성 : 이현식 선임기자(D콘텐츠 제작위원), 장선이 기자 / 디자이너 : 명하은, 박정하)
이현식 D콘텐츠 제작위원(hyunsi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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