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출범 1년 공수처 위기 탈출 해법 있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수사력 부족·인권침해 논란에 운용 미숙까지



경향신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박시영 검사와 수사팀이 지난해 9월 10일 서울 여의도 김웅 국민의힘 의원실을 상대로 한 압수수색을 중단하고 철수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민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실망하는 것은 단지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해서가 아니다. 기존의 수사기관들과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기존 기관들만큼의 성과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김지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센터 검경개혁소위원장)

공수처가 출범 1주년을 맞았지만 내부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수사력 부족, 인권침해 논란에 운용 미숙까지 그야말로 ‘총체적 위기’다. 공수처가 1월 21일 첫돌 행사를 내부 인사만 참석한 채 비공개로 연 것도 이런 분위기의 반영이다.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견제하며 고위공직자의 부패를 엄단한다.’ 시민이 기대하는 공수처의 역할이자 설립 취지다. 신생 기관인데다 ‘미니 공수처’라 불릴 만큼 규모가 작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는 예상했다. 문제는 공수처가 1년간 보여준 모습이 그 예상을 밑돈다는 데 있다. 특히 ‘인권 친화적 수사기구’를 표방했지만 새로운 수사 패러다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기존 수사관행을 답습했다.

전문가들은 공수처의 전반적인 쇄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구성원의 역량 강화는 물론이고 수사 사건의 ‘선택과 집중’, 책임성 강화를 위한 외부 견제 장치 마련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처장 등 지휘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공수처 폐지를 거론하는 건 아직 이르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인권 친화적 수사기구?

공수처를 향한 여러 비판 가운데 가장 뼈아픈 대목은 인권침해 논란이다. 이는 기존의 부적절한 수사방식을 답습한 데서 비롯됐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해 1월 취임사에서 공수처가 “국민의 신뢰를 받는 인권 친화적 수사기구”라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김 처장은 “적법 절차와 무죄추정의 원칙에 입각해 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는 품격 있고 절제된 수사”를 원칙으로 내세웠다.

공수처는 그러나 피의자의 출석을 압박하려고 지나치게 인신 구속을 시도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공수처는 지난해 10월 ‘고발사주’ 의혹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구속영장 청구 불과 사흘 전 손 검사의 체포영장을 법원이 기각했다. 체포영장의 기각 이후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건은 이례적이다.

공수처는 손 검사가 출석을 차일피일 미뤄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당장 공수처의 행위가 피의자를 압박해 방어권을 무력화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체포영장이 발부되면 최대 48시간 동안만 피의자를 잡아둘 수 있지만, 구속영장을 통해서는 기소 전 최대 20일까지 구금할 수 있다. 구속영장이 체포영장보다 인권침해 요소가 더 크고, 발부 요건도 더 엄격하다. 또 법원이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기 전까지 피의자는 반나절가량 구치소에서 대기해야 한다. 심리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법원은 예상대로 손 검사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일종의 피의자 괴롭히기”라고 말했다. 공수처 수사심의위원인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1년간 최악의 장면”으로 꼽았다.

공수처가 통신자료를 무더기로 조회한 사실이 지난해 12월 밝혀지면서 인권침해 논란은 더 거세졌다. 조회 대상이 야당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과 그 가족 등 300여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면서 ‘사찰’ 의혹까지 일었다. 통신자료 조회는 법에 근거가 명시돼 있고 검·경 등 기존 수사기관이 활용해온 수사 방식이다. 법원의 영장 없이 휴대전화 사용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의 개인정보를 손쉽게 획득할 수 있어 사생활의 비밀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었다. 영장을 통해 정보를 취득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논란이 불거지자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1월 6일 송두환 위원장 명의의 성명을 내고 우려를 표명했다.

공수처는 지난해 3월 ‘수사 외압’ 의혹을 받는 이성윤 당시 서울지검장(현 서울고검장)을 조사하면서 김 처장의 관용차를 제공해 ‘황제 조사’ 논란을 자초했다. 이 고검장은 친정부 성향으로 분류된다. 권력자들을 조사할 때 이른바 ‘모셔오는’ 편의를 제공하는 기존 수사기관의 행태와 다르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경향신문

‘고발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왼쪽)이 지난해 10월 27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법원에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반적인 운용 ‘갸우뚱’


공수처 출범 직후의 최대 관심사는 첫 수사 대상이었다. ‘1호 사건’은 상징성이 큰 만큼 공수처의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사건을 선정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검찰이 축소·은폐했거나 다단계 구조의 권력형 범죄 사건, 공수처가 기소권을 가진 판·검사나 경무관 이상의 경찰관이 연루된 사건 등이 거론됐다. 공수처는 그러나 지난해 4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부정채용 의혹을 첫 수사 대상으로 결정했다. 감사원이 감사를 통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경찰이 수사하고 있던 사건이었다. 권력형 부패 범죄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공수처가 조 교육감을 직접 기소할 수도 없다.

현직 검사를 상대로 수사한 첫 번째 사건에 기소권을 행사하지 않은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공수처는 지난해 12월 ‘윤중천·박관천 면담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하고 유출한 혐의를 받던 이규원 검사 사건을 수사한 뒤 검찰로 넘겼다. 기소 여부는 검찰이 판단하라는 취지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는 “공수처의 존재 의의를 스스로 저버린 행동이었다”고 말했다.

■“공수처는 아마추어”

공수처는 아직 직접 기소한 사건이 없다.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기 때문에 피의자의 구속 여부를 수사 성과의 절대적 지표로 삼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공수처가 구속 필요성을 주장하며 법원에 청구한 영장이 모두 기각됐다는 사실을 단순히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

‘고발사주’ 의혹의 핵심 당사자들이 수사와 관련 법에 정통한 전·현직 검사들이지만 공수처는 이들에게 빈틈을 보였다. 공수처는 지난해 9월 김웅 국민의힘 의원(검사 출신)의 국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가 별다른 소득 없이 빈손으로 철수했다. 김 의원이 제기한 준항고를 법원이 인용해 압수수색을 전면 취소하기도 했다. 압수수색 당시 수사팀 내에서 현장 경험 많은 수사관들이 전면에 나서지 못하는 등 인력 통솔 과정도 미흡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운국 공수처 차장의 “우리는 아마추어” 발언은 공수처 신뢰 하락을 부채질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 설계 자체가 아마추어 중심이다. 기존 수사관행으로부터 벗어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문제는 제대로 된 역량을 키우기도 전에 수사에 나섰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청와대를 강제수사하지 못한 점도 아쉬운 대목으로 꼽는다. 공수처는 지난해 7월 이규원 검사의 ‘윤중천·박관천 면담보고서’ 허위 작성 과정에 이광철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청와대를 압수수색했다. 공수처는 임의 제출 형식으로 관련 자료를 넘겨받았다. 한 교수는 “권력형 범죄의 핵심은 청와대”라며 “청와대를 압수수색하지 못한다면 권력형 범죄수사를 제대로 해낼 수 없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선택과 집중, 외부 견제 장치 필요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공수처에 접수된 사건수는 2849건이다. 이 가운데 24건을 입건했고 사안별로 분류하면 12건이다. 785건은 분석 중이다. 공수처가 여러 사건에 손을 대기보다 선별 과정을 거친 소수의 사건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검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는 “한건이라도 공수처의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사건을 제대로 처리해 무게감을 나타내면서도 절제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성과를 내기 어려운 사건보다는 뇌물처럼 ‘눈에 확실히 보이는 사건’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정치적 공격을 덜 받는 부패 사건 처리를 통해 경험을 쌓고 수사 역량도 키울 수 있어서다. 이런 의견은 공수처 내부에서도 나왔다.

검사의 기본 임기가 3년이고 최대 9년까지만 임기를 보장한 점은 인재 영입의 걸림돌이다. 적어도 공수처에서 3년 이상은 일해야 스스로 수사를 기획하고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거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소신을 가지고 일하려는 검사한테 반복적인 재임용 절차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공수처가 제 역할을 하려면 조직 규모를 지금보다 키워야 한다. 현재 공수처의 수사 인력은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여기에 외부 수사인력도 파견받아 운영하고 있다. 수사대상이 고위적이고 유형이 복잡한 부패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일반 범죄보다 더 많은 공력을 필요로 한다. 기소 후에 일부 인력은 공소유지를 전담해야 한다. 수사 인력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현재 규모로는 사건수가 많아지면 수사와 공소유지 두가지를 모두 굴리기에 벅찬 구조다.

오병두 홍익대 법학과 교수(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는 “부패 사건은 정치권, 검찰, 언론, 기업 등이 서로 얽히고설켜 매우 복합적인 양상을 띤다”며 인적·물적 요소들을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수처와 검찰·경찰 간의 협력 체계 구축도 향후 과제다. 기관별로 사건을 배분하고 수사 협조 등을 논의할 수 있는 테이블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기관 모두 수사권을 가지고 있고, 기소권은 공수처와 검찰이 가지고 있다.

공수처의 책임성 강화를 위해 외부 견제 장치를 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공수처의 독립적 수사 활동을 보장하되 ‘제 식구 감싸기’ 등을 방지할 수 있도록 감시의 눈을 두자는 주장이다. 공수처 징계위원회의 위원장은 공수처 차장이다. 징계위원 6명을 모두 차장이 지명·위촉한다. 김지미 변호사는 1월 20일 참여연대가 개최한 ‘위기의 공수처 1년, 분석과 제언’ 토론회에서 “대다수의 기관이 징계위원회에 외부 관여를 허용해 폐쇄성을 지양하고 객관성·투명성을 꾀하는 것과 대비된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지난해 12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휘부가 책임져야


일부에선 공수처 운영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김진욱 공수처장의 사퇴를 촉구한다. 공수처장의 임기는 3년으로 법에 보장돼 있다. 양홍석 변호사는 “김 처장 등 지휘부의 리더십이 부족하다”며 “공수처 전체를 리뉴얼하려면 공수처장과 차장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남근 변호사(민변 개혁입법특별위원회 위원장)는 “공수처 차원에서 왜 성과가 지지부진했는지 등을 자체적으로 평가하고 진단해야 한다”면서도 지휘부 사퇴에는 반대했다.

1년밖에 안 된 공수처의 폐지 여부를 언급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숨 고르기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대선후보 측 입장

대선 국면에서 대선후보들은 공수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안철수 국민의당, 심상정 정의당 후보 가운데 공수처의 존폐 여부의 견해를 공식적으로 밝힌 건 안 후보뿐이다.

안 후보는 1월 11일 한국기자협회 주최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불법적 사찰을 하는 공수처는 없애야 한다”고 밝혔다. 홍경희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기자와 통화에서 “공수처가 1년이 됐지만 평가할 만한 게 없다”라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의 완전 박탈)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공수처와 관련한 주간경향의 질의에 다른 후보들 측에서는 후보의 공식 입장을 밝히는 데 신중했다. 다만 선거 관련 기구나 대변인·공보단장 명의로 입장을 밝혔다. 이들 모두 공수처가 성과를 내지 못한 점을 지적했지만 존폐 여부를 두고는 의견이 갈렸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소속 사법대전환위원회는 공수처가 현직 검사를 상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대검을 압수수색한 점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검사들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공수처 폐지를 거론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사법대전환위원장인 김용민 의원은 “기득권들 입장에서 공수처는 껄끄러운 존재”라며 “이 때문에 공수처는 무능하다는 여론을 조성해 무용론을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인력 증원, 처우 개선, 예산 확대 등을 통해 원활한 운영과 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했다.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이자 선거대책본부 대변인인 전주혜 의원은 공수처의 1년을 “독립성은 완전히 저버린 채 ‘무능·무지·무도의 3무 공수처’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혹평했다. 전 대변인은 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와 체포·구속영장 청구 및 기각을 거론하며 “인권 친화적 수사 표방은 말뿐인 허언”이라며 “정권 입맛에 맞는 선택적 수사를 하는 ‘정권 보위처’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수처의 수사 역량과 능력은 7000명에 이르는 고위공직자 범죄를 중립적으로 수사할 수 없는 수준임을 드러냈고, 독립성과 중립성을 견지해 철저하게 수사할 수 있다는 신뢰마저 완전히 상실했다”며 공수처 폐지를 주장했다.

심 후보의 직속기구인 종합상황실 박원석 공보단장은 “공수처가 이대로 간다면 존폐 논란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며 “불법 사찰 의혹의 분명한 대국민 사과와 책임 있는 조치, 재발 방지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수처장 선출 방식 변경, 공수처의 수사·기소권 일치, 국회 차원의 수사 절차 통제 방안 등 개선책을 제시했다. 박 단장은 “공수처장이 반복되는 문제점을 개선할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처장 자격을 심각하게 물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수처는 관련 법에 근거해 설치된 기관이다. 공수처 설립을 주도한 민주당이 국회 의석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공수처를 쉽게 폐지할 순 없으리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공수처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커질 수는 있다. 향후 공수처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 RPG 게임으로 대선 후보를 고른다고?
▶ [뉴스레터]교양 레터 ‘인스피아’로 영감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