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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명의를 찾아서] 최석근 경희의료원 교수 “머릿속 시한폭한 ‘뇌동정맥 기형’, 30년 쌓은 데이터로 혈관 끝까지 쫓아가 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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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최석근 경희의료원 교수가 뇌동정맥 기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경희의료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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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경희의료원 감마나이프 센터에는 지금껏 병원을 방문한 ‘뇌동정맥 기형’ 환자가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이후 상태가 얼마나 호전됐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수천개가량 쌓여있다. 최석근 경희의료원 신경외과 교수와 그의 스승인 임영진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원장(전 경희의료원 신경외과 교수)이 지난 30년간 모아온 것으로, 이 정도 데이터량은 국내에서 독보적인 수준이다. 최석근 교수는 “감마나이프 수술로 뇌동정맥 기형을 고치려면 긴 시간 동안 환자 상태를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추적 가능한 데이터를 쌓는 게 매우 중요하다”며 “경희의료원은 지금껏 환자 데이터를 꼼꼼하게 모아왔기 때문에 완치까지 10년 넘게 걸리는 환자도 끝까지 쫓아가 뇌동정맥 기형을 고쳐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뇌동정맥 기형은 임신부 뱃속 수정란이 세포 분화하는 과정에서 혈관 분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뇌 속 동맥과 정맥 사이를 잇는 모세혈관이 없는 채 태어나는 병이다. 1000명 중 1명꼴로 발생하는 희귀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동맥은 심장이 뿜어낸 피가 지나가는 혈관이기 때문에 모세혈관이 없으면 동맥의 강한 혈압이 정맥에 그대로 전달돼 쇼크나 혼절, 심하게는 뇌출혈까지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뇌동정맥 기형은 뇌혈관이 언제 터질지 몰라 ‘머릿속 시한폭탄’으로 불린다.

이러한 뇌동정맥 기형을 ‘감마나이프’라는 장비로 수술·치료하는 데 있어 최석근 교수는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감마나이프는 인체에 무해한 얇은 방사선 줄기를 몸속 한 지점에 수십에서 수백개씩 교차시켜 병변을 파괴하는 장비다. 돋보기로 태양열을 모아 종이를 태우는 원리와 같다. 뇌동정맥 기형 수술에서는 ‘혈압이 너무 높아 막아야 하는 혈관’을 병변으로 설정한다. 이곳에 감마나이프가 방사선을 쏴서 상처를 내면 해당 혈관에 새 살이 돋기 시작하면서 나중에는 아예 혈관이 막히게 된다.

혈관이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십년 이상에 걸쳐 서서히 막히면, 혈관 속 피가 평소 지나가던 혈관이 막히는 상황에 천천히 적응하면서 주변에 있는 다른 혈관으로 경로를 바꾼다. 압력이 치명적으로 높은 혈관이 막히고, 그곳을 지나던 피가 다른 혈관들로 흐르면서 압력이 분산되는 것이다.

경희의료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최석근 교수에게 감마나이프 수술을 받은 뇌동정맥 기형 환자 105명 중 104명이 현재 정상적으로 생활 중이다. 76명(72.8%)은 뇌동정맥 기형이 사실상 완치됐으며, 28명은 병변 크기가 두드러지게 줄어들었다. 최석근 교수 팀은 현재 뇌동정맥 기형 사례들 중 ‘거대 병변’을 치료하는 방법을 만들며 기존 감마나이프 수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최 교수를 지난 6일 경희의료원 감마나이프 센터에서 만났다.

一 ‘뇌동정맥 기형’은 어떤 병인가.

“수정란이 분화하며 태아가 될 때 혈관 분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뇌 속에 동맥과 정맥을 이어주는 모세혈관 없이 태어나는 병이다. 부모에게서 유전되는 질병은 아니다. 혈관 분화가 정상적으로 되지 않는 이유도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말 그대로 ‘기형’인 것이다. 있던 모세혈관이 스스로 사라질 수는 없기 때문에 후천적으로 발병하는 건 불가능하다.”

一 뇌동정맥 기형 환자는 어떤 증상을 보이나.

“피는 혈관을 흐르면서 몸 곳곳에 산소와 영양분을 준다. 이게 정상 작동하려면 혈압이 너무 높거나, 피가 흐르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면 안 된다. 그 압력과 속도를 조절해주는 게 모세혈관이다. 그런데 모세혈관이 없어 동맥에서 정맥으로 피가 넘어갈 때 제대로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면 혼절이나 쇼크가 와서 쓰러질 수 있다. 또 혈관 특정 부위에 오랫동안 높은 혈압이 쏠리면 터져서 뇌출혈이 오기도 한다.

뇌출혈은 보통 스트레스를 자주 받거나 식습관 때문에 고지혈증을 앓는 40대나 50대 사이에서 발생한다. 혈관 구조는 문제 없지만 생활 습관 때문에 혈압이 높아져 뇌출혈이 생긴다. 그래서 10대나 20대 등 젊은 나이에 뇌출혈이 왔다면 뇌동정맥 기형일 확률이 높다. 한창 건강할 나이에 아무 징조 없이 뇌출혈이 왔다면 혈관 구조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一 모든 뇌동정맥 기형 환자가 그런 증상을 겪나.

“그렇지 않다. 평생 아무 증상이 없는 경우도 있다. 뇌동정맥 기형은 악성 종양이 아니라 단순히 동맥과 정맥을 잇는 모세혈관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증상이 없다면 굳이 찾아서 고칠 필요도 없다. 외국에선 평생 뇌출혈이나 쇼크를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의 사체를 병원이 기증받아 해부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뇌동정맥 기형이 발견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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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근 경희대의료원 교수에게 감마나이프 수술을 받은 실제 환자의 뇌혈관 사진. 왼쪽이 수술 전 동맥과 정맥이 엉켜있는 모습, 오른쪽이 수술 후 완치된 모습이다. /경희대의료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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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그렇다면 ‘감마나이프 수술’은 어떻게 뇌동정맥 기형을 치료하게 되나.

“엑스(X)레이 촬영으로 뇌혈관 구조와 상태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뇌동정맥 환자의 뇌혈관은 동맥과 정맥이 한 곳에 둥글게 뭉쳐 꽁꽁 엉켜있다. 모세혈관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 여기서 혈압이 너무 높아 막아야 하는 혈관, 즉 병변을 찾아 방사선을 어디, 얼마나 쏠지 정한다. 이후 얇은 방사선 줄기들을 한 곳에 모으도록 특수 제작된 헬멧을 환자 머리에 씌우고 수술을 시작한다.

혈관 벽에 방사선을 쬐면 상처가 생기고, 여기에 새 살이 돋아 ‘비후(어떤 조직이나 기관이 과형성돼 크고 두툼해진 상태)’가 발생하면서 혈관이 천천히 막힌다. 혈관이 완전히 막힐 때까지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넘게 걸린다. 그 과정에서 평소 지나가던 혈관이 막히는 상황에 피가 알아서 적응하고 다른 혈관 쪽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이러면 몇 년에 걸쳐 혈류(피의 흐름)가 재편되고 혈압이 분산돼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진다.

쉽게 말해 어느 날 갑자기 6차선 도로에서 차선 4개를 한꺼번에 없애면 항상 그 도로를 지나던 차들이 큰 혼란에 빠지고 정체도 심해질 거다. 그런데 차선을 6개월에 하나씩 줄여나가면 차들이 알아서 다른 경로를 찾아 빠져나가게 된다. 감마나이프로 뇌동정맥 기형을 치료하는 건 그런 원리다.”

一 감마나이프 수술로 뇌동정맥 기형을 치료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인가.

“첫째는 방사선을 통과시킬 병변을 정확히 설정하는 것이다. 병변 면적을 너무 크게 잡고 방사선을 쏘면 혈압이 높은 혈관 주변에 있던 정상적인 혈관들까지 상처를 입고 막히게 되면서 뇌 혈압이 역으로 더 높아질 수 있다. 그래서 압력이 과하게 몰리는 혈관 부위를 정확히 포착해서 방사선 타격을 가해야 한다.

둘째는 데이터 축적이다. 뇌동정맥 기형은 감마나이프 수술이 끝나자마자 바로 없어지는 게 아니다. 혈관이 막히면서 혈류가 완전히 재편되는 데 10년 안팎으로 걸리기 때문에 완치를 위해선 말 그대로 환자를 계속 쫓아다녀야 한다. 환자 경과에 따라 두 번 이상씩 감마나이프 수술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의료진이 환자들에게 병을 고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환자도 의료진을 믿고 꾸준히 추적검사를 받으러 오고, 그 데이터를 쌓아나갈 수 있다.”

一 30년간 뇌동정맥 기형 환자 데이터를 쌓아온 것으로 알고 있다.

“1992년 경희의료원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감마나이프 장비를 들인 이후부터 스승인 임영진 교수가 축적한 데이터다. 임 교수가 모아온 데이터를 물려받아 10년 넘게 더 쌓아올렸다. 환자 한 명을 고치는 데도 데이터가 필요하지만, 우리는 뇌동정맥 기형이라는 병 자체를 공략하기 위해 데이터를 모아왔다. 어떻게 생긴 병변에 어느 정도 세기로 방사선을 쐈더니 몇 년 후 어떻게 되더라. 그런 형태의 데이터를 30년씩 모아온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단순히 수술을 하는 걸 넘어 뇌동정맥 기형이라는 병 자체를 연구할 수 있다. 환자 수술 데이터와 치료 노하우를 동시에 쌓아온 셈이다. 수술 성과가 좋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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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최석근 경희의료원 교수가 감마나이프 수술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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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감마나이프 수술로도 아예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는 없나.

“동맥과 정맥이 특정 부위를 넘어 머리 전체에 엉켜있는 사람이 있다. 그런 경우는 감마나이프를 쓸 수 없다. 뇌 전체에 방사선을 쏴야 하는 꼴이다. 20년가량 의사생활 하면서 그런 경우는 딱 다섯 명 봤다. 그런 환자에겐 수술이 아니라 약물치료를 한다. 뇌동정맥 기형을 없애는 약이 아니라 그 증상인 쇼크, 혼절 등을 방지하는 약을 처방한다.”

一 감마나이프 이외에 뇌동정맥 기형을 치료할 수 있는 수술법은 없나.

“미세수술, 즉 직접 머리를 여는 개두술을 통해 물리적으로 혈관을 막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뇌에 손상을 줄 가능성이 높아서 잘 쓰지 않는다. 이외에 색전술(색전 물질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혈류를 막는 수술법)을 쓰기도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뇌동정맥 기형을 치료할 수 없어 보조 역할로만 이용한다. 결국 뇌에 직접 손상을 줄 가능성이 매우 낮으면서 병변만 확실히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은 감마나이프뿐이다.”

一 다른 수술법과 비교해 감마나이프가 갖는 ‘특장점’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전신마취를 하지 않는 점이다. 전신마취는 환자 호흡을 인위적으로 없애는 조치이기 때문에 폐나 신장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의사는 물론 환자도 전신마취를 피하고 싶어 한다. 감마나이프는 헬멧을 고정시키기 위해 머리 쪽 부분 마취만 들어간다. 두 번째는 안전이다. 환자 몸에 영향이 크지 않다. 방사선으로 병변만을 파괴하기 때문에 수술 직후에도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一 그렇다면 감마나이프 수술법의 한계는 무엇인가.

“수술 후 완치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이건 장점이기도 하다. 혈관이 천천히 막히기 때문에 혈류가 재편되는 과정 또한 느리게 진행된다. 갑작스런 변화에 몸에 부담을 느낄 일이 없다는 점에서 장점이다. 다만 마찬가지로 혈관이 천천히 막히기 때문에 혈압은 당분간 계속 높게 유지된다. 수술 이후에도 혼절, 쇼크, 뇌출혈 등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다행히도 지난 5년 동안 이렇게 증상이 재발하는 환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이런 점에서 더더욱 수술 후 환자 상태를 꾸준히 확인하면서 데이터를 모으는 게 중요하다.”

一 감마나이프 수술 적응증을 ‘거대 병변’으로까지 늘리고 있다던데.

“그렇다. 원래 거대 병변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게 감마나이프의 태생적 한계였다. 병변이 커지면 환자에게 쏴야 할 방사선 줄기들도 넓어져야 하는데, 이러면 병변뿐만 아니라 방사선이 통과하는 모든 뇌 조직에 피해가 갈 수 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첫째로 병변을 분할해서 하나씩만 방사선으로 타격하는 방법이다. 쉽게 말해 10인치짜리 병변을 5인치씩 둘로 나눠 감마나이프 수술을 두 번 진행하는 것이다. 둘째는 색전술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색전술로 혈관 일부를 물리적으로 막으면 병변 크기가 줄어든다. 병변이 작아지면 감마나이프를 사용하기가 훨씬 쉽고 안전해진다. 방사선 줄기들을 얇은 상태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법들에 대해 현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一 의사 생활 초반부터 뇌혈관 질환과 감마나이프 수술법을 함께 배웠나.

“원래 시작은 감마나이프로 했고 뇌혈관 쪽은 담당하지 않았다. 그런데 임영진 교수 밑에서 수련하면서 조금씩 할 수 있는 것들을 늘려가던 찰나, 2006년에 우리 병원이 경희의료원과 강동 경희대병원으로 나눠졌다. 그때 뇌혈관 쪽 교수 거의 대부분 강동 경희대병원으로 넘어갔다. 하는 수 없이 임 교수 밑에 있으면서 뇌혈관 쪽 지식도 있었던 내가 뇌혈관 파트를 떠맡게 됐다. 이후 십수년간 노력을 거듭했다. 덕분에 적어도 뇌혈관 수술 쪽에서는 경지에 올랐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뇌혈관 질환을 보면서 감마나이프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나 같은 과정을 밟은 사람은 정말 거의 없다. 어떻게 보면 울며 겨자 먹기로 멀티플레이어가 된 셈이다(웃음).”

一 국내에 감마나이프 장비가 많지 않은데 학술 교류 같은 건 활발히 이뤄지나.

“감마나이프 방사선 수술 학회가 있다. 1995년에 감마나이프 사용 병원 미팅으로 시작한 것이 2002년부터 정식 학회가 됐다. 국내에 감마나이프 장비가 많지 않아 회원 수도 적어 가족 같은 분위기로 운영한다. 감마나이프 장비가 국내에 들어온 순서에 따라 학회장을 돌아가면서 할 정도다. 매년 11월에 학술 미팅을 갖는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감마나이프 장비를 만드는 회사인 ‘렉셀’에서도 학회에 참여하고 있다.”

一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어쩌다 보니 국내에서 뇌혈관 질환과 감마나이프를 함께 다루는 몇 안 되는 의사가 됐다. 사실 그 계기는 내 의지와 무관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 스승과 함께 쌓아온 좋은 데이터도 있다. 환자를 장기추적할 수 있다는 건 뒤집어 말해서 결국 전부 다 완치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기술과 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 1000명에 1명 꼴로 나오는 게 뇌동정맥 기형 환자지만, 최근 들어 거의 매주 환자를 보고 감마나이프 수술을 하고 있다. 그분들 머릿속 병변을 끝까지 쫓아가서 확인 사살해나가는 게 목표다.”

최정석 기자(standard@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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