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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SDF 다이어리] '예술' 코드로 읽는 코로나 이후의 세상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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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NECT, BTS〉 전시 기획자, 이대형 큐레이터에게 듣다



안녕하세요? 벌써 2022년이 20 여 일이나 지났다는게 믿기지 않는데요. 여러분은 2022년의 1월,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저희 SBS미래팀은 지난 7일, 좋은 영감을 얻으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는 '사유의 방'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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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쉽지 않은 두 반가사유상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던 것도 너무 반가웠지만 기획단계에서부터 건축가[1]가 참여해, 반가사유상을 관람하는 감동을 어떻게 극대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한 전시답게, ‘사유의 방’이라는 공간이 주는 특별함은 상당했습니다.

넓고 어두운 방의 천장 경계와 두 반가사유상 주변 아래, 위로만 비춰진 은은한 조명으로 인해, 반가사유상에 대한 몰입도가 높았습니다. 또, 좁은 복도를 지나 이어진 전시공간으로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적막함’에서, 뭔가를 오래 응시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정말 사유와 성찰을 돕는 것 같은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1] 국립중앙박물관 2층에 위치한 '사유의 방'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처음으로 건축가(최욱 원오원 아키텍츠 대표)와 콜라보해 공간까지 같이 기획한 상설전시입니다. 신소연 학예연구사는 2021년 11월12일 시작된 '사유의 방' 전시에 1월 12일까지 총11만 5천명이 방문한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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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에서 위안을 얻는 시대]



그래서 새삼 ‘사유를 가능케 하는 공간’이라는 게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서는 어쩌면 개개인들이 이렇게 사유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통해 위안을 얻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 이 기사는 매주 수요일 아침 발송되는 뉴스레터, 'SDF 다이어리'에 소개됐습니다. 'SDF 다이어리'는 <SBS D포럼>을 준비하는 SBS 보도본부 미래팀원들이 작성합니다. 우리 사회가 관심 가져야 할 화두를 앞서 들여다 보고, 의미 있는 새로운 관점이나 시도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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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과연 우리 팀이 느낀 경험이 정말 일리가 있기는 한 것인지, 이 시대 우리 사유의 방향은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 지에 대한 혜안을 얻기 위해 지난 13일 큐레이터 이대형 감독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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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안녕하세요? 2년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저희는 2020년에 <SBS D포럼>때 감독님께서 저희 연사면서 같이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해 감독님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자기 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큐레이터 이대형입니다. 저는 2017년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예술 감독을 하면서 관심을 현대 미술에 국한하지 않고, '큐레이팅 한다'는 것은 시대 가치를 누구보다 빨리 읽어내고 그것을 사람들한테 잘 인지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시각적, 종합적 경험을 선사하는 일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런 관심사의 확장으로 2020년도에 <SBS D포럼>에서 소리를 활용한 예술 작품을 작가로서 함께 기획할 수 있었고요. 팬데믹 상황에서는 긴 호흡으로 준비할 수 있는 일들을 기획하고 또 몇몇 미술관들 컨설팅을 해오고 있습니다.

• SDF2020 이대형 감독의 강연이 궁금하다면? ‘여기’를 클릭!
• SDF2020 아트 프로젝트 <페르마타: 멈춤>이 궁금하다면? ‘여기'를 클릭

[코로나 이후 예술계의 주요 화두]- "지구 환경", "미래 세대", "타인에 대한 공감"



‘시대 정신’을 읽는 일을 하고 계시다고 하셨는데 코로나 이후 혹시 예술계에서 이전과는 다르게 눈에 띄는 현상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팬데믹 이전과 이후가 사실 확연하게 바뀌는데,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국경선을 사이에 둔 지정학적인 갈등들이 미술의 주요한 화두였습니다. 예를 들어서 동양과 서양, 혹은 한국과 일본, 한국과 중국, 이런 식으로 경계선이 이분화 되고, 그 다음에는 극단적인 대립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이런 대립 상황이 팽배한 상황에서 미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면, 팬데믹 이후로는 인간과 사회, 사회에서도 지정학적 갈등보다는 조금 더 높은 레벨의 '지구 환경' 문제, 예를 들면 ‘인류세’ 문제가 대표적이죠. 이전에는 '인간' 중심으로, 또 '자국' 중심으로 봤다면 이제는 인간을 넘어선 '종의 다양성' 문제, 그리고 지금 우리 국가, 우리 기업의 문제를 넘어서는 '미래 세대', 그리고 또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 이런 부분이 예술계의 큰 화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술의 역할이 확대됐다는 측면, 또 예술의 역할이 단순히 지금 미술 시장이나 미술의 제도 안에서 성공하기 위한 그런 길이 아닌, 예술이 어떻게 지구, 예술이 어떻게 미래 세대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에 대한 더 근원적이고 더 건강한 고민을 하는 쪽으로 바뀌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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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 감독 인터뷰 모습, 지난 13일, SBS 목동 본사

['바이오필리아(녹색갈증)'에 높아지는 세계적 관심!]



이런 상황에서 감독님은 요즘 어떤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계신지 궁금해요.

전세계적으로 최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또다른 화두는 생명(bio)과 사랑(philia)의 합성어인 바이오필리아(biophilia-녹색갈증)[2]예요. ‘바이오필리아’가 결국은 인류세와도 연결되는데, 팬데믹 상황에서 ‘바이오필리아’에 대한 관심과 예산이 굉장히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미술의 영역이 미술관 안에만 국한되지 않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 창의적으로 자연을 해석하고, 자연에서 다시 건축, 예술 등의 영역으로 연결되면서 미술이 생태, 환경, 과학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2] 바이오필리아(biophilia)는 생명을 뜻하는 ‘바이오’와 사랑을 뜻하는 ‘필리아’가 조합된 용어로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인간의 사랑을 의미하며 국내에서는 ‘녹색갈증’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였던 에리히 프롬이 '생명이 있는 것에 끌리는 심리적 성향'을 설명하는데 ‘바이오필리아’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였다. 이후 저명한 생물학자인 하버드대 생물학 교수 에드워드 윌슨이 1984년 <바이오필리아>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이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되었다.

에드워드 월슨은 그의 저서 <바이오필리아>에서 “생물을 탐구하고 생물과 친해지는 것, 살아 있는 창조물에 감성적 상징을 부여하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신화와 종교 속으로 끌어 들이는 것은 바이오필리아의 문화적 진화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기본적인 과정들이다. 다른 생물 종을 더 많이 이해할수록, 우리의 지식은 그것들의 거대한 다양성을 수용할 만큼 더 늘어나고, 그것들은 물론이고 필연적으로 우리 자신이 갖게 될 가치도 더 커진다“라고 주장했다.

['융합적 관점'의 부상!]



이제는 미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미술과 생태, 과학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해 주셨는데요. 저희도 코로나를 겪으면서 받은 느낌이, 예전에는 자기 분야 한 가지만 잘 하는 분들이 각광을 받았다면 코로나 이후에는 이과적인 계통에서 뭘 하시는 분인데 언어학이나 종교학에도 조예가 있다든지 하는 식으로 ‘융합적인’ 사고를 하시는 분들이 확실히 더 앞선 인사이트를 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이 시대 특히 ‘융합적인 관점’이 필요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20세기 산업화는 전문가를 양성해왔고, 그런 교육 시스템이었는데, 인간 하나로만 봤을 때도 우리가 뇌만 있어야 되는게 아니라 촉감도 느껴야 하고 온전하게 인지를 할 수 있어야 하고 후각의 도움도 있어야지 이 대상이 향기로운 것인지, 독이 있는지 알 수 있고 종합적인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을 도시로 비유한다면 각각의 기능들이 사일로(원통형 창고)들처럼 만들어졌죠. 각각의 굴뚝처럼 말이에요. 자기 분야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그러다 보니 예를 들어서 눈은 큰데 귀가 막혀 있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 거죠. 이것을 도시 전체로 봤을 때, 국가 전체로 봤을 때, 혹은 사회 전체로 봤을 때는 저렇게 하면 파국으로 가는 것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본, 경쟁에 대한 것만 굉장히 비중이 크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갔던 거였죠. 그런데 예를 들어 앞으로 달리는 다리 근육만, 허벅지 근육만 있어서 앞으로 막 달려가면 빠르긴 하겠지만, 뭔가 섬세하게 관찰하는 인지 능력이 떨어진다면 그 앞이 낭떠러지여도 모를 수 있는 거죠. 인류가 지금 그런 단계에 왔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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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제라드(John Gerrard), <웨스턴 플래그(Western Flag)>, (스핀들톱, 텍사스) 2017 ©John Gerrard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가가 미국에 존 제라드라는 작가인데 <웨스턴 플래그>라고 석유가 불에 타는 연기를 가지고 깃발을 만든 작품이 있어요. 미디어 아트 작품인데 이 깃발이라는 게 인류가 항상 달을 정복할 때도 꽂았고 새로운 곳을 정복할 때 항상 꽂습니다. 그런데 존 제라드가 얘기하는 깃발은 '파국'의 깃발이거든요. 우리가 자본과 과학과 이런 것을 총동원해서 깃발을 꽂았는데, 그 깃발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죽음’을 상징하고 ‘인류의 파멸’을 상징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좀 생각해야되는 것 같아요.

인간이 올바르게 걸어갈 수 있는 이유는 각각의 장기와 각각의 기능들이 굉장히 섬세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서 서로가 서로의 어떤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인데, 우리의 산업화, 분업화 시대에는 그러지 못했죠. 그래서 환경 분야나 예술 분야, 문학 분야 등에서 어떤 경고의 콜을 줘도 듣지 못했던 거죠. 그래서 요즘은 이제 '생태학적인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죠. '예술적 상상력'도 중요하고, '과학적인 실천력'도 중요하고요. 이제는 이런 모든 것들이 함께 중요하지, 어느 하나에만 주목해서는 우리 인류가 올바로 직립보행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저희가 최근에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 다녀왔는데, 뭔가 계속 일 중독처럼 쌓기만 하는 삶을 살아오다가, 넓고 뻥 뚫린 공간에서 반가사유상을 접하고 나니까, 뭔가를 비우고 성찰하고 사유하고 그런 시간이 되게 필요했는데,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낭떠러지인 줄도 모르고 달려오기만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새삼 넓고 높은 국립중앙박물관 자체도 너무 시원하게 느껴지면서, 코로나 동안 크게 인지하지 못했던 ‘사유와 공간’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지난해 11월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미국 애리조나주에 제임스 터렐이라는 작가님이 계신데 1979년도에 휴화산을 하나 샀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화산을 설치 미술 작품으로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 분이 만든 작품이 <로든 크레이터(분화구)>라는 작품인데요. 최근 그 화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작품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구의 그림자'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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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로든 크레이터 --제임스 터렐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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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로든 크레이터(Roden Crater), (미국 애리조나) © Florian Holzherr

그런데 해 질 녘에 작가님께서 “화산 꼭대기에서 ‘지구의 그림자’를 보여줄게.” 그러시는 거예요. ‘지구의 그림자’라는 단어도 굉장히 생소했고, 과학적으로 그것을 볼 수 있나 라는 의문도 들었는데요. 그런데 '로든 분화구' 꼭대기에서 작가님이 알려주신 해가 지는 방향을 보니 정말 이 지평선에서 점점 검붉게 올라오면서 지구의 그림자가 하늘에 맺히더라고요. 대기에. 그것을 보면서 1979년도에 화산을 사서 지금까지 거기서 하나의 작업을 지속해오는 것도 놀랍고, 지구의 그림자를 읽어 내시는 것도 놀랍더라고요.

그 분이 명언을 하나 하시는데 “어둠은, 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고 지표면에서 올라간다.”는 얘기를 해요. “땅에서부터 올라가는게 밤이다.” 그런데 실제 과학적으로 그게 맞더라고요. 그 분이 천문학을 전공하셨다 보니, 동양과 서양 또 별과 관련된 신화를 지구 생태와 연결해서 말씀하시는데 상상력의 폭이 굉장히 충격적이었고요.

저 스스로도 현대 미술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애를 많이 썼는데, 그가 관찰하는 대상은 인류를 넘어서 우주까지 또 우주와 지구와의 관계, 심지어 잡초의 생태 이런 것까지 면밀하게 관찰을 하면서 작업의 바탕으로 동원하는 것을 보면서 예술가의 상상력이라는 것이 대단하구나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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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터렐의 <로든 크레이터> 화산 중심부에서 300미터 터널을 통해 바라본 애리조나의 하늘 풍경 © 이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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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든 크레이터> 300미터 터널 아래에 맺힌 태양의 표면 이미지 © 이대형

저도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떠나 애리조나 사막을 다니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미약하지만 자신이 없었던 생각들에 더 확신을 갖게 됐는데요. 흔히 예술가들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느냐?", "영감의 원천이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받을 때, 저는 “예술가의 뇌가 특별한 게 아니고 예술가들은 적어도 어떤 (기존) 제도의 중력에 저항하는 그런 힘이 있다” 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세상의 이치와 세상의 진리와 사회의 가치는 바깥에 있어도, 기업이든, 정부든 그 안에 있으면 사고와 행동은 이 조직의 중력에 따라서 공무원은 공무원답게, 대기업은 대기업답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적어도 아티스트들은 그것에서 벗어나는게 되게 중요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팀장님께서 반가사유상, 국립 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전시를 보고 느꼈던 감동도 현재 보이는 익숙한 주변 환경, 빛, 평소에 느끼던 다양한 자극에서 단절되는 경험이 가져온 결과가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지구 반대편의 오지를 체험하거나, 사막을 걸으면서 아니면 바다를 보면서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이 떠오르는 이유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행동을 당기고 있는 그 어떤 중력장으로부터 벗어나는 연습을 누구보다 본능적으로 생존 본능에 의해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저희도 코로나 이후, 기후 위기 때문에도 그렇고 과학 쪽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요. 지금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면 예술의 영역은 과학도 넘어서네요.

예술이 과학처럼 직접적으로 지구를 구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렇지만 예술이 가지고 있는 가장 막강함 힘은 사람들한테 공감 능력을 주는 거잖아요? 과학자들이나 환경학자들이 다양한 데이터를 가지고 논문을 쓴다면, 예술가들은 (그 상황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작품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돕는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이집트의 바히아 쉐하브라는 여성 작가가 쓰레기 더미를 큐브로 만들어서 이집트에 <쓰레기 피라미드>를 만들어요. 수천 년 전에 이집트에 피라미드가 있었다면 이제는 쓰레기를 집적해서 피라미드를 만드는 행위를 보면서, 그게 예술적인 행위이지만 사람들은 아주 깊게 반성하거나 아니면 행동의 변화를 촉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죠. 그래서 저는 “예술이 세상을 변화시키지는 못하지만, 세상을 변화시킬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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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히아 쉐하브(Bahia Shehab), <쓰레기 피라미드(Pyramids of Garbage)>, (카이로, 이집트) 2020 © Bahia Shehab

["실험과 실천...그리고 공감"]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저는 <CONNECT, BTS>전시가 정말 자랑스러웠고요. 또 베니스 비엔날레[3] 한국관 예술 감독으로 있을 때 제가 모금 활동으로까지 발전시켰거든요. 이 두 가지가 굉장히 자랑스럽습니다.

이 모든 것의 출발은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준비를 위해서 2016년도 각국의 큐레이터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시작됐는데요. 다들 예술의 근본적인 역할에 대해 반성을 하는 거예요. 베니스 비엔날레는 120년 역사에 '문화 올림픽', '문화 월드컵'이라고 할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가장 권위있고 가장 거대한 예술제이고, 여기에서 거론됐던 많은 훌륭한 철학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좀 위화감을 느낄 정도로 현실과 괴리감이 있기도 하고, 좋은 철학이 실질적으로 실천됐던 사례를 보기가 쉽지 않은 거예요. “예술을 위한 예술로 존재해왔던 게 아닐까? 대중과 소통하지 않는 엘리티즘의 함정에 빠졌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오픈했는데, 베니스를 오간 작가들이랑 같이 했던 얘기는 무엇이었냐면 베니스 비엔날레 때문에 100m, 120m 호화 요트가 정박을 합니다. 그런 대형 요트가 거기까지 오면서 디젤을 연소하고, 베니스 섬 전체에 환경, 건축학적 환경, 생태학적 환경을 또 파손하는 거죠. 우리가 그런 것을 지키려고 비엔날레를 하는 것인데, 실제 우리 행동이 만드는 결과는 그것과 정반대의 것들이 벌어지고 있어서, 예술이라는 것이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너무 공허한 신기루와 같다는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3] '비엔날레'란 2년마다 열리는 대규모 국제 미술전시회로, 그 가운데서도 역사가 길고 가장 인정받는 것이 베니스 비엔날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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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예술 감독 당시 모습 ©이대형

그래서 한국관 전시를 하면서 신문 3종을 발행합니다. 그리고 자기나라 화폐로 얼마든지 주고 사갈 수 있도록 했는데 2만 유로가 모여요. 그래서 그것을 '위 아 히어 베니스'(We are here Venice) 라는 환경 단체에 기부를 합니다. 전시 끝날 때 ‘위 아 히어 베니스’ 창립자와 베니스 비엔날레 관계자와 같이 조찬을 했는데 “120년 역사 동안 이탈리아관에서도 이런 일은 없었고, 전세계 어디에서도 베니스 환경에 대해 걱정하고 기부를 한 사례는 단 한번도 없었다. 어떻게 지구 반대편의 한국에서 이게 가능했는가?”라고 묻길래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 주말이면 하루 5천명씩 방문했는데 한국 사람은 없었다. 다 이탈리아나 서구 유럽사람들이 한국관을 사랑해줬다. 문화예술이라는 것이 그것을 기획할 때는 예술가의 뿌리도 있고 국적도 있지만 한번 세상에 놓여지면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은 인류 전체다. 생태 환경도 이탈리아만의 문제가 아니고 한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후원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실제 전시가 실천으로까지 가서 저한테는 굉장히 뿌듯한 전시였고요.

<CONNECT, BTS> 전시 프로젝트를 제가 정말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베니스 비엔날레를 마치면서 각국의 큐레이터들과 함께 “베니스 비엔날레 같은 게 필요해?”라는 생각을 해 본 거예요. 베니스 비엔날레를 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정말 거의 백만달러를 써요.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 지어진 것들이 비엔날레가 끝나면 다 폐기 처분돼서 쓰레기가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생긴 탄소 발자국의 양이 엄청나요. 전세계에서 한 군데 모아야 되기 때문에 다 연료를 써서 오거든요, 비행기는 항공유, 배는 디젤. 그리고 거기까지 가서 전시를 할 비용을 충당할만한 비싼 작가나 유명한 작가 혹은 아주 부유한 갤러리의 전속 작가가 아니면 전시가 쉽지 않은 구조인 거죠. 정말 가치 있지만 작은 새싹 같은 예술품도 분명 있는데, 그런 작품들은 한 군데 모아서 전시를 하기에 굉장히 어렵다는 얘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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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 감독의 CONNECT, BTS 프로젝트 소개 영상> © 빅히트 뮤직 --> "여기"를 클릭하면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한글자막도 지원됩니다.)

첫 번째는 환경문제, 두 번째는 그러한 경제문제로 인해서, 늘 성공하고 유명한 사람들이 또 다시 재탕, 삼탕되는 것을 극복하자 하는 생각이 들어 전시를 각 로컬 장소에서 하자, 그래서 <CONNECT, BTS>는 런던, 베를린, 부에노스아이레스, 뉴욕, 서울의 5개 도시에서 벌어집니다. 작품을 BTS와 함께 골랐고요. 모든 작가들이 BTS와 화상으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전시는 가상의 공간으로 서로 연결돼 누구든 BTS의 도슨트,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에너지가 굉장히 많이 절감이 되죠.

특히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토마스 사라세노라는 작가의 경우에는 <에어로센 파차>라는 태양 에너지만으로 인간이 하늘을 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프로젝트였는데요. 이걸 하기 위해 살리나스 그란데스라는, 아르헨티나 북부 3,600m 고원지대에 있는 소금 사막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과 협업을 합니다.

살리나스 그란데스는 세계 최대의 리튬 매장량을 자랑하는 곳인데요. 리튬이 전기차의 핵심이쟎아요. 그런데 리튬 2톤을 채굴하기 위해서는 2천만 리터의 깨끗한 물이 사용이 됩니다. 지구 반대편의 도시, 부유한 국가에서는 전기차를 타면서 환경운동을 한다, 마치 환경이 하나의 패션이 되어 가지고 의식 있는게 되어가고 있는데,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마을에서는 식수가 사라지고 삶의 터전이 없어진단 말이죠.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하고 싶었던 얘기는 전기차를 타지 말자, 배터리 반대한다가 아니라 “우리가 누리는 다양한 문명의 이기, 편리함 이면에 그 그림자에 있는 누군가의 어떤 희생이, 아픔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 하자”는 거죠. 그런 공감 능력을 갖게 하는게 예술의 힘입니다.


토마스 사라세노(Tomás Saraceno), <CONNECT, BTS-부에노스아이레스:에어로센 파차(Aerocene Pacha)>, (살리나스 그란데스, 아르헨티나) 2020 ©Tomás Saraceno

마지막으로 요즘 장안의 화제인 NFT[4]에 대해 묻고 싶은데요. 어떻게 보세요?

NFT가 처음에 출발했을 때, 무명의 예술가들이 이미 견고하게 짜여져 있는 미술 시장에 들어가기에는 문턱이 너무 높으니까,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면 좀 더 투명하게 자신의 지적 재산권도 지키면서 지속적으로 수익이 날 수 있는 굉장히 민주적이고 투명한 좋은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 출발을 했어요. 하지만 모든 기술은 역작용이 있는데요.

NFT를 주조하고 이것을 실제로 거래하기까지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소비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보통 뭐 8만불, 뭐 한 1억 정도 작품이 거래가 되면 꽤 규모가 큰 스튜디오의 2년치 전기세가 투여될 정도의 에너지, 그런 탄소 배출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인지하면서 보이콧하는 예술가들도 생겨나고 있고, 이런 것 때문에 기술쪽에서는 ‘그린 NFT’가 가능할 것인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고 그런 것들이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테크놀로지와 예술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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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T에서 보여주는 미학이라는 것이 혹자는 "전통적인 현대 미술 산업에서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과는 다를 것이다"라는 이야기도 합니다. 그런데 NFT에서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얼마만큼 많이 호응을 하도록 만들 것인가, 즉 절대 다수의 눈길을 끌어야 하는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만화적이거나 굉장히 일러스트 적이거나 아니면 번쩍이면서 사람들의 눈을 끌기 위한 여러가지 공식들이 쓰이지요. 그런데 저는 이런 것들이 조합이 돼 들어가서 하나의 예술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될 것 같아요. 그래서 본격적인 NFT의 미학도 정립이 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야 진짜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알고리즘 분석에 의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 어떻게 하면 NFT 커뮤니티에서 호응을 받을까에만 관심을 갖는, 그런 단계는 경제적으로는 의미가 있을 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인간의 감성이, 또 인류 전체가 ‘반가사유상’을 보고 말로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생각의 전환’을 느끼쟎아요. 그런 것들을 줄 수 있는 예술품이 NFT라는 기술기반으로도 유통되고 감상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전히 과도기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렇기 때문에 기회이기도 하지만 환경적인, 윤리적인, 또 예술 본연의 본질적인 통찰, 이런 것들을 고민할 수 있는 기획자와 예술가가 나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4] '대체 불가능한 토큰(Non-Fungible Token)'이라는 뜻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과 판매 이력 등의 정보를 모두 저장해 언제든 확인할 수 있어 위조 등이 불가능하다. 가상 자산에 희소성과 유일성이란 가치가 부여되면서 최근 디지털 예술품, 게임 아이템 등을 중심으로 투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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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예술을 즐기고 싶은데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대형 감독은 그림이나 조각을 보면 첫 번째로는 그 작품을 통해서 어떤 상상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고, 두 번째로는 그 그림을 만든 작가와 작품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고, 마지막으로는 그 작품이 놓인 장소와 그 작품과의 관계를 생각해보라고 조언했습니다. 모든 작품은 작가의 의도가 있기는 하지만 특히나 현대 미술은 관객의 해석이 작품을 완성하는 데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20세기는 문자 해독을 잘 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했다면, 21세기는 이미지 해독을 잘하는 사람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면서, 예술과 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감각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현대미술을 공부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번 뉴스레터는 조금 길었지만 코로나 이후, 변화하는 세상의 변화를 둘러싼 인사이트를 여러분에게 많이 드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대형 감독의 제안으로 변화하는 시대, 깊은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분들을 '릴레이 인터뷰'로 이어가 보려 합니다. 다음 편은 누가 될지 많이 기대해주세요.

*지난달 1월로 예고했던 ‘에픽게임즈’의 인터뷰는 안타깝게도 사정상 전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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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팀(sdf@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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