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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기둥 6개 승인받고 2개만 설치… 현산, 광주 붕괴아파트 무단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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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층 콘크리트 타설 15㎝ → 35㎝

하중 지지할 동바리도 설치 안해

“붕괴 30∼60분 전 작은 균열 발견”

작업자들이 현산에 보고 드러나

文 “지원 강화”… 정부, 중수본 가동

현산 측 재건축 수주전 나서 빈축

세계일보

23일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현장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잔해제거 및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사고 발생 2주째를 맞는 24일부터는 남은 실종자를 찾는 수색·구조작업이 24시간 지속 체계로 전환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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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C현대산업개발(현산)이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신축 아파트 골조공사를 하면서 설계변경 승인 없이 무단으로 기둥 수를 줄였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현산이 콘크리트 타설을 두껍게 하는 바람에 슬래브가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23일 경찰 등에 따르면 현산이 서구에 제출한 설계도에는 붕괴된 201동 공법은 무량판 구조 방식이다. 건축물의 뼈대로 수직 하중을 수평으로 분산해 버티는 보 대신에 바닥 슬래브를 두껍게 타설하는 공법이다. 내부의 하중을 버텨내는 구조물인 만큼 기둥이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하다. 사업계획 승인 당시 6개로 돼 있던 기둥은 실제 현장에서는 2개밖에 설치하지 않았다. 기둥 4개를 세우지 않아 위층의 콘크리트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붕괴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붕괴가 시작된 39층의 콘크리트 타설은 15㎝ 두께로 설계 승인을 받았지만 이보다 2.3배 두꺼운 35㎝로 변경했다. 공법도 재래식 거푸집이 아닌 ‘데크 플레이트’ 거푸집으로 바꿨다. 데크 플레이트는 거푸집 자체가 콘크리트 타설 시 받는 하중을 견딜 수 있게 설계돼 동바리(지지대)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번 공사의 경우 설계보다 더 많은 콘크리트 양을 사용해 하중을 견디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동바리 설치가 필요하지만 이를 설치하지 않았다는 작업자들의 진술이 나오고 있다. 데크 플레이트를 납품한 업체 관계자는 “자사 제품은 동바리를 설치하지 않고 35㎝ 두께의 콘크리트 무게를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두께의 슬래브는 위층의 콘크리트가 타설되면 하중을 많이 받아 동바리를 받쳐줘야 한다는 것이다.

붕괴 사고 발생 30~60분 전 작은 균열이 발견됐다는 진술도 나왔다. 공사 현장 작업자들은 이 내용을 현산에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며 건물 붕괴와 직접적 연관성이 있는지를 두고 수사를 벌일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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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수색 지지부진 23일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신축 공사장 외벽 붕괴 사고 현장에서 당국이 대형 크레인을 이용해 외벽 콘크리트 잔해물을 제거하고 있다. 광주=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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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수색의 가장 큰 걸림돌인 타워크레인과 거푸집 해체 작업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고수습통합대책본부는 “타워크레인 해체를 21일 완료하려 했으나 예측보다 늦어지고 있다”며 “작업자 안전을 확보하는 부분에서 지연되고 있다”고 밝혔다. 해체 과정에서 무게중심 이동 등으로 인한 타워크레인과 외벽 간 멀어짐 등 여러 변수가 발생하면서 당초 하루로 계획한 작업이 사흘째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아파트 붕괴사고와 관련해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를 운영한다. 중수본은 고용노동부와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소방청 등 관계기관으로 구성됐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중동 3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22일 “정부 지원을 한층 강화하고 지자체와 협의해 사고 수습 과정 전반에서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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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경기 안양 동안구 관양현대아파트 입구에 현대산업개발 반대 내용을 담은 재건축 관련 현수막이 붙어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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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산이 잇따른 사고에도 재개발조합의 수주전에 적극 나서 빈축을 사고 있다. 현산 측은 전날 경기 안양시 동안구 관양현대아파트 재건축 1차 시공사 합동 설명회에서 “조합원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즉각적으로 영업정지가 발생해 사업에 지장을 초래할 일은 없다”고 주장했다. 2015년 공사현장 사망사고 이후 지난해 들어서야 3개월의 영업정지가 확정된 코오롱글로벌 사례를 근거로 들기도 했다.

하지만 현산이 수주전에 눈이 멀어 인명 사고에 대한 도덕적·법적 책임을 간과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이 이번 사고와 관련해 ‘최고 수위의 징계’를 언급한 만큼 업계에서는 현산이 최장 1년 8개월간의 영업정지뿐 아니라 등록말소 처분까지 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광주=한현묵 기자, 박세준·이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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