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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조용헌 살롱] [1332] 미테랑의 점성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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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運)’이라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인생의 파도를 타면서 이것이 있다고 믿는다. 정치인과 사업가들이 이 운의 방향에 대해 가장 촉각을 기울이는 직업이다. 널뛰기 변수가 가장 많은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당, 점성술사, 역술가, 도사는 이 두 직업군에 봉사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인간사 생태계의 먹고사는 방법은 참으로 오묘하다.

프랑스 대통령 미테랑. 프랑스 현대사에서 가장 잘나갔던 시기를 이끌었던 대통령이다. 65세 때인 1981년에 대통령에 당선되어 1996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비전, 카리스마, 능력’을 모두 보여준 인물이다. 그런 미테랑에게도 단골 점성술사가 있었다. 여자였다. 엘리자베스 테시에(Elizabeth Teissier). 1938년생. 육십갑자로 말하면 무인(戊寅)생 호랑이 띠이다. 알제리에서 태어났으며 스위스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이 여자는 1989년부터 미테랑이 죽기 직전인 1995년까지 점성술적 조언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6년간이다.

그 조언은 어떤 내용들이었을까? 인사 문제나 정책 결정, 그리고 건강 문제 등이 아니었을까? 결과적으로 볼 때 그녀의 조언이 현대 프랑스 전성기 대통령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아야 한다. 테시에가 쓴 박사 논문이 있다. 미테랑의 점성술사가 쓴 박사 논문이라고 해서 당시 프랑스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미테랑의 어떠어떠한 정책 결정에 점성술적 조언이 영향을 미쳤다면 이는 굉장히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 박사 논문은 파리 5대학에서 2001년에 통과되었다. 박사 논문 통과를 두고 말이 많았다. 점성술을 과연 학문의 영역으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논쟁이었다. 하지만 당시 명망 있던 석학이 지도교수를 맡음으로써 논문은 통과되었다. 테시에의 논문은 900페이지나 된다고 한다. 2권으로 되어 있는데 필자는 프랑스어를 몰라 아직 읽어 보지를 못했다. 파리에 살면서 고구려 고분 벽화를 불어로 번역한 류내영씨에게 이 논문을 한국어로 번역해 보라고 권유한 적이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인물들은 다른 사람 말을 잘 믿지 않는다. 내가 만나본 한국의 기업 오너들도 쉽게 다른 사람 말 믿지 않는다. 수많은 사기꾼에게 수업료를 지불한 결과이다. 노회한 정객 미테랑이 왜 테시에의 조언을 수용하였을까? 영발 앞에서는 가방끈이 무력하다. 그러나 한두 번 맞혔다고 까불다가 서너 번째는 틀려서 낭패를 볼 수 있는 게 이 바닥의 법칙이기도 하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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