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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막연한' 중대재해처벌법에 '막막한' 중소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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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중소기업계 "규정 모호하다" 지적 잇따라

준비해야 할 지침 많지만 참고할 '표준'도 없어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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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이미지 제공"저희는 하청 건설업체인데, 원청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사고가 나면 원청 사업주가 처벌을 받나요, 아니면 하청 사업주가 처벌을 받나요?"

"법에서 정하고 있는 '안전보건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참고할만한 표준 지침이 있나요?"

"사업주가 법에서 정한 안전보건체계를 모두 갖췄더라도 사고가 나면 처벌을 받아야 하나요?"

지난달 15일 중소기업중앙회가 마련한 '중대재해처벌법' 설명회에서 중소기업주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설명자로 나선 고용노동부 관계자의 답변은 똑 부러진게 없었다.'하청과 원청 모두 처벌 받을 수 있으니 양자가 모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이것만 하면 된다는 방식의 법이 아니기 때문에 표준 지침은 없다. 다만 우수 사례는 전파하겠다' '사람의 실수나 기계 고장이 발생하더라도 재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등의 대답이었다.

1시간이 넘는 설명회에도 불구하고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중소기업주들은 '막연한' 중대재해처벌법에 '막막함'만 더해갔다.

이번주 목요일인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본격 시행된다. 지난해 1월 공포돼 1년의 유예 기간을 거쳐 상시 인원 50인 이상이거나 공사금액이 50억원 이상인 공사현장부터 적용된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오는 2024년 1월에 실시되고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체계를 갖추지 않아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 사고로 6개월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개인을 형사처벌하는 내용이다.

처벌 수위는 사망 사고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 부상 사고나 직업성 질병의 경우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이다. 동시에 법인에 대해서도 10억원 또는 50억원 이하의 벌금이 내려진다.

기존의 산업재해에 대한 처벌에 더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개인까지 처벌하는 법이 시행되는 것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산업재해가 잦기 때문이다. 특히 사고에 의한 사망·부상 사고 비율이 높은 '후진국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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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이미지 제공지난 2019년 기준 노동자 1만명 당 사고 사망자 비율인 '사망사고 만인율'은 0.46으로 나타났다. 같은 시기 미국은 0.37, 일본과 독일은 0.14였으며 영국은 0.04로 한국의 1/10 수준으로 나타났다.

기존 법에 의한 처벌도 솜방망이 수준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013~2017년 산재 사망·상해 사고의 피고인 2932명의 형사처벌 수준을 집계한 결과 징역이나 금고형을 받은 사람은 86명으로, 전체 피고인의 2.93%에 그쳤다. 집행유예(981명, 33.46%)나 벌금형 (1699명, 57.26%)이 대부분이었다. 벌금형의 경우도 개인 평균 420만원, 법인 평균 448만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처벌 수준이 낮다 보니 법에서 정한 각종 안전보건사항을 지키지도 않을뿐더러 지키더라도 형식적으로만 하는 부조리가 이어져 각종 산재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게 정부의 생각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안전보건을 경영의 핵심 요소로 자리잡게 하고 형식적이던 안전보건 규정을 실질적으로 이행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들에게 직접적인 형사 책임을 부담하도록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공포했다.

하지만 인력과 자금이 모자라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좋은 법 취지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선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법에는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재해방지대책 수립, 행정기관 시정명령 사항 이행 계획 수립, 현행법상 의무로 규정된 안전보건관리사항 이행 계획 수립 등을 해야 한다.

이를 다시 세분화하면 안전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 방침 설정, 사업장 특성에 따른 유해·위험요인 파악 및 개선 절차 수립,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시설 장비의 구비 등에 필요한 예산 배정 및 시행, 안전보건관리 책임자 지정·권한 및 예산·평가 기준 마련, 안전보건에 대한 종사자 의견 수렴 절차, 중대산업재해 대처 매뉴얼 작성, 하도급업자에 대한 안전보건 평가 기준 및 관리비용 마련 등이다. 이밖에 안전보건에 대한 교육 계획과 점검 계획도 마련해야 한다.

중소기업주들이 더욱 답답해 하는 대목은 이렇게 많은 항목을 준비하는데 참고할만한 '표준'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의 경우 사업장에서 갖춰야 할 시설, 장비 및 설비, 공정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은 이에 더해 이런 조치들이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시스템(체계)'을 마련하는 것이라는게 정부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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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예를 들어 안전장비 착용이 법적으로 의무화된 사업장인데도 작업자들이 장비를 착용하지 않고 있다면 그 원인을 파악해 조치하라는 것이다. 안전장비를 구입할 예산이 없다면 예산을 마련하고 장비가 일하는데 장애가 된다면 공정을 개선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다른 이유없이 작업자들이 장비 착용을 하지 않는다면 반복적인 교육을 통해 바꿔나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부실의 원인을 찾아 대책을 마련하라는 것인데, 업종이나 사업장마다 그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에 '표준'을 제시하기 힘들다는게 정부의 설명이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다해야 하는' 셈이다.
결국 이 많은 것들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전문가 집단에게 맡겨야 하는데, 중소기업계에서는 '컨설팅을 맡기면 2,3천만원이 든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주들은 '각종 대책을 마련해놔도 사고가 나면 결국 처벌받지 않겠느냐'고 걱정한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계는 고의, 과실이 없을 경우 사업주를 처벌하지 않도록 하는 면책 조항을 넣고 처벌 수위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각종 대책을 마련하는데 필요한 자금 등 정부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중소기업주들의 이같은 우려에 정부는 대책을 꼼꼼히 마련한 사업주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처벌은 받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박화진 고용노동부 차관은 지난 20일 "중대재해가 발생하였더라도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요구하는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였다면 처벌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부는 제조,건설,화학업종 등 취약 사업장 3500곳에 컨설팅을 제공하고, 소규모 사업장은 올해 1조 1천억원의 산재예방지원 예산을 활용해 안전관리를 지원할 방침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사업주들의 참여와 정부의 지원 속에 뿌리를 내릴 경우 산재사고 예방에 적지 않을 기여를 할 전망이다.

그럼에도 산재사고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법의 적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지난 2020년 기준 전체 사고 사망자의 35.4%를 차지하고 있으며 사망사고만인율 역시 1.04로 가장 높다. 하지만 이들 사업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에 따라 노동시민사회계에서는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경영계에서는 일자리 감소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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