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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유부남 상사가 성희롱' 전 직원에게 이메일 발송…명예훼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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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며 2년 전 피해사실 전 직원에 메일로 알려

1, 2심 "비방 목적" 벌금형→대법 "공공이익 관한 것" 파기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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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퇴사자가 다수의 회사 직원들에게 과거 자신이 겪었던 성희롱 피해사례를 알리면서, 그 가해자가 성희롱 담당 업무를 맡고 있으니 문제가 생길 경우 다른 곳으로 신고하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낸 것을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유부남 팀장, 술자리에서 2년차 사원 손잡아…"내옆에 앉아" 등 13회 문자도

판결문에 따르면 에스알에스코리아 주식회사(KFC)에서 근무하던 A씨는 2014년 10월20일 팀장 B씨 및 사원 3명과 술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다른 사원들은 모르는 상태에서 A씨와 B씨 사이 손을 잡는 신체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조사과정에서 A씨는 B씨가 먼저, B씨는 A씨가 먼저 손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B씨는 A씨에게 술자리가 있었던 당일 밤 9시쯤부터 11시30분까지 약 13회에 걸쳐 '오늘 같이 가요' '맥줏집 가면 옆에 앉아요', '집에 데려다줄게요'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A씨는 아무런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A씨는 2016년 전보 발령을 받았고, 회사에 사직의사를 표한 다음 전국 208개 매장 대표 이메일과 본사 소속 직원 80여명의 회사 개인 이메일로 '성희롱 피해사례에 대한 공유 및 당부의 건'이라는 내용의 글을 메일로 보냈다.

A씨는 이 이메일에서 B팀장이 사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테이블 밑으로 자신의 손을 잡으며 성추행을 했으며 문자로도 추가희롱을 했는데도 불이익을 우려해 말하지 못했다고 적었다.

이어 현재 B팀장이 성희롱 고충상담 처리 업무를 맡고 있으므로, 자신과 같은 일을 겪을 경우 담당부서가 아닌 각 팀장이나 고용노동부, 국가인권위 등으로 신고하라는 내용도 덧붙였다.

A씨는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고, 검찰은 A씨를 재판에 넘겼다.

◇1심 재판부 "남자가 관심보일때 하는 행동…문제삼으려면 빨리했어야" 성희롱 피해자에 벌금형

1심 재판부는 "2014년 당시 술자리에서 A씨와 B씨가 손을 잡은 사실, B씨가 당일 A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이같은 행위는 당시 유부남인 B씨로서는 적절하지 않은 행동이었다고 하더라도 관심을 보이는 남자의 행동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설령 A씨가 이 행위가 성추행,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며 "그런데 A씨는 자신이 팀을 이동하는 인사발령을 받은 후에야 이를 문제삼으며 대표이사에게 항의하고 전직원에게 메일을 보냈다"면서 A씨가 B씨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메일을 작성했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면서 "메일을 전송받은 상대방의 범위가 넓어서 피해자의 피해가 더욱 커진 점 등을 고려했다"며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1심 판시에 'B씨의 행위가 관심을 보이는 남자의 행동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는 일부 부적절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A씨에게 비방목적이 있었다고 보고 명예훼손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며 1심의 형량을 유지했다.

◇대법원 "공공의 이익 위해 메일 보낸 것" 무죄취지 파기환송

그러나 대법원은 다르게 판단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3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재판부는 "해당 이메일에서 문제가 되는 명예훼손적 표현은 현재 직장 내 성희롱 고충 상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B씨로부터 과거 성추행을 당하고 성희롱적인 문자메시지를 받았다는 것"이라며 "이러한 문제는 회사조직 자체는 물론이고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의 관한 것으로서 순수한 사적 영역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술자리 당시 A씨와 B씨 사이에 동석한 다른 사원들 몰래 신체 접촉이 있었고, 그 직후 B씨가 A씨에게 일방적으로 옆에 앉으라거나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하면서 답장이나 전화를 채근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술자리에서 B씨가 A씨의 의사에 반해 손을 잡았는지는 다소 불분명하나, 둘 사이가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로 보이지 않는 점, 당시 B씨는 유부남이었고 A씨는 사내연애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그 남자친구가 술자리에 동석했던 점, B씨는 이메일 발송일 다음날 본부장 면담과정에서는 '기억이 안난다'고 말했다가 고소 이후에는 'A씨가 먼저 손을 잡았다'고 주장하면서 그 과정과 횟수 등을 구체적으로 진술한 점 등을 비춰보면, B씨의 주장과 같이 입사한지 채 2년이 안된 사원이 다른 사원들 몰래 15년차인 B씨의 손을 먼저 잡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B씨는 술자리에서 부하직원에게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하고 성희롱적인 내용이 포함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스스로 명예훼손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A씨는 이메일에서 B씨를 비난하거나 모욕하는 등 인신공격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자신의 사례를 공유해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경우 적극적 신고와 처리를 통해 직장 내 성희롱이 근절되기를 바란다는 취지로 동기를 밝히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등에 비춰볼때, A씨로서는 피해사례를 곧바로 알리거나 문제를 삼을 경우 직장내 불이익한 처우와 부정적 반응 등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을 가질 수 있다"며 "A씨가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이를 문제 삼지 않거나 신고하지 않고 있다가 퇴사를 계기로 이메일을 보냈다는 사정을 들어 B씨에 대한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고 추단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면 A씨가 보낸 이메일은 회사조직과 구성원들의 공적인 관심사"라며 "A씨는 자신의 성희롱 피해사례를 공유함으로써 직장 내 성희롱 예방과 피해구제에 도움을 주고자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메일을 보낸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설령 부수적으로 A씨에게 전보인사에 대한 불만 등 다른 사익적 목적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B씨를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범죄의 증명이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며 사건을 2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s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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