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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고용 회복됐다더니…만성실업 최악, 단기일자리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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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4년제 대학을 2015년에 졸업한 장모(34)씨는 알바 외에는 직장을 다닌 적이 없다. 졸업 직후에는 일반직 공무원 시험, 그다음은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으나 계속 떨어졌다. 시험 준비를 그만두고 사기업 취업을 하려 했으나 30세가 훌쩍 넘은 때였다. 장씨는 “몇 차례 도전을 해보긴 했지만, 번번이 불합격하면서 취업을 포기한 상태”라고 했다. 그는 연금 생활자인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아 쓴다.

지난해 일자리가 양적으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했지만, 질적으로는 완전한 회복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분석됐다. 장씨와 같은 만성적인 실업 인구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여기에 단기 일자리 위주로 취업자 수가 늘고, 자영업자의 감소세는 지속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연간 취업자 수는 2727만3000명으로 전년보다 36만9000명 늘며 수치상으로는 ‘고용한파’에서 벗어나는 모양새다. 여기에는 연간 취업자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크게 줄어든(21만9000명 감소) 2020년의 기저효과가 작용했다.



①'쉬었음', 구직단념자 사상 최대



뜯어보면 구직을 아예 포기하는 사람은 계속 늘고 있다. 지난해 ‘쉬었음’ 인구와 ‘구직단념자’가 모두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는 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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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적 실업 인구는 사상 최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24일 통계청과 추경호 의원의 마이크로데이터 분석 등에 따르면 지난해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쉬었음’ 인구는 2만4000명 증가한 239만8000명으로 집계됐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3년 이래 최대 규모다. 쉬었음 인구는 일할 능력이 있고 큰 병을 앓는 것도 아니지만, 취업준비ㆍ가사ㆍ육아 등을 하지 않고 말 그대로 그냥 쉰 사람을 뜻한다. 쉬었음 인구는 오랜 기간 실업 상태로 남거나 취직을 포기한 ‘구직 단념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구직단념자도 전년 대비 2만3000명 늘어난 62만8000명으로 관련 통계를 개편한 2014년이래 최대치를 찍었다. 구직단념자는 취업을 원하고 취업 가능성이 있지만, 지난 1년간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을 뜻한다. 최대 기록을 고쳐 쓴 두 지표는 국내에 만성적 실업 인구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여기에 취업을 희망하지만 지난 4주 내 구직활동이 없었던 ‘잠재구직자’(182만1000명), 최근 4주 이내에 구직 노력을 했지만 당장 일을 시작하긴 어려운 ‘잠재취업가능자’(7만7000명) 역시 관련 통계가 있는 2015년 이후 최대다. 이들은 모두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통계상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는다. 일종의 ‘그림자 실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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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활동 멈춘 ‘잠재구직자’도 역대 최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난해 실업률은 3.7%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3.8%)보다 낮아졌다. 그러나 이들을 포함해 계산한 확장실업률(고용보조지표3)은 13.3%로 2019년(11.8%)보다 되려 크게 올라갔다. 추경호 의원은 “일할 능력을 갖춘 경제주체가 일하지 않으면 그만큼 우리 경제에는 손해”라며 “정부가 재정을 쏟아부은 단기 일자리를 대거 늘려놓고 고용이 회복됐다고 진단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자화자찬”이라고 비판했다.



②36시간 미만 일자리가 늘었다



실제 지난해 취업자 수 증가는 단기 일자리가 많이 늘어난 영향이다. 일주일에 17시간 미만 일한 근로자는 25만1000명(13.2%), 18~35시간은 49만8000명(12.3%)이나 늘었다. 지난해 일시휴직자가 크게 줄었는데(34만7000명), 이들 대부분이 단기 일자리에 취업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고용이 안정적이라 볼 수 있는 36시간 이상 일하는 근로자는 오히려 3만4000명(0.2%) 감소했다.

이처럼 단기 일자리가 늘어나는 추세는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부터 2년째 이어지고 있다. 36시간 미만 일하는 근로자가 전체 취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19.9%에서 지난해 24.6%로 4.7%포인트나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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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일자리 늘고.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시간 관련 추가 취업 가능자’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는 점도 ‘고용의 질’이 나빠지고 있다는 신호다. 이들은 주간 취업 시간이 36시간 미만이면서 추가 취업을 희망하고, 추가 취업이 가능한 사람이다. 취업자로 분류되지만 사실상 구직자여서 ‘불완전 취업자’로 본다. 2019년 75만명에서 2020년 108만8000명으로 급증했다. 지난해엔 107만명으로 전년보다 1.7% 줄었지만, 2019년보다는 42.7% 증가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영업시간 단축 등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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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일하고 싶다”는 주 36시간 미만 근로자 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③자영업자 비중 20% 아래로 떨어질 듯



지난해 연간 자영업자 수는 551만3000명으로 1년 전보다 1만8000명 줄었다. 2017년(568만2000명)부터 4년 연속 감소 추세다. 지난해는 기저효과가 있었음에도 감소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자영업자가 주로 포진한 대면 서비스 업종이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도소매업 취업자는 15만명, 숙박ㆍ음식업은 4만7000명 각각 줄었다. 이 추세라면 전체 취업자에서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20% 아래로 떨어질 전망이다. 2010년 23.5%였던 이 비중은 꾸준히 줄어 지난해 20.2%까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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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감소세는 지속.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구체적으로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가 6만5000명 감소한 반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4만7000명 늘어 대조를 이뤘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가 종업원을 내보내고 ‘나 홀로 사장’이 된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고, 해당 업종의 취업자 수가 줄면 경기 및 실업률 전반에 부정적인 효과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고용시장에 회복 신호가 나타났지만, 아직은 과도기적 일자리에 머무는 사람이 많고, 질적으로는 부족한 면이 많다”며 “고용시장의 구조적 요인, 기업의 인건비 부담, 코로나19 충격에 따른 경기 부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이어 “올해는 지난해 취업자 수 급증에 따른 ‘역기저효과’로 고용 관련 지표가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며 “양질의 일자리는 기업에서 나오는 만큼 민간 투자를 유도하고, 신산업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하는데, 주요 대선 후보들이 이를 간과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세종=손해용·정진호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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