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1호를 막아라…중대재해법 비상 걸린 공공부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왼쪽 세번째)을 비롯한 임원진이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 회의실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감전 사망사고 관련 대책발표에 앞서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호만은 막아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공기업 등 공공부문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으려 정부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이 시행(27일)된 뒤 1호 중대재해가 공공부문에서 나오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을 촉발한 건 공공부문이다. 2018년 12월 공기업인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소에서 일하던 협력업체 소속 김용균씨 사망 사건이 결정타였다. 이 사건 이후 '공공기관 안전 강화 종합대책'을 만들었지만 좀처럼 공공부문 산재 사고 사망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공공기관이 발주하거나 수행한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는 244명이나 된다. 한국전력공사·한국농어촌공사·한국도로공사·한국철도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이 특히 많았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대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건설부문과 공기업을 거느린 국토교통부, 중대재해 감독·수사 부처인 고용노동부 등을 중심으로 거의 매주 대책회의가 열리고 있다. 공공기관장을 불러 다그치고, 감전사고가 발생한 한전 사장에게 안경덕 고용부 장관이 직접 처벌 가능성을 경고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공공부문의 내부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못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공기업인 A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맞춰 안전관리 전담 부서를 신설하면서 30여 명가량의 담당 인원을 채우는 데 진통을 겪었다. 부서 특성상 교대로 24시간 대기를 해야 해 업무 강도가 높은 데다, 만약 사고라도 터지면 문책 1순위에 오를 수 있어서다. 지원자가 없다시피 했다. 결국 입사 1~2년 차 신입 사원으로 부서를 꾸려야 했다. 애꿎은 사회 초년생에 총알받이 역할을 떠넘긴 셈이다.

중앙일보

10일 대전 대덕구 읍내동 한국철도공사 대전차량사업소에서 관계자들이 열차 특별점검을 하고 있다. 한국철도공사는 지난 5일 KTX 영동터널에서 발생한 경부선 KTX 열차 탈선 사고와 유사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차량, 시설 등 철도 전 분야에 대해 특별점검을 진행한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보다 못한 고용부가 공공부문 CEO를 직접 교육하려 나섰다. 고용부 산하 국책특수목적대학인 한국기술교육대에 '산업안전정책 최고경영자과정'이 오는 3월 개설된다. 정부 부처의 장관이 직접 강사로 나선다. 안경덕 고용부 장관이 3월 개강과 동시에 중대재해 예방과 수사·처벌 범위 등을 강의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강사진 합류를 저울 중이다. 여기에 고용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 국토부 건설 담당, 전 소방방재청장, 전 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 지청장급 검사, 법무법인 변호사, 산업안전 관련 학회장, 전 감사원 감사위원, 국회의원 등 산업안전과 관련된 고위급 인사가 강사진으로 총출동한다. 대기업 CEO나 CSO(안전보건 담당 임원)에게도 수강 문호를 연다지만 타깃은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장, 공공기관 기관장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올해 9월에는 한국기술교육대에 산업안전공학 대학원 과정을 연다. 석사 20명, 박사 5명 정도를 학기마다 배출할 방침이다.

이런 정부의 다그치기와 교육이란 양동작전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민간과 마찬가지로 공공부문에서도 현장의 혼선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최근 하청업체 소속 작업자가 전신주에서 전기작업을 하다 감전사한 한국전력만 해도 혼란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전기 관련 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사이에서 한전의 입지가 모호해서다. 한전은 지난 9일 전력선을 직접 만져가며 하는 작업(직접 활선)을 퇴출하는 등 '안전사고 근절을 위한 특별대책'을 내놨다.

문제는 한전은 전기공사법에 따라 직접 공사를 하지 못하게 돼 있다는 점이다. 하청을 맡길 수밖에 없다. 직접 사업을 집행하지도 못하는 기관이 사업 전문성을 가지고 관리해야 하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지는 꼴이다. 여기에다 허가제였던 전기공사업이 신고제로 바뀌면서 영세업체가 난립하고 있다. 한전이 걸러낸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 공공요금 동결 같은 정부발(發) 조치로 적자 공기업이 늘고 있는데, 비용 절감 등 경영 효율화 압박은 더 거세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기관이 안전관리 투자를 제대로 늘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박성주 기획재정부 공공안전정책팀장은 “높은 현장 근무 강도와 사고 발생 시 인사상 불이익 위험 때문에 공공기관에서 안전부서 근무를 기피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혜택 방안을 마련해 공공기관 안전관리지침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공기관 평가, 공공 발주 계약 등에 있어서도 안전관리 수준에 따라 이익 또는 불이익이 가도록 제도를 적용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조현숙 기자 wolsu@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