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30 (토)

[일사일언] 목욕탕에 숨고 싶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바뀐 가장 큰 변화는 일상적으로 했던 것들을 쉽게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극장에 가고 싶어도 고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만나고 싶은 이와의 식사 약속에도 제약이 생겼다. 내게는 그중 하나가 목욕탕이다. 한때 매일 갔던 적도 있으니 정말 큰 변화다.

가끔씩 펼쳐보게 되는 책 중에 ‘인간 증발(책세상)’이 있다. 매년 사회에서 사라지는 일본인들에 대한 르포인데 그 책을 최근에 다시 읽었다. 시험 실패, 경제적 어려움, 주위의 멸시, 신분 차별 등 다양한 이유로 사는 곳을 등지는 사람들과 그들을 아무도 모르게 이사시켜 주는 사람들, 지도에서조차 지워진 버려진 동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고달픈 현실에서 아예 증발해 버리는 이들의 사연은 목욕탕 속에 들어가 뜨거운 수증기 속에 존재를 숨기고 현실을 잊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현실로 돌아오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다.

나도 목욕탕에서 혼자만의 익명성을 누리곤 했다. 나와 연결되어 있는 고리들을 잊고 탕 속에 나를 맡겼다가 일상으로 안전하게 돌아오는 경험. 그래서 오전에 가면 새로운 날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고 저녁에 가면 하루를 마무리하는 절차가 되기도 했다.

생일처럼 일 년에 하루만 있는 날은 기념하고 챙기게 된다. 마음먹었을 때 갈 수 있었던 곳과 할 수 있었던 일에 갑자기 제약이 생기자 처음에는 아쉬웠다. 그런데 이제 어떤 것은 없어도 괜찮고 심지어 편해지기도 한다. 익숙한 습관이 사라지고 새로운 습관이 자리 잡는다.

하지만 나는 탕 속에 다시 들어가고 싶다. 몸이 노곤할 때면 목욕탕에 가던 시간이 더 그립다. 일 년 내내 극장에 관객들이 영화를 보러 오던 풍경도 너무 그립다. 곧 회복되고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기대해 마지 않는 그런 일상으로의 초대를 소망한다.

[김재민 NEW 영화사업부 대표]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