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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중대재해법 눈앞…혼돈의 유통업계 "나 떨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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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신설에 임원 선임까지…'준비'는 마쳤다 구체적 '지침' 없는 '책임' 강조에 불안감 고조 [비즈니스워치] 이현석 기자 tryon@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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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이 내일부터 시행된다. 산업계는 전담 부서 신설 등 충격 최소화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유통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는 사업장 내 안전사고를 넘어 일반 소비재에서 발생한 사고도 중대재해법 처벌 대상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유통업계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유통·판매 등 전 과정의 시스템을 보완하고 있다.

불안감도 나타난다. 중대재해법이 부여하는 큰 책임에 반해 '책무'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배달플랫폼업계 등 특수고용노동자(특고)가 많은 업계는 이미 중대재해법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각에서는 법 시행 후 혼란이 이어질 뿐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섣부른 시행에 앞서 구체적 지침을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전부서 신설하고 임원 영입하고

정부는 오는 27일부터 중대재해법을 시행한다. 중대재해법은 사업 또는 사업장, 공중이용시설 및 공중교통수단을 운영하거나 인체에 해로운 원료 제조물 취급 시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에 대한 처벌 등을 규정한 법이다.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오는 27일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유통업계는 일제히 대비책 마련에 나섰다. 롯데쇼핑은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에게 컨설팅을 받았다. 이에 따라 백화점·마트·이커머스 등 안전 부서를 대표 전담조직으로 승격시켰다. 신세계백화점도 안전조직을 임원급 조직으로 격상했다. 현대백화점은 중대재해법 요구 기준 대비 2배 이상 많은 인력을 전 점포에 채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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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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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도 예외는 아니다. 이마트는 기존 안전관리체계를 강화했다. 안전관리팀과 품질관리팀을 모아 임원급 안전품질담당 조직을 신설했다. 홈플러스 역시 안전관리팀과 현장대응팀을 통합한 안전보건관리본부를 대표 직속으로 배치했다. 각 부서 역량을 통합하고 인력·예산을 보다 수월하게 투입하기 위한 조치다. 이를 통해 사고에 보다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겠다는 취지다.

이커머스는 물류 중심 안전관리체계를 짰다. 특히 직매입 중심의 쿠팡·마켓컬리가 적극적이다. 쿠팡은 최초의 안전관리자 출신 삼성 임원 유인종 부사장을 영입했다. 안전보건감사, 법무담당 부사장 등의 인력도 보완했다. 마켓컬리는 지난해 말 안전보건환경팀을 신설했다. SSG닷컴은 ESG담당을 신설하고 품질관리팀·안전관리팀을 산하에 뒀다. 이 외에도 아모레퍼시픽 등 패션·뷰티업계 기업도 중대재해법 대비를 위한 부서 신설 등 조치를 취했다.

배달업계 "쉽지 않네"…어려움 겪는 이유

반면 배달업계는 중대재해법 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대재해법은 보호 대상을 보급·용역·위탁 등 계약 형식과 관계없이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정의한다. 따라서 택배배송원·배달라이다 등 특고에게도 중대재해법이 적용된다. 다만 적용 대상 사업체는 5인 이상 '상시 근로자'가 있는 경우로만 한정된다. 4인 미만의 배달대행사가 중대재해법 사각지대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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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업계는 중대재해법 기준이 모호한 경우가 많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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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배달의민족·요기요·쿠팡이츠 등 배달플랫폼에 직접 고용된 라이더는 중대재해법을 적용받는다. 메쉬코리아·바로고 등 대규모 배달대행플랫폼도 마찬가지다. 반면 지역 소규모 배달대행사는 상황이 다르다. 이들은 5인 미만의 상시 근로자가 주문을 중개해 주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라이더가 사고를 당하더라도 사업주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대형 배달플랫폼·대행사 소속 라이더에게도 중대재해법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달 주문 다수는 배달플랫폼-배달대행사-라이더의 수직적 프로세스로 처리된다. 때문에 안전·보건 의무의 대상을 확실히 정하기 어렵다. 사고가 나더라도 사고 경위 파악에서 책임을 묻는 과정 전반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라이더와 플랫폼 사이의 갈등이 빈발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모호한 법' 비판 많아…실효성 챙겨야

업계에서는 중대재해법 자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책무를 정하지 않는 반면 책임만 극대화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중대재해법은 '경영책임자'를 사업을 대표·총괄하는 사람 또는 안전보건 업무 담당자로 정한다. 다만 사고 시 이들 중 누가 처벌받는지에 대한 기준은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다. 때문에 산업 현장은 중대재해법을 '실체 없는 두려움'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조직 신설 이상의 실질적 조치가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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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17일 서울 HDC현대산업개발 용산 사옥에서 광주 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와 관련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정 회장은 이날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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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중대재해법상 책임의 범위는 사실상 '무한'이다. 중대재해법상 적용 대상 사고 유형과 처벌 내용 관련 기준은 명확하다. 반면 현장의 지침은 모호하다. △구체적 지침의 수립·이행 △관리상 지침 마련 등 포괄적 규정만 있을 뿐이다. 중대재해법상 사고 발생 시 책임을 묻기 위한 법적 다툼에 주력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구조다. 더불어 중대재해법에는 사업장 쪼개기 등 '꼼수'를 방지할 수 있는 규정도 없다. 법이 유명무실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때문에 섣부른 법 시행보다 보완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현행 중대재해법이 소송 등 사회적·법적 비용 가중을 부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나아가 이를 감당하기 위한 산업 현장의 업무 과부하 등도 우려된다는 의견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화정 아이파크 사고 등을 계기로 중대재해 예방에 대한 기업·사회적 공감대가 높아진 상태다. 다만 지금의 중대재해법은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내용이 많아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하다"며 "불신이 없도록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지침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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