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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송두율 칼럼]대선을 멀리서 지켜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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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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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통령선거에 나의 귀중한 한 표를 행사했던 때는 박정희와 윤보선이 출마했던 1963년 10월의 5대 대통령선거였다. 당시 나는 혁명 주체세력으로서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의 한 사람이던 예비역 장성의 처남 가정교사를 했다. 그는 선거전에서 박정희 후보의 남로당 전력을 문제 삼아 총공세를 폈던 윤보선 후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나에게 물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근소한 표차로 결국 박 후보가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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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대선과 관련해서 가장 어이없고 실망스럽던 경험은 너무나 많은 희생을 치르고 쟁취한 1987년 말 직접선거로 치러진 대선에 김영삼과 김대중이 함께 뛰어들면서 노태우가 당선된 일이다. 무슨 셈법으로 김영삼과 김대중이 후보 단일화를 끝까지 거부하고 고집을 부렸는지 지금도 나에게는 수수께끼다. 김영삼 후보로 우선 단일화하고 차기에 김대중 후보가 나서면 민주화의 기틀이 더욱 공고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당시 확신했다.

그 후로 2002년 노무현 후보가 예상을 뒤집고 승리한 기억을 빼놓고는 별다른 감흥을 주는 대선은 없었다. 그런데 40여일 뒤에 치러질 이번 대선을 관심 속에서 지켜보게 된다. 여야 두 후보를 둘러싼 거의 관음증 수준에 머물고 있는 언론매체의 보도나 논평에는 곧 물리게 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민주적인 공론장의 형성에서 대선의 의미를 확인할 기회가 앞으로 별로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정치적 소통행위의 마지막 단계라고 볼 수 있는 선거전은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당이나 후보자가 유권자들에게 정책과 인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들로부터 권력의 위임을 받아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행사다. 그러나 선거전이 종종 잠재적인 사회적 갈등을 일거에 분출시켜 경쟁자를 음해하거나 협박하고 심지어는 테러나 암살로 제거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이 주로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수시로 발생하지만, 1년 전에 발생한 워싱턴의 의사당 점령사태처럼 민주주의가 성숙한 사회라고 할지라도 예외는 아니다.

정책보단 ‘정치상표’ 유통에 초점

또 선거전의 내용이 빈약하고 비정치적이어서 지루해진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관심이나 참여를 끌어내지 못한다. 이번 대선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후보자에 대한 높은 비호감도 이런 현상에 속한다. 이는 단순히 후보의 도덕성과 관련된 문제만은 아니다. 빠른 속도로 진행된 압축적 근대화에 따른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정치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정당 구조와 정치인의 수준과 능력 때문이기도 하다.

페미니즘과 세대 문제와 같은 중요한 문제도 이것이 득표에 유리한가 아니면 불리한가를 두고 표 계산부터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선거전이다. 예를 들면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단지 일곱 글자로 압축된 문자메시지로 전달되는 정책을 어떻게 유권자들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20~30대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한 표 계산이기에 해당 부처를 폐지하는 이유와 함께 정책대안을 주제로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바로 여기에 선거전의 핵심이 놓여 있다.

정책적 내용보다는 우선 메시지가 유권자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어야 하는 선거전이라는 특별한 정치적 소통행위가 빚어내는 이러한 현상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유럽에서는 전통적인 대중정당의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의 비율이 계속 낮아지고 부동층은 반대로 높아지고 있다. 이런 속에서 치러지는 선거전에서는 외국인 혐오나 페미니즘 반대와 같은 사회적으로 아주 민감한 주제에 주저함 없이 자극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대중영합주의적인 극우정당이 대체로 약진하게 된다.

대충 유권자의 10% 정도가 강성 지지층인 독일 선거에서는 이른바 ‘산토끼’를 잡기 위해 정당과 후보들이 열심히 뛰어야 한다. 그러나 지역과 세대에 기반을 둔 강성 지지층의 비율이 이보다는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에서는 반대로 ‘집토끼’를 먼저 단속하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선거전이 될 수밖에 없다.

19세기 중반에 들어서야 대부분 선거와 관련된 공화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던 동양과 달리 공화정 로마에서는, 비록 시민권을 가진 성인 남성만 참여할 수 있었지만, 선거를 전제한 전략에 대한 깊은 논의들이 있었다. 로마의 집정관을 지낸 정치인이자 당대 최고의 사상가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BC 106~43)의 동생이자 그의 강력한 조력자였던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BC 102~43)가 형에게 보낸 서한 ‘성공적인 선거전’이 이의 대표적인 예다.

대중적인 지지를 먼저 확보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약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유명 인사를 선거전에 동원해야 하고, 정치적 내용보다는 아름다운 언어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선거전의 구체적인 전략들을 쭉 열거하고 있다. 오늘날의 선거전에서도 강조되고 있는 여론의 총동원, 탈객관화, 연출, 감정에 호소, 후보에 초점 두기, 정치적 어젠다의 관리, 상대방 흠집 내기 등 선거전략의 거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어 선거전의 교과서라고도 불린다.

‘여론은 이름과 얼굴을 사는 것이지 당의 정책을 사는 것이 아니다. 공직에 도전하는 후보는 상품처럼 거래되어야 한다’고 리처드 닉슨은 이미 1950년대 중반에 주장했다. 이는 ‘정치 마케팅’으로서 선거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과제를 지적한 것이다. 정치를 상품처럼 이해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정치상표’를 만들고 이를 광고하고 유통해 많은 소비자가 이 상품을 구매하게 하는 기업 경영전략에 기반을 둔 정치적 소통이론이었다.

‘평화체제’ 정치상품 왜 안 보일까

그렇다면 유권자는 정말 선거전이라는 시장에서 정치라는 물건을 구매하는 단순한 소비자에 지나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오게 된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원자화된 생활세계에 갇힌 개인이 정치적인 것의 내용을 능동적으로, 또 전체적으로 이해하기는 점점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어떤 식으로든 선택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때 각종의 여론 매체는 현대인이 갖는 정보 선택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기능을 한다.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전통 매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인들에게 수동적인 정보 소비자의 위치에서 벗어날 길을 열어준 것이 바로 디지털 미디어다. 물론 디지털 미디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에 참여한다고 해서 모두가 곧 적극 정치적 행위나 행동까지 나서지 않기 때문에 이른바 ‘슬렉티비스트’(게으름뱅이)라는 속어도 생겼다.

전통적인 매체보다 소셜미디어의 플랫폼이 정치적인 의사소통에서 유권자에게 더 넓은 운동장을 제공하지만 이의 한계 역시 분명하다. 가령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에 올리는 정치적인 정보의 내용이 다양하고 이에 따라 토론이나 논쟁이 활성화되기보다는 똑같은 내용을 수없이 반복하는 확증편향과 자기만족의 장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전통적인 매체는 가령 ‘가짜뉴스’에 법적 책임을 지지만 소셜미디어의 플랫폼에 실린 가짜뉴스의 법적 책임소재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대선전에 빈번히 등장하는 극렬한 혐오발언이나 가짜뉴스를 단순히 선거전에 있는 필요악 정도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는 민주주의의 앞날을 어둡게 할 뿐이다.

코로나19로 말미암은 사회 전반에 걸친 충격과 이에 따른 고통으로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심화하고 있는 현상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어느 사회에도 지금 나타나고 있다. 포르투갈에서도 이번 토요일에 총선을 치른다. 그동안 사회당이 이끈 소수당 정부를 용인했던 좌파연합과 공산당이 금년도 예산안 통과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긴축재정 기조를 유지하려는 사회당과 코로나 재난 극복을 위해서 재정지출을 더 늘려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이 접점을 찾지 못해 결국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의 길을 택했다.

지구상의 다른 국가와 달리 한반도가 지금 숙명적으로 안고 갈 수밖에 없는 특이한 과제가 있다. 바로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 문제다. 미·중 간의 격돌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이 과제는 한반도를 더욱더 무겁게 짓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체제! 이는 부동산정책은 말할 것도 없지만, 모발이식 건강보험 적용 문제만큼도 관심을 끌지 못하는 정치적 상품일 수도 있다. 서캐 잡듯이 뒤진 100여개의 대선 정책 공약 대신에 이 네 글자의 무게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 아니길 바라며, 멀리서 대선을 지켜본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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