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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중대재해법 D-1...잇따른 대형사고에 산업수도 울산 '살얼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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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새 대형 화재 2건, 근로자 사망사고 1건 발생
울산서 7년간 사망 27, 부상 59명 "전국 최다 사고"
중대재해법 처벌 1호 도시 될라 기업, 지자체 '긍긍'
한국일보

현대중공업 노조원들이 25일 울산조선소에서 크레인 작업 중 숨진 동료를 추모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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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 50명 이상의 사업장에서 사망 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가 1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한 중대재해처벌법. 해당 법의 27일 시행을 앞두고 전국의 산업 단지가 ‘초긴장 모드’로 전환한 가운데, 울산이 떨고 있다. 전국 산단 가운데 가장 많은 사고가 난 지역으로, 또 사고가 날 경우 ‘산업수도 울산’ 명성에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울산에서는 최근 7년간 44건의 사고가 발생해 27명이 숨지고 59명이 다쳤다.

25일 울산지역 재계에 따르면 각 기업의 분위기는 살얼음판이다. 사고 근절을 위한 법이 시행되지만, 현실적으로 사고 가능성을 100% 없애기가 쉽지 않고, 사고가 난다면 확률적으로 울산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끼임 사고로 1명의 사망자를 낸 북구 소재한 대기업 관계자는 “3차, 4차 협력업체에서 발생하는 사고도 원청에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 굉장히 막막한 상황이다. 일단 ‘시범 케이스’가 될 수 있는 처벌 1호는 피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있다”며 “이를 위해 협력사에 안전관리 종합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안전사고 예방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2년 연속 가스 유출 사고가 난 온산공단 내 한 기업 관계자는 “적용 범위가 모호해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올해 또 사고가 나면 회사 문을 닫는다는 생각으로 고위험 공정에 대한 긴급 안전 진단을 하고, 전 사업장에서의 사고 방지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시도 사고 발생 시 시장이 책임을 질 수 있는 중대시민재해 전담 인력 증원뿐만 아니라, 관내 기업들의 산업재해 방지를 지원하기 위한 전담팀(산업안전보건담당) 신설 등 여느 지자체와 차별화된 행보에 나섰다. 울산시 관계자는 “새해 들어 잇따라 큰 사고가 발생해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며 “기업들이 위험요소를 미리 파악하고 그에 따른 실효성 있는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시가 여느 지자체와 달리 기업들의 사고에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데는 관내 기업의 중대재해가 경영 활동을 위축시켜 세수 감소는 물론,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도시 이미지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지난 24일 울산시 남구 효성티앤씨 공장 화재 현장에서 헬기가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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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이달 들어 울산에서는 대형 화재와 인명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오점을 남기고 있다. 12일 SK에너지 울산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8시간여 만에 진화됐고, 23일 오후엔 국내 최대 나일론 원사 생산업체인 효성티앤씨 울산공장에서 불이 나 완전 진화에 무려 22시간이 걸렸다. 또 그 이튿날 오후 5시 25분에는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가공 소조립 공장에서 근로자 A(51)씨가 크레인 작업 중 숨지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현대중공업 노조 관계자는 “최근 크레인 오작동으로 수차례 수리와 고장이 반복됐다”며 “위험한 상황이 여러 번 발생했는데도 사측이 묵인했다”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조선업재해예방센터와 합동으로 현장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전면 또는 부분 작업중지 명령이 내려질 예정이다.

특히 이날 사고는 현대중공업이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오는 2월 6일까지 특별 안전점검을 하겠다고 밝히자마자 발생한 것이어서 내부에서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는 “올해를 중대재해 없는 원년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참담하다”며 “모든 안전조치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는 지난해에도 추락이나 끼임 등의 사고로 근로자 4명이 숨졌다. 앞서 2019년부터 2020년 사이에도 중대재해 7건이 발생했고, 이 가운데 5건에 대해서는 대표이사 등 16명이 기소돼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만큼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 처벌 1호로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가 유력하다는 관측까지 나오는 이유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 근로자가 50명 이상인 사업이나 사업장에서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에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것이 골자다. 50인 미만 기업에는 2024년부터 적용된다.


울산= 박은경 기자 chang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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