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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사고 공포' 이겨낸 루지 프리쉐 "부모님이 다치지만 말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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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월드컵 8차서 중상…'트라우마' 이겨내고 트랙 복귀

연합뉴스

지난해 1월 프리쉐의 월드컵 경기 장면
[EPA=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유지호 안홍석 기자 = "부모님은 베이징 가서 다치지만 말라고 하세요."

한국 여자 루지 국가대표 아일린 프리쉐(30·경기도청)는 열흘여 앞으로 다가온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할 뻔했다.

독일 출신의 프리쉐는 2019년 2월 열린 2018-2019시즌 월드컵 8차 대회에서 트랙 벽과 충돌해 썰매가 뒤집히는 큰 사고를 당했다.

양 손뼈, 허리뼈와 꼬리뼈까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수술대에 오른 프리쉐는 수술과 재활을 마친 뒤에도 온몸을 찌르는 통증과 싸워야 했다.

프리쉐는 2020-2021시즌 중에야 트랙으로 복귀했다. 온전히 한 시즌을 다 소화한 것은 부상 뒤 이번 2021-2022시즌이 처음이다.

루지는 판 모양의 썰매 하나에 의지해 시속 150㎞에 육박하는 속도로 얼음 트랙을 내려오는 종목이다.

찰나의 실수가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때는 훈련 중이던 남자 루지 선수가 트랙 밖으로 튕겨나가 기둥과 충돌한 뒤 숨지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쾌감과 공포는 스피드의 양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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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월드컵 경기 장면
[EPA=연합뉴스]


프리쉐는 한때 은퇴했다가 루지의 짜릿함을 잊지 못해 한국의 귀화 제의를 받아들이며 트랙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2018 평창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 역대 최고인 8위라는 호성적을 냈다.

이번에는 대형 사고의 공포감을 이겨내고 다시 올림픽 트랙의 출발선에 선다. 올 시즌 월드컵에서 33위를 하며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원정 올림픽이어서 좋은 성적을 내기가 쉽지 않아 보이지만, 프리쉐는 한바탕 시원하게 옌칭 슬라이딩센터 트랙을 내달려보려 한다.

프리쉐는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평창올림픽 때도 앞선 월드컵에서 부진했지만, 정작 실전에선 좋은 성적을 냈다"면서 "15위 안에 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다음은 프리쉐와 일문일답.

-- 평창 대회 전 귀화한 다른 종목 선수 대부분이 모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에 남은 이유는.

▲ 한국은 내 삶의 일부가 됐다. 내가 한국인이 됐다고 느끼고, 나 자신을 '세계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내가 올림픽에 나가 내가 사랑하는 스포츠를 할 수 있게 해줬다. 한국이 나에게 준 기회에 정말 감사하다.

이 나라를 많이 사랑한다. 서울에 살면서 한국어를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내 한국어가 나아졌다며 칭찬한다. 한국어를 더 잘하고 싶다.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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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올림픽에서 프리쉐의 경기 장면
[EPA=연합뉴스]


-- 그동안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좋았던 점과 힘들었던 점은.

▲ 한국은 독일보다 모든 게 빠르고 편리하다. 난 이런 라이프 스타일이 좋다. 음식도 문제없다. 어디서나 외국인도 좋아할 만한 음식점을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 가장 좋았던 일 중 하나가 집에서 가까운 독일식 빵집을 발견한 것이다. 요즘에는 불고기를 가장 즐겨 먹는다. 매운 음식은 여전히 잘 못 먹는다. 혀를 단련하려고 노력했지만, 아직 어렵다.

한국어를 배우려고 K팝과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본다. 비행기를 타면 내가 과거에 본 영화를 한국어 더빙된 버전으로 본다.

한국에서는 한국말을 좀 하면, 누구와도 섞여 지낼 수 있다. 문화 차이로 인한 문제도 겪어보지 못했다. 팀원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늘 쉬웠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나와 동료들 모두 잘 해왔다.

아! 문화적 충격을 받은 적이 한 번 있다. 식탁 위 '수프'에 산 낙지를 넣어 먹는 것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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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린 프리쉐
[대한루지경기연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3년 전 큰 사고를 당했다. 현재 몸 상태는 어떤가.

▲ 두 손뼈와 허리뼈, 꼬리뼈를 다쳤다. 재활이 정말 힘들었다. 2년 동안 쿠션 없이는 앉지도 못했다. 루지에서 필수인 단거리 달리기, 점프 등 파워 트레이닝을 전혀 할 수 없었다. 주변에서 물리치료를 받을 수 있는 좋은 곳을 소개해줬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모든 분이 나를 도와줬다. 몸은 예전 같지 않지만, 마음은 아주 가벼워졌다.

-- 정신적 충격에서 회복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 아닌가. 트랙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

▲ 선수 생활을 하면서 많은 충돌 사고를 겪었기에 루지를 타는 것 자체는 두렵지 않다. 사고가 벌어진 트랙만 두려울 뿐이다. (사고에 따른) 두려움은 극복했다. 이제 모든 게 잘 되리라 믿는다. 다만, 은퇴하고 나서 일반인으로서 살아갈 때 (사고에 따른 부상으로) 생활에 어려움이 있을까 걱정이다.

--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 올림픽을 맞는 소감은.

▲ 평창 때와 비교해 기대치는 낮다. 4년 전에는 올림픽 트랙에서 많은 훈련을 했고, 그 트랙에 적응하는 데만 힘을 쏟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월드컵에 출전하며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야 했다. 한편으로는 더 나아진 점도 있다. 4년 전보다 경험이 풍부해졌다.

15위 안에 드는 게 목표다.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힘들 것 같지만, 올해 가장 중요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도록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다. 평창 때도 월드컵에서는 부진했지만, 평창에서는 좋은 성적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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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린 프리쉐
[대한루지경기연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한때 루지를 그만뒀다가 한국에 귀화하면서 트랙으로 돌아왔다. 만약 20대 초반에 그대로 은퇴했다면, 지금 뭘 하고 있을지 상상해봤나.

▲ 대학에 가서 신경과학에 푹 빠져있을 것이다. 심리학일 수도 있다. 내가 가장 열정을 느끼는 것은 루지다. 그래서 한국에서 기회를 잡았다.

-- 코로나19로 독일 방문이 쉽지 않을 텐데 마지막으로 고향에 간 것은 언제인가. 부모님은 어떤 덕담을 해주셨나.

▲ 지난 시즌을 마치고 2021년 초에 방문한 게 마지막이다. 그런데 난 고향이 별로 그립지 않다. 그냥 가족들을 서울로 부른다. 이제 서울이 내 집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고향에 돌아가면, 부모님이 날 얼마나 보고 싶어 하셨는지 느껴진다.

부모님은 3년 전 사고를 당한 뒤 정말 무서워한다. 베이징에 가서는 그저 다치지만 말라고 하셨다.

a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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