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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폭격기’ 별명 남기고 잠든 대기자…야구를 사랑한 신명철 기자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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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무등산 폭격기’. 더 이상의 사족이나 설명이 필요 없다. 이 한마디면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다. 어쩌면 KBO 40년 역사에서 가장 멋지고도 직관적인 별명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선동열을 상징하는 이 별명을 만든 주인공. 프로야구 초창기 민완 스포츠 기자로 왕성한 활동을 펼친 신명철 기자가 26일 69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지난해 5월 담도암이 발견된 뒤 투병을 시작하면서 꾸준한 운동 등으로 건강을 회복하는 듯했으나 최근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면서 결국 이날 영면했다.

고인은 ‘걸어다니는 스포츠 백과사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스포츠 전반에 걸쳐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을 자랑했다. 수십 년도 지난 과거의 일을 마치 어제 일처럼 연도와 날짜까지 줄줄이 연결하는 놀라운 기억력을 발휘했고, 대본이 없어도 전화 연결만 되면 라디오를 통해 곧바로 생생한 스포츠 소식을 전하는 뛰어난 언변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1979년 서울신문사에 입사해 ‘주간스포츠’에서 스포츠기자로 첫발을 내디딘 그는 입사 1년 만에 해직기자가 되는 아픔을 겪었다. 1980년부터 1981년까지 ㈜농심 홍보부에서 근무를 하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KBO 홍보실 직원으로 스카우트돼 다시 야구와 인연을 맺었다. 프로야구가 빠르게 국민스포츠로 안착하는 데 기여를 한 그는 1985년 6월에 스포츠전문지 스포츠서울이 창간되자 이직을 해 본격적으로 스포츠 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특히 야구 명문인 신일고와 연세대 출신으로 야구에 대한 애정이 컸다. 공교롭게도 그해 당대 최고 투수로 꼽히던 선동열이 프로에 입단했다. 선동열은 프로와 실업야구의 스카우트 파동 속에 1985년 7월 2일에 해태 유니폼을 입고 뒤늦게 KBO 데뷔전을 치렀고, 이때 고인은 ‘무등산 폭격기’라는 기막힌 별명을 붙이게 된다.

고인은 생전에 “무등산은 광주와 호남을 상징하는 산이고, 선동열의 투구폼을 정면에서 보면 낮은 자세에서 상체를 쭉 끌고 나와 던지는 게 폭격기가 이륙하는 장면과 흡사해 그런 별명을 붙이게 됐다”고 유래를 설명하곤 했다.

이 별명은 선동열의 강렬한 투구를 압축하는 의미까지 더해져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훗날 ‘국보투수’로 올라선 선동열 전 감독은 “나에게 많은 별명이 있지만 가장 좋아하는 별명이 무등산 폭격기”라며 항상 고인에 대해 고마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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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2000년대 들어서 스포츠서울 편집국장, 오마이뉴스와 스포츠 전문잡지인 스포츠2.0 편집장을 역임했다. 2016년부터는 스포티비뉴스에서 편집국장과 편집위원으로서 스포츠 기자의 마음가짐과 취재법, 기사 작성의 기본 등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가르침을 통해 후배 기자들의 성장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KBO 출범부터 야구 해설위원으로서 함께 그라운드를 누벼온 허구연 위원은 “신명철 기자는 기자로서 이름도 날렸지만 정말로 야구를 사랑한 사람이었다”면서 “온화한 성품에 쾌활하고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신명철 기자가 비판 기사를 쓰면 누구나 수긍했을 정도다. 그만큼 좋은 기자였다. 이렇게 빨리 떠나시니 황망하기 그지없다”고 고인을 추억했다.

이제 KBO 탄생을 지켜보고 필명을 떨쳤던 프로야구 초창기 야구 대기자들도 하나둘씩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이종남 기자가 2006년 53세의 이른 나이에 눈을 감았고, 천일평 기자도 지난해 초 7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여기에 신명철 기자도 갑자기 작별을 고하자 올해로 프로야구 40주년을 맞이하는 야구계도 아쉬워하고 있다.

허 위원은 “프로야구 초창기엔 기자들이 정말 고생 많이 했다. 마감시간에 쫓겨 팩스로 기사로 보내는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자생활을 했다. 프로야구가 빨리 국민스포츠로 뿌리 내릴 수 있었던 데에는 그분들의 노고가 컸다”면서 “처음으로 신문에 땅표(기록표)를 만들어 넣었던 이종남 기자, 야구선수 출신이었던 천일평 기자에 이어 이번에 신명철 기자까지 초창기 프로야구의 틀을 만들었던 멤버들이 이렇게 한 분 두 분 떠나시니 가슴이 먹먹하다. 남아 있는 내가 야구를 위해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하는 사명감이 든다”며 착잡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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