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1호는 절대 안 돼"...중대재해법 첫날, 살얼음판 걷는 산업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건설사 법 시행 맞춰 공사중단, 길게는 11일 휴가
경쟁사 동향 살피며 '눈치 게임'도
한국일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날인 27일 서울의 한 공사장에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날부터 산업재해로 사망자가 1명 이상 생기거나 전치 6개월 이상 부상자가 2명 이상 나오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처벌한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근로자가 사망하거나 다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27일 시행됐다. 1년 전 법이 제정되기 전부터 온갖 우려를 쏟아냈던 산업계에서는 이날 초긴장 속에 다른 기업의 동향과 여론을 살피는 '눈치 게임'을 시작했다.

법이 시행된 이상 지켜야 하지만 불확실성이 적지 않은 만큼 어떻게든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최근 '광주 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로 기업의 안전사고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절정에 달한 것도 큰 부담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절대로, 어떻게든 시범 케이스는 되지 말아야 해 가슴을 졸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건설 현장은 열흘 넘게 '셧다운'


건설업계에 따르면 상당수 건설사들은 법 시행에 맞춰 아예 현장 문을 걸어 잠갔다.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2위인 현대건설은 이날을 '현장 환경의 날'로 정해 전국 모든 현장의 공사를 중단했고, 28일도 공사를 멈춘 채 임직원과 협력사 직원이 참여하는 안전 워크숍을 진행한다. 연휴가 끝난 다음 달 3, 4일도 휴무일로 지정해 장장 11일 동안 휴지기를 갖는다. 한 건설사 임원은 "이미 1년 전부터 중대재해법 대비를 철저히 하긴 했지만 최근 광주 사고도 나고 해서 건설업계가 더 조심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국일보

27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건설 현장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닫힌 문 사이로 '당신은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보인다. 김동욱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생산 근로자 비율이 높은 자동차업계에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간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크고 작은 산업재해는 매년 이어졌기 때문이다. 2020년에는 쌍용자동차 프레스공장에서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설비에 들어가 작업하던 근로자 한 명이 갑작스런 기기 작동으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에도 생산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한 완성차업체 관계자는 "생산직 노동자들의 고령화로 조금만 집중이 흐트러지면 사고가 날 수 있어 내부적으로 안전에 대한 우려가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이날 현대자동차그룹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맞춰 올해 건설과 철강 분야 협력업체에 대한 안전관리 지원을 작년의 2배 수준인 870억 원 규모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1호 되면 기소 피할 수 없을 것"


중대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중소기업들도 잔뜩 긴장하고 있다. 한 중소기업 임원은 "자금력이 있다면 안전관리 전담조직을 신설하는 등 구색을 갖출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회사는 재해사고가 한 번 터지면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크다"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유예(상시근로자 5인 미만)된 소규모 하청업체들도 나름의 고충을 토로한다. 법에는 하청업체를 선정할 때 안전조치 수행능력 등을 따지라는 내용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광주 붕괴 사고 이후 몇몇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에 '안전사고를 내면 일감을 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한국일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날인 27일 경기 평택시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안전관리자가 지하에 설치된 화재 대피 유도선을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어찌 됐든 법은 시행됐으니 이제는 어떻게든 '1호 처벌'은 피해야 한다는 게 산업계의 공통적인 바람이다. 앞으로 광주 사고처럼 중대사고를 낸 기업은 고강도 수사와 경영책임자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법에서 정한 안전의무 등을 제대로 이행했다면 중대사고가 발생해도 원칙적으로 예외는 있다. 다만 법 규정이 명확하지 않고 판례가 쌓이지 않아 초기에는 여론에 휘둘릴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을 걱정한다. 한 건설사 임원은 "첫 사례가 되면 이목이 집중돼 기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이럴 경우 중대재해 기업으로 낙인찍혀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김현우 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서현정 기자 hyunjung@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