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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중대재해법 방화벽 쳐라"…기업들, 각자대표 체제로 속속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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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대재해법 후폭풍 ◆

매일경제

중대재해처벌법이 27일 본격 시행에 들어가자 기업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건설사에 이어 국내 주요 기업들까지 대표이사 체제를 기존 단독 대표에서 각자 대표 체제로 전환하고 한 명을 최고안전책임자(CSO)로 지정하는 방식으로 '위험 분산'에 나섰다. 대표이사가 아닌 임원을 일단 CSO에 임명한 경우에도 부사장 이상 고위 임원을 지정하는 추세다.

이날 KT는 구현모 대표에 이어서 박종욱 KT 경영기획부문장(사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각자 대표 선임과 동시에 CSO로도 임명됐다. KT가 대표이사 두 명을 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KT는 "구현모 대표가 경영 전반을 책임진다면, 박종욱 신임 대표는 안전보건 업무를 총괄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중대재해법 시행에 맞춘 행보로 풀이된다. 해당 법 시행으로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책임자가 1년 이상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산업계에선 안전부문 조직을 확대·개편하고 CSO를 별도로 두는 경우가 늘고 있다.

국내 주요 기업 중 각자 대표를 CSO로 임명한 것은 기아에 이어 KT가 두 번째 사례다. 기아는 지난해 말 그룹 인사 때 각자 대표를 맡고 있는 최준영 부사장을 CSO에 낙점한 바 있다.

LG전자는 현재 최고전략책임자(CSO) 자리를 두고 있어 혼선을 피하기 위해 최고위험책임자(CRO)를 두고 안전관리를 전담토록 하고 있다. 각자 대표를 맡고 있는 배두용 부사장(CFO)이 CRO를 겸직하도록 해 사실상 CSO를 임명한 상태다. 현대차 역시 이동석 부사장을 CSO에 선임한 데 이어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각자 대표이사로 임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지난달 정기 인사를 통해 최고안전책임자(CSO)로 생산본부장이자 각자 대표를 맡고 있는 이두희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이 사장은 각자 대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안전·환경에 대한 선제적 대응과 현장 중심의 실행력 강화에 나섰다.

중대재해법 직격탄을 맞은 업종으로 불리는 건설업계에서도 중견건설사를 중심으로 각자 대표를 임명하고 오너가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고 있는 트렌드가 두드러지고 있다. 호반건설은 안전 담당 각자 대표이사를 지난달 임원 인사를 통해 새로 선임했다.

중견건설업계 오너 경영인인 김상수 한림건설 회장, 최은상 요진건설산업 부회장, 태기전 한신공영 부회장, 권민석 IS동서 사장 등은 최근 잇달아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며 잔뜩 움츠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에 따른 사망 사고 발생 시 최고경영자가 옥살이를 할 위험에 처해있다"며 "최고경영진 공백 위험을 줄이기 위해 중견건설사 오너들이 CEO를 사퇴하는 한편 각자 대표 체제를 통해 경영 연속성 중단 위험을 없애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이사급 인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부사장급 이상 중량급 임원을 CSO에 임명해 안전 예방 리더십을 극대화하기 위한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이날 현대중공업은 전사 CSO를 맡을 안전기획실장에 노진율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 선임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최근 중대재해가 발생해 소중한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든 것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이라고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 부사장급 이상 임원을 CSO에 임명한 주요 기업으로는 GS건설(우무현 사장), 삼성물산(김규덕 부사장) 등이 있다.

한편 중대재해법이 원도급 기업에 대해 하도급 기업에서 발생한 중대재해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고 있는 까닭에 이 같은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날 현대차그룹은 올해 건설과 철강 분야 협력사에 대한 안전관리 지원을 기존 대비 2배 확대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협력사 근무 현장 안전 강화를 위해 인건비, 시설·장비 확충, 안전 점검·교육 등을 위한 비용으로 올해 총 870억원을 집행해 지난해 집행비용 450억원 대비 2배 가까이 늘린다는 것이다.

[한우람 기자 / 나현준 기자 / 권한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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