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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日, 사도 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추천키로... 한일 '역사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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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사도광산을 대표하는 아이카와 금은산에서 메이지시대 이후 건설된 갱도. 구불구불하고 좁은 에도시대 갱도와 달리 비교적 넓게 매끈하게 뚫려 있다. 사도광산에는 2천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조선인이 태평양전쟁 기간 일제에 의해 동원돼 가혹한 환경에서 강제노역했다. 사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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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징용 현장인 사도(佐渡)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기로 했다. 애초 우리나라의 반발을 고려해 올해는 보류하고 내년에 추천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자민당 강경보수파의 공세를 이기지 못했다. 앞으로 지난 2015년 군함도(하시마·端島)를 포함한 ‘메이지 시대 산업유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때와 마찬가지로 한일 간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28일 오후 7시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2023년 등록을 목표로 '사도섬의 금산'을 추천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등재 실현에 효과적인 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던 그는 "올해 신청해서 조기에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등재 실현에 지름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는 강한 유감의 뜻을 표했다. 외교부는 이날 대변인 성명을 통해 "우리 측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시 한국인 강제노역 피해 현장인 사도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추진키로 결정한 데 대해 강한 유감"이라며 "이러한 시도를 중단할 것을 엄중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이날 저녁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이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초치해 유감을 표했다.

아베 등 보수파 반발에 떠밀려 추천으로 방향 전환


니가타현 사도섬에 있는 사도 광산은 에도 시대(1603∼1868년)에 금광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태평양전쟁 기간에는 구리, 철, 아연 등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광산으로 활용되면서 적어도 1,100명 이상의 조선인이 동원돼 강제노역에 시달린 현장이기도 하다.

지난해 유네스코는 일본 정부가 2015년 메이지시대의 산업유산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할 때 전제 조건으로 이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알리겠다고 약속하고도 이를 이행하지 않은 점에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지난해 7월에는 세계문화유산 추천에 앞서 관련국과 논의하는 것을 촉구하는 지침도 마련했다. 이런 점을 근거로 외무성은 당장 추천할 경우 등재되기 쉽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기시다 총리 역시 “등재 실현에 효과적인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외무성 의견에 힘을 싣는 듯 보였다. 그러던 일본 정부가 방침을 바꾼 것은 자민당 보수파와 니가타현의 반발 때문이다. 아베 신조 전 총리와 다카이치 사나에 정조회장 등 자민당 내 강경 우파는 최근 연일 국회 질의와 방송 출연, 기자회견, 소셜미디어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사도 광산을 당장 추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전을 걸어 왔으니 싸워야 한다” "국가의 명예의 문제"라며 국민 감정을 자극하기도 했다. 니가타현 지사 선거와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정치 일정도 고려 대상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내년 여름 등재 여부 가려져... 한일 외교전 치열할 듯


일본 정부가 사도 광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려면 시한인 2월 1일 전에 각의에서 결정하는 수순을 거치게 된다. 교도통신은 "통례대로라면 유네스코의 자문기관이 가을쯤 현지 조사를 실시하고 내년 5월쯤 등록 여부를 권고한다"며 "이어 그해 여름쯤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심사를 받지만, 한국과의 양자 협의가 요구돼 심사가 보류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앞으로 한일 양국은 2015년과 마찬가지로 다시금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놓고 유네스코 회원국을 상대로 외교전을 벌이게 될 전망이다. 일본은 △일제강점기를 제외한 에도시대 금광에 대해서만 추천했고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에게도 임금과 상여 등이 지급됐다는 기록 등이 있으므로 강제노동이란 한국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등의 주장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우리는 사도 광산에서 일한 조선인 1,140명에 대해 미지급 임금이 공탁됐다는 일본 공문서 기록이나, 사도 광산에 동원돼 일하다 열악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했던 고 임태호 씨의 증언 기록 등을 근거로 사도 광산에서 혹독한 환경 속에 강제노동이 이뤄졌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 "등재 쉽지 않겠지만 비슷한 일 계속될 것... 장기적 전략 필요"


일단 지난해 유네스코가 메이지 시대 산업유산 전시실에 대한 현장 조사 후 일본에 '강한 유감'을 표시하면서 일본이 세계문화유산에서 '부(負)의 유산'을 배제하려 하는 사실이 밝혀진 점은 우리 측에 유리한 요소이다. 일제 강제동원을 오랫동안 연구하고 최근 '탐욕의 땅, 미쓰비시 사도광산과 조선인 강제동원'을 출간한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은 "일본이 신청을 하더라도 메이지 시대 산업유산 등재 시의 약속을 어긴 전례가 있는 이상, 쉽게 등재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며 "외무성도 이를 알았기 때문에 보류하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메이지 시대의 산업유산'의 경우 일본인 시민단체가 일찍부터 찾은 기록과 증언이 많은 반면, 사도 광산은 남겨진 기록이나 증언이 많지 않다. 정 연구위원은 일본 우익의 '역사전쟁'은 사도 광산이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될 것인데, 자료와 연구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우려했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앞으로는 개별 사안이 발생했을 때 대응하는 데 그치지 말고,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진상규명을 담당하는 기관이 지속적으로 자료 수집과 연구를 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장기적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시적으로 만들어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2015년 해산돼 현재 이를 담당하는 기관은 없는 상태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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