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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권희진의 세계는] 독일은 러시아편? 러시아 향한 독일의 속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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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방장관과 해군총감 카이아힘 쇤바흐(오른쪽). 2019년 사진 [사진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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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참모총장 “푸틴은 존경받을 만한 인물”>

"푸틴 대통령은 존경받을 만하다", "러시아가 2014년 합병한 크림반도가 우크라이나에 반환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대치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의 좌장, 독일의 해군 참모총장인 쇤바흐 중장의 입에서 나온 발언입니다.

마치 러시아 외무부에서 나왔을법한 이 말이 독일의 군 당국자에게서 나왔던 거죠.

똘똘 뭉쳐도 모자랄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유럽을 이끌고 있는 독일의 군부에서 나온 이런 발언에 동맹국들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동맹에 '균열'이 생긴 거 아니냐는 우려가 당장 나왔죠.

독일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이런 발언은 과거 독일 나치 치하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인간 이하 취급을 받던 때를 연상시킨다”며 격하게 반응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위협하는 러시아에 대한 독일의 태도가 그렇지 않아도 미심쩍었는데, 그런 누적된 의심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준 셈이 됐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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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재에 소극적인 독일..독일은 누구편?>

독일은 최근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수출을 금지했습니다.

“살상무기 수출을 자제하는 것이 우리의 일관된 입장”이라는 이유였죠.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 앵글로 색슨계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군 장비와 병력 등을 적극지원한 것과는 대조됩니다.

지난 21일엔 발트 해 국가인 에스토니아가 자국에 배치된 독일산 곡사포 6문을 우크라이나에 보내자고 했는데 이마저 거부했습니다.

독일은 우크라이나에 의료 지원도 하기로 했는데, 그러자 무기는 안 보내고 이동 병원을 보내서 러시아의 침공을 막겠다는 거냐는 비아냥이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독일은 우크라이나에 방탄 헬멧 5천 개를 지원한다고 발표합니다.

이번엔 "러시아가 당장 쳐들어올 수도 있는데 고작 헬멧이라니 말문이 막힌다.", "다음에는 베개를 보낼 거냐?" 이런 반응들이 나왔습니다.

그나마 헬멧도 군사 용품이니 이걸 보낸 걸 봐선 우크라이나에 '군사 장비'를 지원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은 거 아니냐는 '애써 긍정적'인 평가도 있기는 했죠.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에 대해서도 독일의 입장은 미묘합니다.

특히 최근 완공해 개통을 앞둔 러시아에서 독일로 이어지는 가스관인 노드스트림2를 제재하겠다는 미국의 입장에 대해선 모호한 태도를 유지해 왔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독일의 이런 입장은 여야를 가리지 않습니다.

미국이 러시아를 국제금융거래망에서 제외해 무역에 타격을 주는 제재를 하겠다고 할 때에도, 독일 보수당 내에선 '그래선 안 된다'는 반대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러시아를 국제금융거래망에서 제외하면 독일도 피해를 본다는 것이죠.

이러니까 우크라이나와 그 주변 국가들은 '희생을 조금도 안 하려고 든다'며 독일을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독일이 러시아의 침공을 대놓고 부추긴다고 말하기도 했죠.

독일의 모호한 태도에 난처해진 미국은 '독일을 믿는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믿고 싶다, 믿게 해달라'는 속내를 이렇게 표현한 거죠.

미국은 CIA 국장 등을 독일에 특사로 보내서 러시아 문제에서 좀 과감하게 행동해달라고 독일 측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왜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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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러시아‥오래된 특수 관계>

독일과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메르켈의 뒤를 이은 숄츠 총리가 속한 사회민주당의 대표를 지냈고, 지금은 러시아-독일 포럼의 의장인 마티아스 플랏체크는 "왜 우리가 러시아를 미국과 달리 봐야 하느냐?"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이나 러시아나 독일에는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뜻이죠.

그러면서 러시아인이 가장 존경하는 위대한 차르인 계몽군주, 예카테리나 2세도 '독일인'이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분단됐던 동서독이 통일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당시 소련 고르바초프의 결단 덕분이었습니다.

서방은 독일의 분단을 원했지만 그럼에도 소련 덕분에 통일할 수 있었다는 게 독일인들의 인식이라고 합니다.

심정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나 러시아와 척질 이유가 없다는 거죠.

독일과 러시아는 경제적으로도 밀접합니다.

EU의 최대 경제권인 독일은 천연가스 전체 사용량의 절반을 러시아산으로 충당하고 있고, 원유와 각종 원자재 대부분을 러시아에서 수입합니다.

러시아가 피해를 당하면 독일도 어떤 식으로든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동조화된' 경제 구조인 거죠.

이런 상황에서 미국을 위해 러시아와 대립하면서까지 독일이 피해를 감수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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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사진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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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회원국들의 서로 다른 속내>

미국이 '전례 없는 경제제재'를 부르짖고 있는 와중인 지난 26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이탈리아 주요 대기업 CEO들이 화상 회의를 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최대 에너지기업과 양대 은행 CEO 등이 참석해서 에너지, 금융 등의 분야에서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논의했습니다.

이탈리아는 러시아의 다섯 번째 교역국이죠.

상황이 이런데 유럽이 미국과 하나로 뭉쳐 러시아에 일사불란하게 대응한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겁니다.

미국의 딜레마가 바로 이 지점입니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둘러싸고 유럽 국가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균열을 보이고 있는 지금의 상황, 이것은 바로 푸틴이 원하는 상황입니다.

푸틴이 결국 원하는 것은 소련 붕괴 이후 나토가 잠식해온 유럽의 질서를 재편하는 것이니까요.

푸틴은 사실 지금까지의 군사 행동만으로도 원하는 걸 충분히 얻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기는 상당히 어려워졌고, 푸틴은 바이든 대통령과 1:1로 만나 러시아가 과거 소련 시절처럼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있다는 이미지를 전 세계에 전달했습니다.

국내적으로는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을 몰아세우는 강한 지도자의 모습을 각인시키면서, 푸틴은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거두는 '엄청나게 남는 장사'에 '이미' 성공했습니다.

분열된 유럽, 난감해하는 미국을 바라보는 푸틴의 표정이 보이는 듯합니다.

권희진 기자(heejin@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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