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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인터뷰] 조병수 “땅·사람과 함께 숨쉬는 집, 내 건축의 시작이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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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건축가(조병수건축연구소장)가 조선비즈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서울 종로구 창성동에 위치한 '막집'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막집은 110년 된 한옥과 60년 된 양옥을 연결해 만든 공간이다.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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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곳, 솜구름이 양떼처럼 피어 오르는 희미한 수평선을 향해 배는 벌써 까마득하다. 대부분의 사내들이 고기잡이로 떠난 갯마을에는 늙은이들이 어린손자나 데리고 뱃그늘이나 바위 옆에 앉아 무연히 바다를 바라보고, 아낙네들이 썰물에 조개나 캘 뿐 한가하다.’

난계 오영수(1909~1979)의 ‘갯마을’은 부산 기장을 배경으로 한 기념비적 소설이다. 해안선을 따라 나지막한 집이 옹기종기 모인 바닷마을을 묘사했다. 끝없이 펼쳐진 깨끗한 바다와 맑은 하늘에 매혹됐던 것일까, 오영수 뿐 아니라 고산 윤선도(1587~1671) 역시 이곳에서 유배 중 ‘견회요’, ‘우후요’ 같은 주옥 같은 시를 남겼다.

임랑마을은 기장에서도 특히 조용하고 한가로운 곳이다. ‘갯마을’의 실제 무대인 일광해수욕장에서도 차로 10분 더 가야 나오는 고즈넉한 바닷마을이다. 숲이 우거지고 물결이 아름다워 수풀 림(林)과 물결 랑(浪)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좌광천 하류가 굽돌아 동해바다와 맞닿는 곳, 그 어귀에 임랑의 해안선을 닮은 건축물이 들어섰다. 임랑 출신인 고(故) 박태준(1927~2011) 포스코 명예회장을 기리는 ‘박태준기념관’이 작년 12월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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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군 임랑리에 위치한 박태준기념관(임랑문화공원). 농가 주택과 나무를 감싸는 형태로 낮게 설계했다. /조병수건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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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치는 곡선 실루엣을 적용해 소박한 바닷마을에 알맞게 녹아든 기념관 건물은 조병수(64) 건축가의 손끝에서 완성됐다. 조병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한 사람이다. 종로 트윈트리타워, 남해 사우스케이프호텔·빌라, 부산 키스와이어센터, 거제 지평집, 압구정 퀸마마마켓, 천안 현대자동차 글로벌러닝센터 등을 설계했다. 전세계 건축 학도들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현대건축: 비판적 역사(Modern Architecture: A Critical History)’에 등재됐으며, 최근에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총감독으로 선정됐다.

지난 17일 서울 반포동 조병수건축연구소에서 그를 만났다. 조 소장과의 인터뷰는 한 시간 반 가량 진행됐다. 건축에 대한 생각과 예술관을 나지막하고 담담하게 풀어내는 그의 목소리는 땅에 뿌리를 내린 듯 단단하고 견고했다.

임랑문화공원 박태준기념관의 설계 콘셉트가 궁금하다.

“국가에 대한 업적이 포스코에 남아 있다면, 이 곳은 가족들과의 추억을 되새기며 고인을 기릴 수 있는 기념 공간이다. 박 회장님이 생전에 앉아서 책을 읽고 산책을 하시던 나무와 농가 주택 3채를 감싸는 형상으로 설계했다. 기존 주택을 허물고 큰 기념관을 짓기 보다는 마치 알을 품듯 자연스럽게 둘러싸는 형태로 만들었다.

기념관 안을 돌다 보면 뻥 뚫린 벽 너머로 나무가 보이고 포스코에서 재료를 가져다 만든 철제 의자도 보인다. 박 회장님이 걸으셨던 공간을 사람들이 함께 걸으며 체험할 수 있고, 계절에 따라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모뉴멘탈(기념비적)한 기념관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직접 앉아보고 걸어보며 그 분의 삶을 느끼고 명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고인의 유품 등을 전시하는 공간도 따로 마련돼있는지.

“유족이 제공한 유품을 전시하는 공간과 어린이 도서관도 들어서 있다. 다만 방문자에게 어떤 ‘정보’를 제공하는 것보다는 ‘장소성’을 느끼게 하는 데 중점을 뒀기 때문에 전시 공간을 크게 만들지는 않았다. 건물을 나지막하게 만든 것도 장소성(장소에서 드러나는 특별한 성격)을 살리기 위한 장치였다. 기념관 너머에 회장님이 자주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시던 언덕이 있어, 동산이 잘 보이도록 건물 높이를 낮추는 방향으로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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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군 임랑리에 위치한 박태준기념관(임랑문화공원) 내부.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거닐고 앉아있던 자리에, 포스코에서 가져온 철로 만든 벤치가 놓여 있다(위). 동선을 따라 걷다 보면 뚫린 벽 너머로 고인이 아끼던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아래). /조병수건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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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공간을 ‘경험’하고 ‘인식’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

“형식적 측면에서 시각적으로 강하게 부각되는 건축물도 많다. 그러나 아무리 시각적으로 아름다워도 돌아서면 기억에 별로 남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 그에 비해 경험적인 것은 훨씬 더 강렬하게 인지되며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봄바람에 찰랑이는 물결이라든지, 물 위에 반사되는 빛과 그림자라든지… 빛과 그림자 안에 들어가 걷고 앉으며 느끼고 체험한 것은 오랜 시간 마음에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런 경험적이고 인식적인 건축이 좋은 건축이라고 믿는다.”

공간을 찾아 경험하고 인지하는 것은 조 소장의 건축사(史)를 관통하는 커다란 줄기와도 같다. 그는 저서 ‘땅속의 집, 땅으로의 집’에 “땅에서 올려다본 나무와 하늘, 콘크리트 박스 위에서 내려다보는 땅…그 느낌은 시각적이기보다는 내 몸이 위치해있고 닿아 있는, 몸으로 체험하고 인지하는 그 무엇일 것”이라고 썼다.

조 소장이 생각하는 궁극적 건축은 이성적이고 시각적인 이해를 넘어서는 본질적·본능적 경험과 인지다. 하버드대에서 쓴 석사 학위논문 주제도 ‘경험과 인식’이었다. 형태 너머에 존재하는 실체를 경험하고 체험하는데 무게를 둔 건축을 제시해, 해당 학기 최고의 졸업논문 2점 중 한 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당시 졸업 논문의 내용은 어떤 것이었는지.

“그 당시 나는 형태가 없고 경험만 존재하는 건축물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고민 끝에 나온 스케치 중 하나가 바로 사막 한가운데 사각형으로 3m 깊이의 구멍을 뚫은 뒤 나무를 덮어 놓은 것이었다. 형태는 거의 없지만 밑으로 내려가면 햇빛의 변화와 하늘,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건축 공간이다.

대학원 졸업 논문에서는 석고로 된 거대한 사각형 덩어리를 슬라이스해 시루떡처럼 쌓은 뒤 구멍을 뚫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아래로 내려가면 구멍과 구멍이 연결되며 바깥으로 시야가 트인다. 내부에는 이 같은 시각적 경험 세계가 존재하지만, 외부에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당시 교수님들이 내 졸업 논문과 다른 논문 중 어떤 작품에 최고 상을 줄 지 3시간 반 동안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내 작품은 결국 상을 받진 못했다. 깊이는 있지만 만들어 놓은 것이 없다더라(웃음). 해결책, 즉 형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13년 후 교수로서 초청을 받고 돌아가 강단에 섰을 때 옛 지도 교수님을 다시 만났는데, 당시 내게 상을 줬다고 잘못 기억하시더라. 오랜 시간이 흘러 기억도 왜곡됐던 것 같다. 어쨌든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 나 자신이 기특하다. 남의 것을 참조하지 않고 내 생각을 풀어나가려고 애썼으니 말이다.”

궁극적으로 형태를 해체하는 것이 목표인가.

“형태를 해체할 필요는 없다. 다만 형태가 ‘드러나서 주도하는’ 건축은 지양한다. 주변 건물들에 방해가 될 정도의 형태는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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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건축가(조병수건축연구소장)가 조선비즈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서울 종로구 창성동에 위치한 온그라운드 내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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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은 단순한 형태나 공간의 양감 그 자체에 집중해, 관람자가 특정한 시공간에서 작품을 인지하도록 유도한다. 당시 미니멀리즘을 뒷받침했던 것이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지각적 현상학’이었다. 작품과 그것이 놓인 공간, 그리고 관람자가 신체를 통해 지각하는 경험이 비로소 예술의 중요한 요소로 부상한 것이 아닌가. 미국 유학 시절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받았는지.

“내가 건축을 공부하던 때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대세였고, 대학원에 진학할 때 쯤에는 해체주의가 부상했다. 형태에 관한 사조였다. 나는 그보다는 경험적이고 인식적인 것을 좋아했다. 내 건축은 (특정 예술사조보다는)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데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서양 건축물은 형태에 따라 양식을 나누지만, 그건 결국 표면적 차이일뿐 공간 내면의 본질적 요소는 늘 같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공간 안에서 어떻게 경험하느냐다. 부석사에 가보면 산과 건물, 사람의 몸이 어떻게 위치하냐에 따라 경험이 드라마틱하게 변한다. 그것이 동양 건축이 서양 건축과 다른 점이다.”

건축에 대한 동서양의 관점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

“서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신을 절대적인 존재로 인식했기 때문에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깨뜨릴 수 없다고 봤다. 고대 그리스 신전이나 로마의 판테온을 보면, 서양인들은 건축물을 중심에 세워 절대적인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해왔다. 그 과정에서 자연은 인위적으로 통제됐다.

반면 동양에서는 인간이 자연 속에 스며 들어간다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 인간은 자연 속에 놓여 있고, 건축은 그것을 프레임하는 역할만 한다. 자연은 이미 아름답고 완벽하다는 인식이 근간에 깔려 있다. 담양 소쇄원 광풍각도 실내 공간은 한 평밖에 안 되지만 흐르는 물줄기와 대나무 밭에서 들려오는 소리, 바람이 스치고 달이 걸리는 각도를 고려해 ‘놓인’ 건축물이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미술 평론가 고유섭(1905~1944) 선생도 ‘동양화는 내가 화면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나의 몸이 들어갈뿐 아니라 나의 마음도 들어간다. 나의 존재가 들어갈뿐 아니라 나의 행동까지 들어간다’고 하셨다. 안으로 들어가서 경험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동양 문화권에 존재하던 미학이다.”

‘자연 속에 스며드는 건축’은 임랑 박태준기념관이나 소쇄원 같은 나지막한 건물에는 충분히 적용되겠지만, 높은 빌딩이 많은 도시에서도 구현이 가능할지.

“단색화가 박서보 선생님의 의뢰로 설계한 연희동 ‘기지’가 해답이 될 수 있다. 지상 4층 건물 안에 상업 시설과 갤러리, 오피스, 다가구 주택까지 담아야 해 구조가 복잡했다. 자칫 하면 주위 건물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평범한 건축물이 될 수 있었다.

고민 끝에 1층을 완전히 비워내서 정원으로 만들고, 외벽을 타공한 알루미늄 판재로 만들어 건물을 감쌌다. 외부에서는 잘 들여다보이지 않지만 내부에서는 밖이 잘 보이기 때문에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동시에 빛과 공기가 잘 통한다. 또 원형 구멍은 눈높이에 따라 개구율(빛이 나올 수 있는 면적의 비율)이 달라지기 때문에 보는 각도에 따라 막혀보이기도, 트여보이기도 한다. 각도에 따라 반사, 통과, 겹침 등 다양한 빛의 효과도 나타난다.

청담동 레스토랑 ‘보메청담’은 가로, 세로 길이가 4.5m인 창 7개를 이어 붙인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런 장치를 통해 밖에서는 안을,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서종 가구갤러리 ‘MK2′의 경우, 어떤 부분은 빛이 들어오도록 하고 가릴 곳은 가려 극적인 효과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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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기지'. 단색화 거장 박서보 화백의 3대 가족이 사는 주택, 갤러리, 상업 시설이 들어서 있는 지상 4층, 지하 2층 건물이다. 알루미늄 판재를 타공해 만든 외벽이 건물을 감싸고 있다. /조병수건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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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섭이나 이일(1932~1997) 같은 평론가들은 한국 단색화를 논하면서 무계획성과 무심함, 무작위성을 한국 미술의 특징으로 봤다. 대표적인 단색화가 박서보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그런 비정형성은 박서보가 일상을 살아가는 공간에도 깃들어 있다. 빛과 공기가 불규칙적으로 드나들고 예기치 못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기지’에서, 노(老)화가는 자신의 캔버스에 흐르는 리듬을 체감했을 지 모른다.

조 소장은 자신의 건축에 녹아 있는 비정형성을 ‘마구’의 준말인 ‘막’으로 정의했다. 영국의 건축 전문지 ‘아키텍처럴 리뷰(Architectural Review)’에서 그는 “막은 감각적이고 직관적이며, 원칙의 엄격한 준수가 아닌 창조 행위”라고 썼다. 막걸리나 막사발도 그런 무계획적 창조성의 산물이다.

‘막’의 뿌리가 무엇일까.

“즉흥성이다. 한국의 지형과 날씨는 너무 복잡하고 불규칙해 우리는 늘 즉흥적으로 적응해야만 했다. 막사발도 척박한 흙으로 그릇을 만들다 보니 탄생한 결과물이다. 자연에 적응을 하며 살아온 민족이다 보니 빛과 그림자를 적정하게 이용할 줄 알고, 건축에서도 도드라지는 빛을 구현하지 않는다. 창호지를 바른 문도 바람이 잘 통하도록 적당한 두께로 만들었다. 이를 ‘무(無)기교의 기교’라고 일컫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결코 무기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굉장한 내공을 바탕으로 적정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 것이다.

막은 일본의 ‘와비사비(わびさび·투박한 자연스러움과 미완의 아름다움을 뜻하는 일본 미학)’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와비사비는 온전하고 완벽하게 만들어 놓은 뒤 옥의 티를 살짝 집어 넣은 것이다. 한국인들의 눈에는 의도적이고 인위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막은 온전하지 않아도 되며, 그래서 자연스럽다.”

‘경험과 인식’, ‘막’이 조 소장의 건축을 이루는 두 기둥이라면, 중심축은 ‘땅’이다. 조 소장은 땅과 자연, 인간의 유기적 연결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갖고 있다. 땅과 하늘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최소한의 건축이 오랜 기간 그의 지향점이었다. 임랑의 박태준기념관에서 방문자의 경험과 인식의 매개체인 나무와 동산 역시 모두 땅의 일부다. 땅 자체가 가진 역사성과 기억은 방문자와 공간을 극적으로 연결하며, 하나의 유기체로 만들어준다.

비록 하나의 생명으로 탄생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생명을 잉태하는 땅. 생명으로 탄생하지 않아 영원히 존재하며 잉태한 생명의 삶과 죽음을 묵묵히 지켜보는 땅. 이러한 땅의 본질은 무수히 많은 땅 이외의 것들과 연계되어 이야기될 때 설명될 수 있고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조병수 『땅속의 집, 땅으로의 집』 中


‘땅집’은 조 소장의 건축사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다. 땅 위에 짓는 대신 ‘땅을 파서 들어가는’ 방식으로 지은 집이다. 조 소장은 이를 “땅과 더불어 살며 주변의 모든 것을 품고 살아가는 지속 가능한 건축”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경기 양평 수곡리에 있는 땅집은 어릴 적 친구 어머니의 관을 내렸던 반듯한 땅속 공간에 대한 기억에서 착안했다. 한 평짜리 방과 서재, 부엌, 화장실과 작은 마당으로 구성된 이 집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마치 엄마 품에 안긴 듯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고 조 소장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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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평 수곡리에 위치한 '땅집'.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기리며 설계했다고 한다. 한 평짜리 방 6개와 작은 마당으로 구성됐다. /조병수건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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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집은 땅을 파고 들어가는 행위를 요구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하늘로 열려 있는 개방성을 전제로 한다. 보편적인 지하실이 밀폐되고 단절된 공간이라면 땅집은 정 반대인 것 같다.

“설계자 입장에서는 건축의 기능적인 부분도 중요하다. 완전한 지하 공간으로 만들면 통풍이 잘 안 돼서 습기가 차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땅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마당 쪽을 개방해 채광과 통풍 문제를 해결했다.

땅집을 어느 정도로 개방하고 높낮이를 어떻게 할 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해당 지역의 바람이나 햇빛, 풍토에 잘 어울리도록 짓는 것이 중요하다. 거제도에 지은 ‘지평집’은 뒤쪽이 완전히 바다쪽으로 트여 있어, 한쪽에서 보면 지하지만 다른 편에서는 지상 건물이다.”

케네스 프램튼 컬럼비아대 교수가 쓴 ‘현대건축: 비판적 역사’ 최근 개정판에서 조 소장의 건축을 상당히 자세히 다뤘다(한국 건축가로 고(故) 김수근과 조병수·조민석을 소개했다). 프램튼 교수와 실제로 만나본 적이 있는지.

“10년 전 쯤 한국 건축계에서 초청해 방한하신 적이 있다. 그때 파주의 ‘카메라타’ 건물을 보고 굉장히 좋아하시더라. ‘미음(ㅁ)’집처럼 비어 있는 듯하거나 기둥이 투박한 건물이 좋다고 하셨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내 작품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고 하셨는데, 교과서 같은 책에 다루실 줄은 몰랐다. 감사한 일이다.”

전통적 건축의 현대적 해석이란 무엇일까.

“문화와 전통은 계속 진화해나가는 것이다. 한곳에 머물러있는 것은 전통이 아니라 ‘옛 것’일뿐이다. 전통은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환경에 맞춰 계속 변화해야 한다. 전통적 건축도 계속 발전하며 끊임 없이 새로운 것들을 제시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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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2023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으로 조병수 건축가를 위촉했다고 25일 밝혔다. 사진은 위촉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조병수 건축가(왼쪽부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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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023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총감독으로 임명됐다. 한국인이 총감독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던데.

“한국인 건축가가 단독으로 총감독을 맡은 건 최초다. 운영위원회가 10명의 건축가를 추천 받아 투표로 뽑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에는 좀 한국적인 건축에 중점을 두고 선정한 것 같다. 100년 후 서울시의 마스터플랜을 만들자는 목표로, 용적률을 높이면서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도시의 청사진을 그릴 예정이다.”

이전 비엔날레와의 차별점은 무엇인지.

“1회 비엔날레는 ‘공유’를, 2회는 ‘집합’, 3회는 ‘안전한 도시’를 주제로 삼아 다소 사회적인 이슈를 다뤘다. 나는 현장형·실무형 건축가이기 때문에 실제로 서울시가 갖고 있는 문제와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중점을 둘 예정이다. 실험적이고 이상적인 수준에 그치지 않고 환경적·공간적 관점에서 서울시를 어떻게 개선해나갈지 고민할 것이다.

서울시가 워낙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인 만큼, 공간이 부족하지 않게 고밀도를 유지하면서도 자연 환경과 잘 어우러지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과거 조선왕조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 산 좋고 물 좋은 자연적 이점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나. 우리 조상들이 꿈꿨을 생기 있는 풍경을 살리기 위해 물길과 산길, 바람길을 잘 연결해보고자 한다. 드론이라든지 전기차 같은 현대 기술을 잘 접목하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비엔날레의 콘셉트나 제목은 정해졌나.

“제목은 우선 ‘땅의 건축, 땅의 도시’로 정했는데 확정된 것은 아니다. 결국 그간 내가 구현해온 자연과의 유기적 관계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노자운 기자(jw@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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