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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 (일)

이슈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우크라이나 사태에 아베 "핵 공유 논의해야"...기시다 즉각 일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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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핵 위협을 계기로 일본 내에서 핵 보유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핵 공유도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자 '비핵'을 정치 신념으로 삼고 있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급하게 수습에 나선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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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하고 있는 아베 신조(왼쪽) 당시 일본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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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전 총리는 지난달 27일 후지TV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일부가 채택하고 있는 '핵 공유' 정책을 일본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에서 현재 공격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소련 붕괴 후 핵무기 보유를 포기하는 대신 미국·러시아·영국이 주권과 안전보장을 약속했던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를 썼다면서 "그때 전술핵을 일부 남겨뒀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논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생명, 나라를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해선 다양한 선택 사항을 시야에 두고 논의해야 한다"며 핵 공유 문제를 언급했다.

핵 공유는 미국의 핵무기를 자국 영토 내에 배치해 미국과 공동 운용해 억지력을 유지하는 전략이다. 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벨기에·터키 등 5개국이 이 같은 핵 공유 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일본도 이들 국가처럼 안전 보장을 위해 미국과의 '핵 공유'를 고려해봐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전세계 유일한 전쟁 피폭국인 일본에서 매우 민감한 핵 문제를 건드리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 피해를 입은 후 1970년대부터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고, 보유하지 않고, 반입하지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유지해오고 있다.



기시다, "피폭국 총리로서 절대 반대"



아베 전 총리의 발언이 알려지자 먼저 원폭 피해 지역에서 비판이 터져 나왔다. 나가사키(長崎)현 평화운동센터 가와노 코이치(川野浩一) 의장은 "(일본은) 핵무기 자체를 없애는데 나서야 한다. (핵 공유는) 논의 자체가 있을 수 없다"고 분개했다. 히로시마(広島)현 원폭피해자단체협의회 사쿠마 쿠니히코(佐久間邦彦) 이사장도 "핵무기가 가져오는 비참한 결과는 일본이 제일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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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국회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답변하고 있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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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폭지인 히로시마에 지역 기반을 두고 '핵무기 없는 세상 실현'을 정치적 신념으로 주장해 온 기시다 총리도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지난달 28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핵 공유는) 비핵 3원칙을 견지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생각할 때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도 "정책 방침으로 비핵 3원칙을 견지해 나간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며 아베 전 총리의 발언에 선을 그었다.

기시다 총리는 또 일본 시간으로 1일 새벽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 등의 전화 회담에서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핵무기 위협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NHK에 따르면 이날 회담에서 기시다 총리는 "유일한 전쟁 피폭국 일본으로서, 또 피폭지 히로시마 출신 총리로서"라며 "핵 위협도, 사용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사히신문은 1일 사설에서 푸틴 대통령의 핵 관련 발언을 지적하며 "핵 위협도, 타국 주권 침해도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을 국제 사회가 단합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논평했다. 이어 "이런 가운데 아베 전 총리가 극히 식견이 없는 발언을 했다"며 "전쟁 피폭국으로서의 자각과 책무를 조금도 느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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