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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이슈 일본 신임 총리 기시다 후미오

[외안구단]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 "윤 대통령, 내게 선생님 되어달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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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온라인 기사 [외안구단]에서는 외교와 안보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들이 알찬 취재력을 발휘해 '뉴스의 맥(脈)'을 짚어드립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일본 내 손꼽히는 '지한파'이자 '친한파'입니다. 지난 2009년 민주당 대표로 총선 승리를 이끌며 일본에서 54년 만의 정권 교체를 이뤄낸 인물입니다. 하지만 정치자금 스캔들이 터지면서 취임 9개월 만에 총리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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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와 인터뷰하고 있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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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그가 재임하는 동안 한일 관계에는 훈풍이 불었습니다. 총리직에 있던 9개월 동안 하토야마 총리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세 번 했습니다. 그 사이 코로나19라는 걸림돌이 있긴 했습니다만, 2019년 12월 이후 2년 6개월 동안 한일 정상이 만나지 못한 지금과는 분명 달랐습니다.

■ "尹, 내게 선생님이 되어달라더라"

하토야마 전 총리는 어제(10일) 열린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아 3년 만에 한국을 찾았습니다. 일본에서 참석한 인사 중 유일한 총리급입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취임식 하루 전인 9일 윤 대통령과 따로 만나 얘기를 나눴습니다. 첫 만남입니다. 그는 “윤 대통령이 '한일 관계의 선생님이 되어달라'고 하는 것을 보고 굉장히 솔직담백한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습니다.

Q. 윤석열 대통령을 처음 만난 소감은?

A. 윤 대통령이 “총리는 화려한 정치 이력을 가지셨다. 나는 정치 이력이 짧다. 한일 관계의 선생님이 되어달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굉장히 솔직담백하고 진솔한 마음을 갖고 계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이 되어달라'는 말을 듣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윤 대통령이 일한(한일) 관계 개선에 아주 적극적이어서 짧은 시간 안에 양국 정상이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윤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가장 강조한 부분은 무엇이었나.

A. 윤 대통령에게 기시다 일본 총리와 하루빨리, 가능한 한 많이, 길게 만나서 눈치 보지 마시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한일 셔틀외교의 필요성과 일한중(한·중·일) 3국의 정상회의가 빨리 진행되도록 적극적으로 힘써달라고도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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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야마 전 총리가 2009년 청와대를 방문해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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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번 취임식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참석했더라면 바로 한일 정상 간 만남이 이뤄졌을 텐데 결국 불참했다. 한일 관계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결정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A. 주도권을 갖기 위한 결정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자민당 내에서 기시다 총리가 참석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꽤 강했다. 다만 총리 대신 하야시 외무상이 참석한다는 것은 일본이 취임식에 상당히 무게를 두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외무상은 한일 관계를 개선해 나가는 한 명의 키 펄슨(key personㆍ중요 인물) 이다. 외무상 참석에 대해 한국 국민도 좋은 평가를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 "징용공 문제, 한일 관계에 실마리"

윤석열 정부는 "올바른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 한일 협력 관계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역사 인식은 줄곧 평행선을 달려왔습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총리 시절부터 변함없이 일본의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독도를 분쟁 지역으로 규정하고,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동원 피해자에는 일본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그는 지금도 말합니다.

Q. 두 나라 역사 인식의 간극이 과거보다 더 커지는 것 같다. 당신과 같은 시각은 일본 내에서 완전히 소수 의견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A. 식민 지배의 피해 당사자가 더는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할 때까지 사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게 나의 신념이다. 그것이 내가 얘기하는 무한 책임이다. 하지만 최근 20~30년 사이에 일본 경제가 바닥을 치면서 센 척하며 '강한 일본을 만들겠습니다'라고 외치는 정치인들이 인기를 얻는 경향이 생겼다. 그런 정치인들이 세력화해 강경 발언을 하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한국이나 중국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는 결과를 낳았다고 본다. 사실 전후 세대인 일본 젊은이들은 그 전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른다. 한·중·일 젊은이들이 서로 이해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Q. 당분간 일본 내 정치 상황에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자민당은 여전히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이 아무리 관계 개선의 의지를 갖고 있다고 해도 일본이 변하지 않으면 뭘 할 수 있겠나.

A. 굉장히 어려운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징용공 문제가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91년 일본 야나이 외무성 국장은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은 국가 간의 조약에 의해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고 발언했다. 아베 정권은 “1965년에 이뤄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국가 간의 조약으로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은 국제적인 상식이기도 하다. 기시다 총리가 국제적인 상식선으로 돌아오는 것이 필요하다. 거기까지만 온다면 앞으로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Q. 일본 정부를 '상식선'까지 움직이기 위해 윤석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A. 문재인 정부 때는 사실 서로 얘기를 할 만한 기회조차 없었다.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에게 '몇 번이 되든 시간을 들여서 진지하게 논의해보자'고 계속 제안을 해준다면 기시다 총리는 분명히 응할 것이다. 이걸 시작으로 셔틀 외교가 시작되는 게 중요하다. 대화하는 가운데 어디까지가 접점인지가 분명히 보일 것이다.

■ "한일 공동기획 아이돌도 좋은 매개"

Q. 한류 팬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지금도 문화 교류를 통해 한일 관계 개선을 노려볼 수 있을까?

A. '문화력(문화의 힘)'을 통한 교류는 정말 중요하다. 특히 젊은이들이 상대 국가를 좋아하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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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드라마 '이산' 홍보차 일본을 방문한 배우 이서진 씨를 만난 하토야마 총리. 사진 오른쪽은 하토야마 전 총리의 부인 미유키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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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윤석열 대통령에게 아이디어를 준다면?

A. 지금 일본에선 NHK에서 방영하고 있는 '가마쿠라도노의 13인'이라고 하는 대하드라마가 인기다. 예를 들면, 윤 대통령이 '이 드라마가 재밌더라'라고 한마디를 하는 것만으로도 일본인들은 굉장히 기뻐할 것이다. 또 일본인 아이돌 그룹인 '니쥬'가 이번에 방한을 한다고 들었는데 이처럼 한국 프로듀서의 훈련을 받은 일본 가수들, 한 일이 공동기획한 아이돌이 협력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면 일본인들의 마음에 크게 와 닿지 않을까.

하토야마 전 총리가 JTBC 취재진에게 건넨 명함에는 원래 이름(鳩山由紀夫)의 중간 글자(由) 대신 다른 유(友)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같은 발음이지만, 벗과 우정을 뜻하는 글자로 바꾼 것입니다. 그는 ”우애(友愛) 정치인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에서 ”국가들이 '우리는 서로 동지'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다름을 인정하고 좋은 가치는 함께 공유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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